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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0812-30 몰아쓰는 일기-나만 찾는 처장/사랑하는 아들들아

by 굼벵이(조용욱)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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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19(금)

오랜 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못 일어나서 못쓰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게으름 때문에 못썼다.

지난 일요일은 엄마 생신이어서 시골집에 가서 엄마 모시고 점심을 함께 했다.

형님과 작은 아버지 내외분, 외삼촌, 두루두루 해서 장수촌 오리집으로 모셔서 누릉지 오리탕을 먹었다.

점심 값은 156,000원이 나왔는데 내가 내었다.

16일인 월요일은 처장님이 경영혁신 관련 보고를 금주 중에 마치고 싶어 하셨으므로 그걸 손본다고 온 밤을 꼴딱 새웠다.

처장은 저녁에 퇴근하면서 초간고시 관련 보고서를 다시 손봐달라는 주문을 하셨다.

그걸 새로 쓰는데 새벽 3시 반이 되어서야 마칠수 있었다.

결국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처장 방 옆에 있는 회의실 긴 의자에서 잠간 눈을 붙인 후 다음날 아침 보고를 드렸다.

내가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데 처장은 자꾸만 보고서가 어렵다고 한다.

밤새도록 새로 쓴 보고서인데 그러니 기분이 꿀꿀하다.

 

화요일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연 이틀 밤을 새울 수는 없는 일이어서 밤 10시쯤 김처장이 가자고 해 퇴근을 하였다.

 

18일인 수요일은 김처장이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배구선수 중 두 사람이 은퇴를 하게 되자 배구 감독이 은퇴식에 김처장을 초청하였다.

나는 그를 따라 술상무로 함께 갔다.

결국 술이 떡이 되어 돌아왔다.

 

19일은 노동사무소 고소사건 조사를 받는 날이어서 김영미 노무사랑 강남지방노동사무소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한병술 반장은 내게 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기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서울 말씨를 쓰는 전형적인 공무원 상이고 매우 정직해 보였다.

 

20일 금요일엔 KJ부장이 맥주 한 잔 하자고 해서 오크우드 빌딩 공간 사이에 마련된 생맥주 집에서 KEDO 식구들과 맥주를 마셨다.

맥주만 마셨는데 꽤 많이 취해왔다.

 

21일은 아침 새벽부터 잠실에 나가 테니스를 하였다.

P실장과 한조가 되어 한번은 이기고 두 번은 졌다.

KSK 전무 부부가 한 게임 부탁해 와 P실장과 2게임을 서비스 해 주었다.

두게임 모두 6:0으로 이겼다.

 

22일은 일요일임에도 오후 2시에 만나자는 김처장님 주문에 따라 K부장과 관리팀 과장들 전원 그리고 KY과장이 회사에 출근하여 밤 11시 30분까지 야근을 하다 들어갔다.

김처장은 자기 스타일의 보고서를 만들기 위하여 부단히도 애를 썼고 그것은 어찌 보면 사장에 대한 일종의 사보타지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와 또 경신이를 울렸다.

호신이는 머리가 따라주어 그나마 영어 단어를 잘 외우는데 경신이는 계속 버벅거리며 외우지를 못한다.

머리가 안 되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몸까지 편하게만 지내려고 해서 또 한번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 구멍을 내었다.

난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도 없지만 있어도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오로지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이라고는 성실하게 근검절약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떻게든 독립적으로 혼자 스스로 독립해 나가게 하는 것만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다.

 

어느새 일주일이 훌떡 지나가고 새로운 월요일 8. 23일을 맞는다.

오늘은 '나라도' 음식점에서 김처장과 고등어구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고도원의 '나무는 스스로를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책을 한권 샀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에게

경신아!, 호신아!공부하기 많이 힘들지?

그러나 공부는 그만큼 힘들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란다.

공부하기가 쉽다면 예부터 학문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겠지.

아빠가 요즘 좀 심하게 해서 미안하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너희들에게 다가올 미래가 너무 걱정되어 여름방학 내내 휴가 한번 제대로 못가고 너희들에게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애를 쓴 것이란다.

*******

앞으로 너희들 앞에는 가면 갈수록 험하고 어려운 인생길이 펼쳐질 것이다.

아빠는 이미 가본 길이기에 너희들이 시행착오 없이 그 길을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너희들에게 신경질도 부리고, 나무라고, 심지어는 매질도 하는 것이다.

옛말에도 아이를 아끼려면 매를 아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

스스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부모의 가장 큰 역할중의 하나이다.

부모는 단지 너희들을 낳아놓기만 했을 뿐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것은 너희들 자신이다.

아빠가 너희들의 비만을 걱정하며 수없이 이야기는 것도 그것이 미래에 너희들에게 미칠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하는데 너희들은 스스로 고치려는 노력이 없더구나.

야채 중심의 식사와 아무리 먹고 싶어도 저녁식사는 적게 먹도록 절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그런 부분이 참으로 안타깝다.

********

공부도 너희들 스스로 알아서 계획을 세워 취약한 부분 중심으로 과목을 바꾸어가며 한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터인데 너희들은 엄마 아빠의 눈치만 보며 하루하루를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인내와 노력으로 하는 것이다.

누가 얼마만큼 정신을 집중해서 인내하며 잘 견디느냐가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빠는 졸릴 때 잠깐 5분이나 10분 정도 의자에서 잠을 잔다. 그러면 새로운 기분으로 맑은 정신에 글을 읽을 수가 있단다.

졸릴 때 그렇게 잠깐 잠을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잠들거나 조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잠에 취해서 결국 공부는 공부대로 못하고 잠은 잠대로 못자고 말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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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너희들이 마음을 다잡아 학업에 정진했으면 한다.

어떤 일이든 집중하고 몰두할 수 없는 사람은 인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 집중하여 몰두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학생은 공부를,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그렇게 해야 성공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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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너희들에게 물려줄 유산도 없지만 혹 있다고 하더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 각자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나가야 한다.

아빠는 너희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라고는 근면검소하고 성실한 마음가짐 밖에 없다. 그거면 어디든 가서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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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길었다만 아빠가 말 하려는 게 무언지 똑똑한 아들들이기에 잘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다.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인내의 결실이다.

거기에 남을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정신까지 같이 곁들여 가슴으로 살아가는 아들들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2004. 8.23.

 아빠가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is to know how to be self-sufficient" 

 

처장은 예외 없이 오늘도 11시 반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였다.

처장이 남아있으면 모두들 퇴근하지 않고 남아서 함께 야근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모두들 군말 없이 일이 없으면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라도 마지막까지 남아 함께 버틴다.

 

아내가 디카를 사고 싶어 했다.

자기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사고 싶어 했고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안 사 줄 것 같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돈으로 사겠다고 나보고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이번 주도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는데 처장이 일부러 야근하면서 인사처 온 식구들 발목을 잡는 것 같다.

직원 때도 그분을 모셔봤지만 그분은 늘 그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 어떤 사람이 가져간 보고서에도 만족을 못하고 보고서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썩 훌륭한 보고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저녁 엄살을 부리며 퇴근시간 이후 남아서 하루에 한 장 정도 분량의 보고서를 스스로 써나간다.

그러면서 마무리까지 잘 해주면 괜찮은데 대부분의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형태로 만들어 놓고 내게 들고 와서는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나와 다른 면도 많고 모시기 참 어려운 분이다.

이번 주는 지난 금요일에 oakwood 생맥주 집에서 맥주파티를 가진 것 외에는 일주일 내내 술을 삼갔다.

 

나는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외교육을 가야한다.

인사관리분야 MBA과정을 신설하고 거기에 다녀올 것이다.

나는 항상 나의 꿈을 꾸고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이루어 왔다.

이번에도 나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번에 야근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A과장에게 해외교육 과정을 부탁 했었다.

A과장도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인정하였고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꼭 가야한다.

 

26일에는 L강남지방노동사무소장이 본청으로 전보되었다고 해 인사차 처장과 함께 노동사무소를 들렀다.

먼저 H반장을 만나 발렌타인 21년산 술 한 병을 안겨주며 내일 있을 행사에 사용하라고 전해주었다.

아울러 L소장을 만나 차 한 잔을 나눈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차는 그랜져 회사차를 빌려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녀왔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감독과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JH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미안하다.

어느덧 나도 로비스트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

 

금요일인 27일에는 처장님이 맥주를 사신다고 해서 oakwood 생맥주 집에 갔다.

여러 순배를 나눈 후 처장은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회사에 올림퍼스 디지털 카메라를 두고 왔으므로 그걸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퇴근 할 때마다 아이들은 잽싸게 튀어나와 말은 안하지만 내 손을 쳐다보며 오늘은 카메라가 들려있으려나 확인하는 눈빛을 보내왔었고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내 손을 보거나 엉뚱한 물건을 확인하고는 이내 실망하는 눈빛으로 되돌아서곤 했다.

오늘 마침 통신주문한 디카가 도착했으므로 조금이라도 일찍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에 술이 조금 취했지만 디카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간 것이다.

사무실 문을 들어서려는데 KC부장이 회사 앞 전통찻집에서 차 한 잔 나누고 있으니 그리로 오라는 전화를 했다.

거기 어울려 H과장과 LN이랑 맥주를 여러 병 나눈 뒤에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토요일 아침에는 HBS부장과 PDW부장 그리고 HB과장이 함께 어울려 테니스를 하였다.

연이어 4게임을 즐기고 나니 나름대로 운동다운 운동이 되었다.

나와 HB조가 이겼으므로 점심은 내가 샀다.

 

놀토로 휴무일인데도 처장 명을 받아 오후 3시에 출근하여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처장의 그와 같은 행태에 짜증이 나지만 어쨌거나 잘 견디어 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의미 없는 것들을 엄청나게 확대하여 각종 데이터분석을 시키며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그를 말릴 자가 없다.

나도 못 말리는데 누가 말리랴.

단지 옆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처럼 포장하여 보좌할 뿐이다.

업무에 관한한 그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런 일이다.

그의 눈에 나서 변방으로 처진 P부처장도 힘들겠지만 덕분에 내가 최측근에서 보좌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제 처장은 나만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