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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5

20050823 호신이 담임선생님 전상서

by 굼벵이(조용욱) 202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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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이 담임선생에게 보낸 편지]

오늘 아침은 정말 청명했습니다.

출근길 서울교대 교정의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碧空’ 그 자체였습니다.

손가락으로 톡 치면 쨍~ 하고 금이 갈 것 같은 파아란 하늘이었습니다.

비록 어제의 과음이 발걸음을 늦게 하였지만 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을 열어놓았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빠짐없이 운동하러 나오시는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나무사이 샛길로 지나갔습니다.

원래 그곳은 길이 아닌데 운동하시는 분들이 자주 다녀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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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이가 방학하던 날 큰 애와 함께 독서실에 보냈었습니다.

공부를 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꾸벅꾸벅 다니기는 잘 다녔습니다.

지난주까지 한 달 동안 다녔는데 선생님 말씀 듣고 처음에는 몇 번 간섭하다가 나중에는 그만두었습니다.

간섭하기도 힘들고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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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는 마음먹고 우면산 독서실에 갔습니다.

지금까지 술 취한 아버지 아니면 영어공부 한다는 핑계로 컴 앞에 앉아 영화만 보던 아빠의 모습에서 공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개관이었는데 큰애는 개학(서초고)을 해서 학교에 갔으므로 호신이만 제 옆자리에 앉힌 후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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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대학 다니던 시절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호신이는 몸을 비틀며 안절부절 못하더니 이내 졸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전 내내 졸고만 있었습니다.

녀석이 아마도 독서실 다닌 한 달 내내 그러고 보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점심에는 식당에 같이 가서 녀석이 제가 먹으려던 깡장비빔밥을 시키기에 저는 고등어 보쌈을 시켰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잠시 산책을 하고 다시 독서실에 들어가 저녁 7:30분까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책을 4권이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점심에 먹은 비빔밥에 보리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방귀가 나오는데 끼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참았더니 배가 몹시 아파서 못 견디겠다고 했습니다.

안하던 공부 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가서 해결하고 오라고 했더니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결국 해결을 못하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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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합 9시간 30분을 그 녀석과 1m도 안 떨어진 거리에서 같이 지내며 그 녀석을 관찰했는데 정말 주위가 산만한 것 같습니다.

집중해서 책을 본 시간은 아마 2시간도 채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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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은 일요일이어서 아침 일찍 테니스를 하고 들어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큰애와 호신이를 데리고 다시 우면산 독서실에 갔습니다.

제가 가운데 앉고 큰애는 왼편에 작은 애는 오른 편에 앉혔습니다.

전날의 졸음에 핀잔을 놓았더니 녀석이 안 졸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저는 공부하다 졸리면 잠시 그 자리에서 눈을 붙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제가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점심식사 후에는 꼭 10분정도 잠자는 버릇이 있기에 거기서도 의자에 앉은 채 10분 정도 잠을 자려는데 그런 모습이 우습다고 녀석들이 키득거리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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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점심시간이 되어서 같이 피자헛에 갔습니다.

집사람까지 불러서 함께 핏자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독서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날도 저녁 7시 30분까지 4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말을 이용해 도합 8권의 책을 읽은 것입니다.

큰애가 내가 보는 책을 읽고 싶어 해 존 맥스웰의 ‘생각의 법칙’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읽게 하려고 ‘어머니의 편지’에는 중요한 어구에 밑줄을 그어놓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시간 날 때 읽으라고 했는데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정리해 놓은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는 아이들과 독서실에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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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신이가 공부시간에 졸지는 않던가요?

제가 보면 밤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안잡니다.

그 녀석 독서실에서의 행태를 보면 아마도 그 잠을 수업시간에 보충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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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잘못 가지고 있는 습관 세가지를 설명해주고 그걸 바로잡으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식습관입니다.

식습관이 비만을 낳았고 비만이 게으름을 불러와 자신들을 망치고 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잠 습관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필요한데 늘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어 아빠의 수면까지 방해하고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나거나 하루 온종일 꾸벅꾸벅 조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정작 깨어있어야 할 때 졸고 자야 할 때 말똥말똥 합니다.

세 번째 공부습관입니다.

스스로학습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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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잘못된 습관들이 저와 집사람이 아이들 때문에 싸우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87년 결혼해 지금까지 18년을 살아왔는데 고쳐질리 만무하여 그냥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삽니다만 그래도 정말 속상한건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습관 세 가지 모두 그 중심에 집사람이 있기에 그걸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집사람은 그걸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팔 걷어들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아버지 모습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으로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책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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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아이가 보낸 한 달을 정리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생활 속의 이야기를 엮어보았습니다.

유치하다고 생각지 마시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빠의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2005.8.23 호신아빠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