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9. 15(월)
태풍 매미로 인한 정전 피해복구를 위하여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는데 마침 내가 근무조로 편성되었다.
전문가가 아닌 오합지졸들이 이 부서 저 부서에서 차출되어 이루어지는 비상근무는 자발적 참여에 의한 일사불란한 업무처리 방식을 찾기 어렵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직급만 높은 상사에 의한 상명하달식의 체제만 겨우 유지될 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더듬거렸지만 조금 지난 후부터는 곧 익숙해져서 편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KG부처장이 상황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찌나 설쳐대던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는 그의 이면을 이해하며 그의 지시를 따랐다.
김영일 케도원전사업처장이 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는데 내가 각 사업장과 전화 통화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를 격하게 칭찬해 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전화응대를 잘할수 있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업무상의 전화 통화를 듣게 하는 것만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최고위층 상사 한 분을 얻게 되었다.
사는 게 그렇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인심을 잃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다.
매사 사람 앞에 겸손하고 열과 성을 다해 보살피며 살 일이다.
김처장과 교대되는 상황실장은 M처장이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빨리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는 그가 처장으로 있는 OO처 소속 PJS과장과 SHJ과장을 전문원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것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논리상으로도 안 맞고 처장님이나 전무님이 심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요즘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가 갑자기 상황실장으로 나타나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 듯하다.
얼굴이 발개지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내 마음을 읽었는지 M처장은 다행히 얼른 들어가라며 귀가를 독촉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쭈뼛쭈뼛 서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얼른 나와 집으로 향했다.
밤 12시 반까지 먼 나라 이웃 나라 ‘잉글랜드’ 편을 읽기 시작하였다.
유럽여행 떠나기 전까지는 유럽 편 6권을 모두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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