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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악마의 부엌으로 초대합니다(울라 마이넥케 지음)

by 굼벵이(조용욱)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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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양심의 가책과 비밀스러운 내면의 방해꾼이 항상 그들과 함께한다.

이러한 방해꾼의 가장 친한 친구, 어쩌면 쌍둥이 같은 존재는 내면의 게으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든 끊임없이 게으름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면의 방해꾼은 냉정하고 완고하다.

심리학 관련서에는 그 방해꾼을 내면의 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설령 이름이 달라진다고 해서 다루기가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아이는 영특하여 속이기도 쉽지 않다.

혹시라도 그 아이를 과소평가했다간 그 애가 더욱 화를 낼 것이다.

 

무질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 기술을 배우는 데는 매우 월등하다.

남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 혹은 내면의 방해꾼과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는 행동 영역이기에 별 문제 없이 일을 치러낸다.

 

무질서한 사람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혼돈스러운 상황의 희생자로 느낀다면,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파트너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정감을 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

자신과는 달리 정리정돈이 잘된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무질서한 사람들은 대개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쉽게 임무를 끝내려고 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더하더라도 제대로 임무를 완수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미루었던 욕실 청소를 한다면 쓰지 않는 칫솔로 구석구석 문지르며 빈틈없이 청소를 한다.

욕실의 반 정도를 끝내고 나면 벌써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좀 더 효율적인 청소도구를 찾아서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밖으로 나간 김에 힘을 보충하기 위해 커피와 소시지를 사먹을 것이며,

친구 집에 들러 언젠가 빌린 책을 돌려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는 서서히 저물어간다.

 

박사논문을 쓰든, 욕실청소를 하든 완벽주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완벽주의에는 항상 못난 쌍둥이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쌍둥이는 바로 실패.

그래서 많은 완벽주의자들이 논문을 쓰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질서한 생활에 대한 자각

무질서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색빛 일상이다.

그곳에는 죽음의 형태를 한 위험이 숨어 있다.

바로, 지루해 죽을 것만 같은 위험!

우리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과 요소에 따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 되면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병이 들고 죽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긴 하지만, 이때껏 자신과 직접 연관시켜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지고 만다.

주위가 고요한 순간, 우리의 세포는 가만히 속삭인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고, 그러면 갑자기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값비싼 자동차를 산다거나, 서둘러 결혼을 한다거나, 직장에서 엄하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각각의 나이에 따라 이루거나 소유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보편적인 요구가 있다.

이에 대한 자각을 하는 순간, ‘장난과는 이별이다.

이제 진지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마흔이 넘으면 조금 긴장을 풀고 자신에 대해 현실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런 생각에 그는 더욱 자신감을 잃고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변화를 원하지만 어떻게 하면 변화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혹은 단 한번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을 아주 간단히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어떻게 무질서한 사람이 그 무서운 서류들 앞에서 냉정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서류들 속에 어떤 부담과 위협이 숨어있는지,

그 부담과 위협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거부감이 일어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공룡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룡의 마법이 풀려 그놈을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부담과 위협, 그에 대한 거부감을 그것의 실체와 비교 검토하고

일상의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생활인들 앞에 놓일 수 있는 수많은 서류들과 구분하는 것이다.

 

공룡의 마법을 푸는 것은 자기 자신의 손실을 줄이고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갖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계산서, 통보서, 서류상의 사안 등은 나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한 장의 종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단지 상처를 잘 관리할 때에만 치유해줄 뿐이다.

 

무질서한 사람은 카오스의 자기 파괴적인 면을 없애야 한다.

내면의 방해꾼과 친구가 되고,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체계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질서한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몹시 지쳐 있다.

공룡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심의 가책을 견뎌내기 위해, 악마를 통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했을까.

내면의 방해꾼과 싸우고, 때로는 굴복하고,

그 모든 카오스의 상태를 비밀로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내야 했을까,

이제 이 모든 삶의 방식과 결별하고 전망 좋은 새로운 장소를 정하여

멋지게 꾸미고 즐긴다면 그러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의 힘의 근원지로 가는 길이 장애물 없이 환하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