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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706 나의 사랑 나의 테니스 그리고 천직에 관하여

by 굼벵이(조용욱)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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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7. 6()

하남 테니스회에서 테니스 시합이 있었다.

HBI과장과 한 조가 되었는데 결승에 올라가 진화봉 코치와 한 조가 된 WSH과장에게 패하여 2등을 하고 크리넥스 화장지 한 세트를 받았다.

점심은 오랜만에 소머리 국밥집에서 맛나게 먹었다.

상일동 소머리국밥집은 일부러 찾아가서 먹을 만큼 훌륭한 국밥 맛집이다.

1993년도에 평택지사에서 인사처로 전입하자마자 CWK선배가 나를 데려가 본사 주말 테니스모임에 가입시켰다.

내로라하는 쟁쟁한 멤버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회사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 가급적 빠지지 않고 나갔다.

실력이 부족하니 더 일찍 나가고 더욱 열심히 뛰면서 쫓아다녔다.

1991년 초급간부로 평택지사에 발령받아 92년도 즈음에 테니스를 처음 배웠다.

평택체육사 사장이 한 달여간 코칭을 해 주었는데 오른손 포핸드를 배우고 백핸드를 배우려는데 너무 불편해 그냥 왼손 포핸드로 치니 그런저런 잘 맞았다.

그걸 보고 코치가 백핸드 대신 그냥 왼손 포핸드로 치란다.

거기까지만 레슨을 받고 이후 더 이상의 레슨 없이 게임에 임하는 바람에 서비스도 스매시도 커트볼도 발리도 제대로 못한다.

볼도 약하고 다양한 기술도 없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쉽게 지지 않는다.

백핸드 대신 갑작스레 나의 왼손 포핸드가 들어오면 상대방 선수가 당황해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테니스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고혈압에 당뇨에 뚱뚱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껏 운동을 전혀 안 했을 테니 당연히 그렇게 귀결되었을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운동을 시키려는 데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결국 큰아이는 고도 비만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테니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등산을 전혀 못했었다.

조금만 산을 오르더라도 숨이 차 앞이 노래지다가 하얘지거나 까매지며 구역질이 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다리도 천근만근이었고 등산 다음 날엔 아파서 견디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테니스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무리 높은 산을 오르더라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숨이 차서 구역질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튼 상일동 소머리국밥집은 93년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5000원을 회비로 내면 국밥 한 그릇과 맥주 한 병을 마실 수 있었다.

나중엔 물가가 올라 그 돈으로 거기에 갈 수가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특별한 날에만 가끔씩 가고 평상시는 하남고등학교 앞 상점에서 끓여주는 라면에 맥주를 마셨다.

주말 아침 테니스를 소머리국밥과 맥주 때문에라도 가야 할 만큼 맛났던 추억의 맛집인데 지금은 송파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

운동 후엔 라면도 라면집 김치도 엄청 맛나다.

하남고교 앞 상점 옆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여름엔 매미 소리가 시원하게 귓전을 울린다.

운동이 끝나고 그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서 라면에 김치를 먹고 맥주를 마시다 보면 신선이 따로 없었다.

그 집에 시집 안 간 통통한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지금은 50대쯤 되었을 텐데 어디 가서 잘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회원 중 누군가는 그집에서 일부러 김치도 사다 먹었었다.

****************

 

저녁 5시 무렵 집사람이 서초동에 전셋집을 보러 가자고 해 함께 서초동 공간 부동산 컨설팅을 찾았다.

복덕방 아주머니는 늘씬한 키에 얼굴도 예쁘장한데 말발이 장난 아니다.

물에 빠져도 붕어랑 이야기할 정도의 수준이다.

모두 네 집을 구경했다.

아내의 의중을 떠보니 첫 번째 집과 마지막으로 본 14층 아남 아파트를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남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 시설이 없어 불편할 것 같았으니 그냥 첫 번째 본 유원아파트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자고 한다.

우리가 당첨된 롯데캐슬 리버티 아파트 공사 현장을 구경하던 중에 서로 의견일치를 보았기에 곧바로 차를 돌려 복덕방 아주머니를 만나러 갔다.

그 아파트는 92년도에 지은 집이어서 조금 낡았지만 복덕방 아주머니 말로는 주인이 먼저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 아무도 없는 상태여서 아무 때나 이사가 가능하단다.

더군다나 집주인은 돈도 많은 사람이란다.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집사람 직장 동료 본길이 엄마한테 재확인했더니 아무런 하자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선 계약서의 임차인란을 채우고 나중에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해 주겠노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몹시 피곤하다.

복덕방에서 거의 80이 다 돼 보이는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가 복덕방에 놀러 왔다면서 땅 나온 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돈 버는 재미로 사는 사람인 듯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1000억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단다.

그까짓 아파트 장사해서 돈을 벌겠느냐면서 대규모 아파트를 지을 땅이나 한번 알아봐 달라는 주문을 곁들였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1000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돈을 벌고 싶어 복덕방을 찾아와 그러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일면 부럽기도 했다.

우리네 같았으면 애저녁에 포기하고 참된 삶을 찾아 텃밭에 상추나 심고 뜯으며 살았을 것이다.

복덕방 아주머니 말마따나 돈 가진 사람이 돈을 더 벌려 하고 실제로 더 버는 것 같다.

복덕방 일을 하다 보면 돈이 보인단다.

몇 달 만에 8천 만원씩 벌고 그러는데 안 할 사람이 있겠냐고 한다.

자기 남편도 대기업의 월급쟁이지만 월급쟁이 해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면서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자신들의 성공담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복덕방쟁이가 천직이고 안성맞춤인 여자다.

일에 대한 열정도 있고 적성에도 맞으며 아파트 몇 채 굴리면서 나름대로 성공도 했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천직은 하늘이 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천직이 아닌 것을 탐내며 여기저기 떠돌다가 세상을 한탄과 한숨으로 마감한다.

천직은 무엇이든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때만 부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