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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210-14 얻어 터질수록 강해지는 나의 맷집

by 굼벵이(조용욱) 2022.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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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10() ~ 14()

요즘 승진 인사와 관련하여 처장님이 내게 참 많은 주문을 하신다.

내가 가만히 앉아 쉬는 듯한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그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승진인사와 관련하여 조금이라도 검토가 필요한 사항은 언제나 나를 불러 내 의견을 묻는다.

의견을 묻는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검토서로 만들어 줄 것을 지시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

사실 그의 입맛에 맞추어 보고서를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나를 통해 그의 생각을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간혹 그의 생각과 다른 검토서가 만들어지면 그는 심하게 화를 낸다.

부장이 되었으면 과장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명확하게 어떤 결론을 정하여 지시하는 것도 아니어서 내 머리로 그의 생각을 유추해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KY과장이라도 우리 부서로 끌어들이면 조금 나을 텐데 KM이나 KT이 모두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보니 내가 짜증이 나고 힘이 많이 든다.

L과장은 요즈음 처장에게 완전히 엎어져 절대복종하며 입안의 혀처럼 그의 비위를 잘 맞추고 있다.

그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루는 김처장이 내게 와 사업소장 추천 전산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PC를 점검해 달라고 해 직원 Y와 함께 그의 방을 찾았었다.

상황을 알아보니 내가 설계할 때는 사업소장 추천평가에 상대평가를 적용한 사실이 없었는데 다섯 가지 항목 중 두 가지 항목에 누군가가 상대평가를 하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아 처장이 평가를 하면서 짜증이 나 내게 책임을 묻고 따지려 했던 것이다.

내가 Y에게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L과장의 지시를 받아서 했다고 실토했다.

처장은 L과장을 불러 진위를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장은 다음에 바꿔!”

하면서 크게 역정을 내지 않았다.

만일 내가 이와 같은 사건을 저질렀다면 그는 펄펄 뛰면서 고집이 세니 제 맘대로 하느니 그럴 줄 알았다느니 하면서 잘근잘근 씹어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L과장에게는 내가 질투로 속을 끓일만큼 관대했다.

한편으론 L과장이 요즈음 승진 철을 맞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한 일이었다.

L과장이 지나치게 월권한 거다.

사장 결재를 받아 확정한 사항을 한마디 의논도 없이 제 맘대로 바꾼 거다.

L과장의 그런 행동에 화가 많이 났다.

간부 작업실로 가 그에게 한마디 했더니 그는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화제를 돌렸다.

나도 화가 많이 나서 당신은 평가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 뒤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보다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작업실을 나섰다.

그는 지난번 4직급 심사승격제도도 내가 결정권자의 결재를 받아 확정한 원본과 다르게 임의적으로 변경하여 시행해 나를 어렵게 한 적도 있었다.

관료제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이다.

그 외에도 내 의견과 불일치 하는 경우 자기 의견대로만 밀고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정중하지만 따끔하게 바로잡을 것이다.

아직은 내가 부족한 탓으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참고 견디면서 바로잡아가는 과정이 경영훈련이다.

 

K처장은 나와 M과장, T과장을 자기 방에 불러 11시 까지 1직급 승격제한에 관한 장단점을 분석해 오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것도 결국 나를 우습게 만드는 잘못된 경영방식이다.

지시사항이 잘못 전달될 우려가 없다면 부장만 불러서 지시를 하는 것이 옳다.

나는 두 과장에게 모두 함께 지시사항을 들었으니 각자가 검토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오라고 주문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 온 보고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T과장의 검토서는 주변을 헤맬 뿐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검토서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이번에도 내가 혼자 보고서를 만들어 처장에게 가져갔다.

그는 보고서의 내용이 너무 많으니 줄여달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고서를 다시 압축해드렸다.

나도 가끔 과장들에게 의도적으로 보고서 재검토를 지시한다.

더 나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편이지만 당하는 당사자는 무척 괴롭다.

K처장은 또 해외분야 기타 직군의 승진방법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만들어 오란다.

이와 같은 일들은 사실 모두 운영파트인 OOOO팀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더 높은 시야에서 그런 일들을 모두 내게 맡기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부하직원이니 자기 멋대로 업무를 분장해 최적의 대안을 구하려는 거다.

난 그게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내가 그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제도는 운영의 상위개념이기에 때문에 제도와 연결된 운영업무가 불분명할 때에는 제도가 당연히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L과장은 왜 운영에서 해야 할 일을 제도에서 하느냐고 내게 이의를 제기한 적이 많다.

나는 그가 아직 어려서 보다 폭넓은 생각을 갖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불만 섞인 항변에 무언으로 대처한 적이 많다.

C부장이 OOOO팀 과장으로 있을 때도 나에게 반발을 했었다.

그렇게 업무를 지시한 사람에게 이의를 제기해야지 왜 내게 그러느냐고 하려다가 대의를 위하여 참았었다.

그걸 지시한 상사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만만해 보이는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 거다.

내가 가져간 보고서를 읽어 보고 처장님은 또다시 나에게 화를 내었다.

그의 생각은 죽끓듯 변한다.

나는 그냥 그의 화풀이용 애완동물이다.

그의 지나친 망언이나 성냄을 나는 다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도 막내둥이로 태어났고 나도 막내둥이다.

막둥이끼리는 서로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나에게 던지는 질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이 정말 하찮은 일들이라는 것을 쉽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나보다 한참 위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의 넓이나 깊이도 한참 높은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그가 아무리 성내며 질타를 하더라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내가 자기 생각을 미리 읽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고서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내게 해외분야 기타직군 관련 검토지시를 했는데 나는 곧이곧대로 내 생각대로 보고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크게 성을 내었다.

그러면서 내게 부장이 되려면 아직 멀었단다.

그런 생각은 과장 때나 하는 거고 이제는 부장이 되었으니 달라져야 한단다.

때론 정무적으로 판단하란 이야기이다.

딴에는 사장이 일부러 지시한 뜻을 고민하여 만든 보고서인데 같은 사안에 대한 해석이 처장님과 달라 생긴 해프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먹어도 나는 그런 것들에 마음 상해하거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맷집은 누구보다 강하다.

 

위기철의 ‘9살 인생을 읽었다.

내 어렸을 적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어 좋았다.

작가가 무척 논리적인 사람이어서 문체가 깨끗해 더욱 좋았다.

그 책을 읽자마자 곧바로 국민학교 4학년 5학년 때 썼던 나의 일기를 읽었다.

소설 속 9살 인생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에서다.

그 소설을 보면서 궁극엔 나도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퇴한 후에는 나도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쓰고 있는 일기를 잘 정리만 해도 멋진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20년 전에 계획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른바 내 사생활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칭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때 내게 일어났던 일상이나 사건 사고에 대한 그 때 생각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그날그날 내게 일어났던 일상과 생각들을 통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3일에 이어 14일 아침에도 P부처장과 같은 조로 테니스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