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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0209 난 결코 로비스트가 될 수 없어

by 굼벵이(조용욱)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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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9(월)

오늘은 회사를 가는 대신 아예 OO노무법인으로 출근하였다.

B노무사가 피진정인 답변조서를 작성하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싶어 해서 아침 일찍부터 거기로 현장출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혼자 작성해도 되는 것을 공연스레 나를 불러 놓고 하루 종일 아까운 내 시간만 허비했다.

내가 특별하게 할 일도 없고 해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다가 그가 던지는 몇 마디 질문에 답변을 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FAX로 송신 받았다.

오늘 저녁에 옥돌집에서 처 회식이 예정되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B노무사와 저녁식사를 했다.

처장은 벌써 술이 한잔 되어 혀꼬부라진 소리로 마무리 잘 하고 오라고 했다.

일식집(이수사)에서 정식을 시켜 소주 2병과 함께 먹으니 8만 2000원 정도 나왔다.

저녁 식사비는 업무추진비로 내가 내었다.

보통 일식집은 1인당 12~3만원 하는데 그나마 싸게 먹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다.

그자리에서 B노무사는 OO발전의 L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술한잔 하자고 했다.

닥터라는 상호명을 가진 단란주점에서 L과장과 더불어 함께 술을 마셨다.

함께 나온 여자 접대부들은 우리 눈을 피해 양주를 몰래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이 몇 번이고 그라스에 양주를 따라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B노무사가 술값이 싸서 자기 단골이라고 했던 게 모두 거짓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주 2병이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술값은 도저히 내가 계산 할 수 없어 B노무사로 하여금 계산하도록 했다.

내가 그만 일어서려고 하자 B노무사는 이미 3차 까지 값을 지불했다며 자기들과 함께 파트너랑 자고가야 한다며 극구 말렸다.

나는 사랑 없는 섹스는 싫다.

더군다나 양주를 몰래 버리는 파트너랑 자는 것은 더 싫다.

나는 그의 완강한 만류를 뿌리치고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난 정말 바보다.

로비스트로서는 빵점이다.

그러나 술이 만취되어 이성이 마비되었다면 몰라도 이성이 작동하는 한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행동거지를 흩뜨리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아온 때문이다.

우리집 유전자가 그런 데에다 초등학교시절 어릴 때부터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반장을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동안 한 결과가 이렇게 굳어버린 것이다.

병아리의 각인효과처럼 초기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어려서 체득한 습관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가져간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로비스트가 될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적도 많이 생기고 승진도 늦어졌다.

그래도 하느님은 언제나 내편이어서 그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러웠을 망정 나를 1갑 최고직급까지 인도해 주셨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이루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루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