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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22 하얀 거짓말 그리고 곱게 끝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by 굼벵이(조용욱)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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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2()

오늘도 아침부터 처장님으로부터 또 한 소리 들었다.

어차피 그걸 각오하고 행동했었다.

크게 역정을 내시지는 않는 듯했다.

성과평가 관련 인사규정을 공포하면서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고 노조가 발끈해서 따져 묻자 그 불을 끄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려는 의도다.

그러나 내가 노조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고 의도적이었다.

그걸 사전에 노조와 협의하면 노조는 절대로 공포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난 반발과 갈등을 초래하면서 ...

공기업은 위로 올라갈수록 노조에 약하다.

사장이 가장 약하다.

책임 있는 기업주가 아니고 잠시 간이역에 머무는 임기제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더높은 곳을 목표로 하기에 자본주인 정부에 진정한 대립각을 세우지 못한다.

싸움질은 원래 최전선 말단 소총수가 하는 거다.

이번에 공포된 규정은 단순히 성과평가제도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승격을 위한 다면평가 제도나 직위해제 제도의 신설 등 굵직한 내용들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노조의 방해로 공포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보다는 어차피 시끄러워질 거 우선 공포나 하고 나중에 사후 수습하는 것이 차라리 득이라는 계산된 생각에서였다.

처장님이 인사처장 직을 그만두는 등 적당한 기회가 오면 말씀드리겠지만 지금은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엎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을 그르친다.

 

PH국장, KN위원장과 함께 셋이서 일식집 도다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과의 뜻으로 내가 사는 점심이다.

 

오전 1110분 즈음하여 전화벨이 울려 발신지를 보니 공정거래위원회 KHE사무관으로부터 온 전화다.

진술서 왜 안 가져오냐며 아침부터 기분 잡치게 할 것 같아 CSY이에게 전화를 대신 받아 내가 자리에 없다고 하라고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어와 일단 토끼잠을 잤다.

K사무관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머리를 맑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후에 곧바로 머리 쓰는 일은 금물이다.

5분여 토끼잠에서 깨어날 무렵 K사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머리를 맑게 할 요량으로 커피부터 급하게 한잔 마셨다.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조사실에 내려가 굳은 표정으로 그 앞에 섰다.

웬걸 이전과 180도 다르게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게 나온다.

점심은 잘 먹었느냐, 어제는 잘 보냈느냐는 등 아이스 브레이킹 전략으로 내 긴장을 풀어준다.

이어서 지난번 내가 작성한 확인서 사본을 가지고 사무실에 들어가 자기네 국과장과 협의한 결과를 설명해 준다.

부당 지원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부당 지원 의사가 그리 큰 것도 아니어서 그냥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의 속을 몰라 처음에는 파견자는 인건비 예산도 따로 책정하여 운용되므로 남는 금액을 자회사가 챙기는 것이 아니기에 부당지원이 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었다.

K사무관은 자신도 별종이지만 나 같은 독종 처음 보았다는 듯이 혀를 두른다.

하지만 그는 나와의 대화 과정에서 공기업의 자회사나 국가에 대한 인력지원은 불공정거래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공기업이 지원을 받아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고 하여 공기업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국고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건비를 비롯한 모든 예산을 기획예산처가 승인하고 배분해 주므로 우선 그 지원 의도(will)에 있어서 공정거래니 부당 지원이니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그는 나에게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거꾸로 부탁을 했다.

K처장님으로 하여금 자기네 독점국장에게 고맙다는 인사 전화 한 통 해 달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이란...

 

조사실을 나와 입이 귀에 걸린 채 K처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K처장이 기분이 좋아서 곧바로 전무님 방에 내려갔다.

잠시 후 전무님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전무님은

수고했어,

그런데 갑자기 2직급으로 승진시켜 줄 수도 없고...

나중에 내가 술 한 잔 사 줄게!”

하시는 거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

하면서 도대체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나중에 가만히 복기해 보니 대충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감이 왔다.

나는 또 곧바로 처장님 방에 달려갔다.

처장님께

공을 제게 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이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처장님은 달래 그리된 것이 아니고 자신이 경과를 보고하는 과정에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고 너무 기쁜 나머지 전무님이 갑자기 전화를 들더니 나를 대라고 해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 먼저 하고 이어서 다음에 처장님 친구인 공정위 독점국장 이야기를 채 하시기 전에 전화통을 붙잡고 나의 공적을 치하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약속한 대로 일찍 돌아와 아이들하고 교대에 운동하러 갔다.

운동장을 15바퀴 뛰었다.

경신이는 이제 많이 나아져서 혼자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 가면서 15바퀴를 뛸 수 있다.

그러나 호신이는 키가 작고 뚱뚱해져 달리기에 애로가 있는 것 같다.

녀석의 보폭이 좁아 종종걸음으로 뛰어 많이 숨 가빠하기에 독촉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뛰도록 했다.

마지막 4바퀴는 옆에서 같이 보조를 맞추어 남은 바퀴를 다 뛸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