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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201~04 승진 철 피 말리는 스트레스

by 굼벵이(조용욱)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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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1() ~12. 4(목)

전날 K와 마신 술이 지나쳐 몸도 머리도 컨디션이 엉망인데 사장님이 특별 담화를 하면서 갑작스럽게 승진 인사제도에 관한 자기 평소 생각을 밝혔다.

우리에게 사장의 말 한마디는 추상같다.

사전에 아무런 귀뜸도 없이 갑작스레 담화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나만 비상이 걸려버렸다.

그럴 때마다 처장님은 콩 볶아대듯 나를 볶으며 밀어붙여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사장은 유자격자 10명당 한 명씩 사업소장이 추천하도록 하는 대신 투명한 인사관리를 위하여 이를 공개하겠다고 한다.

더불어 본사와 사업소를 통합하여 승진심사를 하겠다는 이야기와 깜짝 놀랄만큼 의외의 사람들로 승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처장님은 이에 대한 대책을 내어놓으라며 폭풍처럼 나를 밀어붙였다.

그는 그럴 때마다 내게 극한상황 전법을 구사한다.

내게 한 시간 내에 보고서를 만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그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죽이든 밥이든 원하는 시간 내에 결과물을 들이밀어야만 한다.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내 머리는 극한을 넘어서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

 

때아닌 날벼락으로 그날 이후 나는 며칠간 대책수립에 부심해야 했다.

전화는 당분간 일절 사절했다.

과장들과 직원이 대신 받아 처리하게 하고 나는 보고서 작성에만 몰두하였다.

처장님은 보안작업을 내세우며 내가 직접 문서를 작성해 줄 것을 요구했다.

분명 무언가 사장이 메모 쪽지라도 던졌을 텐데 물어도 그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내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전 정보제공을 차단함으로써 최대한 내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한 수법이다.

그런 그의 메타포 리더십을 수년간 겪어 온 나였기에 그러려니하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처장님은 결국 빼곡히 두 장을 써 내려간 사장의 메모 쪽지를 내게 내어놓았다.

거기에는 사장의 생각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었다.

그걸 중심으로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처장님과 또 한바탕 피 튀기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원인이 되는 모든 문제는 내게 귀착되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생각을 소신껏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처장님은 내게 고집이 세다고 핀잔을 준다.

내 생각을 잠시 접고 당신 입맛에 맞추어 보고서를 만들어 가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네가 그럴 줄 몰랐다며 역정을 낸다.

어디에다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로는 얻어 터져가며 사안별로 상황에 맞추어 그가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을 잘 조율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매사 흥분해서 엇나가지 말고 정공법으로 신속 정확하게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새로 온 사장님이 검증되지 않은 자기 생각과 의지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이미 과거에 사용되었으나 문제가 많아 폐기된 방법들이다.

그렇지만 사장의 의지를 꺾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 처장님은 절대 사장의 뜻을 어기려 들지 않기에 사장 지시내용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밖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러니 내게 말은 그렇게 복잡하게 했어도 결국 내가 만들어준 보고서의 방향대로 갈 수 밖에 없다.

금주 내내 그렇게 처장님과 전쟁을 치르다 수요일 아침(12.3)에야 사장에게 보고를 마쳤다.

사장이 먼저 보고서를 찾는 바람에 급하게 이루어진 보고이지만 이를 통해 우선 기본적인 틀을 잡은 셈이다.

보고 과정에서 사장에게 칭찬을 들었는지 처장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또다시 나를 부르더니 사업소장의 승격 건의를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할지 절차서를 만들 것을 명했다.

그걸 만든다고 계속 분주하게 보내야만 했다.

처장님은 이 모든 과정에 Y를 철저하게 배제시켰다.

Y는 실무를 수행할 담당부장이지만 적어도 승격에 관한 한 완전한 무장해제를 당한 것이다.

그가 그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입이 싸다는 데 있다.

걸핏하면 감사를 만나 그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유출시킨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Y가 틀림없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올 것이고 그러면 마음 약한 내가 비밀정보를 누설할 게 뻔하다고 생각해 처장님은 내게 오늘 곧바로 퇴근하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출근할 것을 명했다.

나아가 처장님은 퇴근길 차 안에서 조차 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내가 퇴근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보임부 직원시절 내가 승진후보자 서열명부 상 서열을 외부에 누출시킬까봐 질리도록 나를 의심하며 철저하게 감시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나는 그런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추호도 하지 않았었다.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듯해 기분이 별로였지만 그 모든 것들을 마음에 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