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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0204 잘난 척 까불지 마

by 굼벵이(조용욱) 202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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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4(수)

아침 일찍 노동사무소 K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참고인 조사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오늘은 마침 아침 10시부터 전무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날이었는데 업무보고 보다는 그 일이 더욱 중요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K부장과 함께 노동사무소를 방문하였다.

K은 쇼맨십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리 둘을 놓고 예의 상투적인 이야기를 계속해 대더니 점심때가 되자 점심식사를 자기가 대접하겠다고 한다.

마치 범죄수사 영화에서 good cop이 피의자에게 국밥을 먹이듯이 우리를 콩나물국밥집으로 데려가 국밥을 먹였다.

식사비도 그가 내었다.

K부장이 얼른 먼저 밥을 먹고 밥값을 내러 카운터로 가자 그는 극구 말리며 자기가 밥값을 내었다.

나는 그걸 옆으로 보고만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행각은 일종의 쇼다.

나도 그러는 그를 은근히 비꼬아 '수사비로 식사대접을 받으려니 국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며 일부러 밥을 조금 남기었다.

내가 차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했다.

노동사무소 근처에 있는 찻집으로 올라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감독관 K는 자기 아들 자랑이 늘어졌다.

그는 실은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일련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관계를 개선한 것 같아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파견자도 수백명 되어 또 무슨 일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니 그 사람과 계속 교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노동사무소를 다녀온 내용에 대하여 처장님과 전무님께 보고했다.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신 이야기며 다음주 수요일에 노동사무소와 발전 5사 사장단 회의가 있다는 이야기 까지 하였다.

발전 5사는 회사분할에 따른 노사분규 때문에 나름 노동사무소와 교분을 유지해왔지만 우리는 모회사이면서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감독관들이 늘 불만을 표출했었다.

한마디로 자신들 알기를 우습게 알고 교만을 떤다며 이참에 제대로 콧잔등을 까겠다고 벼르고 별러왔던 듯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지나친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를 어렵게 만든다.

생의 원동력이고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이지만 그걸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한신의 일화에서 생긴 과하지욕의 의미를 반드시 새길 일이다.

한신이 힘이 모자라거나 능력이 없어서 백정 불량배 바짓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수모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자존감은 내적으로는 반드시 지녀야할 품성이지만 함부로 외적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

튀는 놈은 반드시 제거되는게 자연현상이다.

예초기로 풀을 깎다보면 메뚜기 등 풀안에서 놀던 각종 곤충들이 튄다.

그러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제비가 나타나 튀어오른 놈을 낚아챈다.

나도 인사처 시절 과하지욕을 교훈삼아 늘 스스로를 경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중지추가 있었던지 추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KSY과장이 인사차 다녀가면서 저녁식사를 같이하잔다.

KT과장도 함께 데리고 갔다.

동해수산 횟집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인사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사제도에 관한 여러 가지 불만을 제기하기에 어떤 배경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런 제도가 지향하는 목표와 효과 따위를 조리있게 설명해 주었다.

내 설명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간과한 부분을 이해하고 그동안의 편견을 바로잡는 듯했다.

저녁 9시 즈음하여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