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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704 체육대회 어린애 돌보기

by 굼벵이(조용욱)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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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7. 4()

아침 일찍 출근과 동시에 보고서를 가지고 처장님 방으로 갔다.

오늘 아침에 보고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기에 우선 먼저 보고서를 들이밀어 면피하고 부족한 부분은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처장님은 내가 방에 들어서자 나랑 차 한 잔 마시고 싶다며 L비서에게 차를 한 잔 주문하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또 한 차례 이건희 회장의 경영론을 들려주며 어제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책 읽기를 죽도록 싫어하고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 같은 성격을 가지신 분이 그래도 새로운 변화를 도모해 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신문쪼가리를 스크랩까지 하며 이회장을 표본으로 삼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오후 3시즈음에 처장님이 우리 사무실 회의용 탁자에 나타나 KSH, YMH, KMR, CSY, KYB, LJB를 불러 모아 회의를 주재하였다.

아마도 나의 보고서를 읽어보고 성이 차지 않아 또 다른 아이디어를 더 구하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현행 승진제도 상의 문제점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몇가지 설명하더니 나의 지휘 아래 서열명부 요소별로 현상을 분석하여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나열한 후 개선방안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갔다.

아무래도 경영혁신 안건이며, 분임토의며 각종 접수된 안건들에 대한 모자이크식 개별 검토보다는 승진제도 개선방안을 정점으로 하고 이와 관련된 각종 안건을 연결시켜 하나의 통일된 경영혁신 체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거다.

 

보고서는 월요일 날에 보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처장이 주관하는 체육행사에 참석해 실컷 마시며 놀기로 하였다.

처장님은 오늘을 위하여 고향인 제주도에서 흑돼지와 한라산 소주를 공수해 왔다.

전 직원이 저녁 545분에 모든 업무를 접고 6시 정각부터 체육행사를 갖기로 했다.

그날 내가 족구 시합에서 활기 있는 경기를 보여주며 많은 직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기차기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항목인데 어쩌다 잘못되어 한 번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10번밖에 못 찼다.

훌라후프는 전혀 돌릴 수 없었다.

처장님은 식당 지배인에게 특별히 부탁해 간부식당에 저녁식사를 성대하게 준비시켰다.

제주에서 공수한 돼지를 삶아 수육을 만들고 각종 야채와 필요한 기본 반찬을 마련해 놓았다.

케익커팅 세레모니까지 하면서 오늘이 7. 4일이었으므로 특정 직원이 숫자 74와 관련된 경우 해당 직원들을 다 불러내어 샴페인을 터뜨리게 했다.

김처장의 어린애 같은 호기심 천국은 늘 그런 식으로 표현되어왔다.

그런 그의 생각 때문에 OOOOO원장시절엔 강의실 복도가 온통 그림으로 뒤덮이고 잔디밭엔 바람개비가 돌아갔으며 밤엔 태양광 전등이 볓빛처럼 반짝였었다.

그런 동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말이 없었지만 무거운 공직사회의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두 뒤에서 손가락질했다.

원장이 바뀌자마자 그런 것들이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음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마지막에 식사로 된장찌개까지 준비해 놓은 것으로 보아 식당 지배인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처장님은 여러 직원들로부터 술을 받느라 술이 좀 되어 어린애가 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기에 혹시 잘못될까 싶어 KYB, LJB과장과 함께 그를 기다렸다.

완강히 거부하는 그를 지배인 등 식당 종업원들과 함께 전통찻집에 들어가도록 한 뒤 LJB 과장 핸드폰에 종업원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그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끼리 파세디나에 가서 맥주를 한잔씩 더 했다.

처장님과 함께 있던 식당 종업원으로부터 처장님이 택시를 타고 잘 귀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우리도 택시를 타고 각자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