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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102 선생님의 편지

by 굼벵이(조용욱)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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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새해 아침에 박중원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선생님이 우리반 인터넷 카페인 '여섯 줄의 선율'에 글을 올리셨는데 과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문이다.

정제된 언어들로 보아 몇 번의 교정을 거쳐 진정한 마음으로 토해내셨다.

 

‘난생 처음 방문하는 집 창문을 두드리는 설레임으로 노크합니다.

나의방문을 반가워하지 않는 이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결코 좋은 선생이 아니었음을 늘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언행-선생답지 못한, 어른답지 못한 일로 상처받은 이는 없는지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오라는 자리마다 속없이 웃으며 달려갔던 일도 부끄럽습니다.

미련은 없으나 더 좋은 선생이지 못했던 자책과 후회가 남습니다.

초임시절이었다지만 성숙하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어리석었음을 고해합니다.

원래 옛날 선생은 있어도,없어도 되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우선입니다.

반가웠습니다. 박중원 올림’

 

이 글을 접하고 곧바로 답장을 쓴다는 것이 하루 늦어져 새해 첫날에 쓰게 되었다.

  

새해 새날에 참회의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아주 오래 전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안중국민학교에서 서울돈암국민학교로 전학 가던 날이 생각납니다.

저도 눈물이 많았지만 선생님도 눈물이 어지간히 많으셨습니다.

가끔씩 올라가 벌을 섰던 옥상에서 떠나는 제 등을 쓰다듬어주시며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늘 강한 모습만 보이셨던 선생님이 그날은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전 그렇게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를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사랑과 격려가 오늘의 저를 만들어 놓았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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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서 영아기 때 까지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 즉 유아기라고 하더군요.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자신만의 경향성을 형성하는 시기인 만큼 그럴 수밖에 없지요.

(정체성 형성의 기초를 만드는 시기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그 시기에 저는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하게 성장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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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선생님의 지난 과거에 대한 회상을 읽으면서 선생님이란 직업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양각색의 아이들 개개인에게 맞춤식 사랑과 정성을 쏟아야만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아마도 요즘은 한 학급의 학생수를 제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지독히도 어려운 시절이라 7~80명이 한 학급에서 우글거렸으니 신이 아니고서야 모두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는 불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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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뒤늦게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요.

육체적인 외상은 외부에 노출되어있어 쉽게 치료가 되지만 심리적인 내상은 치료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매일 얼굴 보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수 십 년의 시간이 단절되다보면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어린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미해결 상태로 놓아둠으로써 생긴다는군요.

그래서 상담가들은 그 미해결 과제를 찾아내어 새로운 해석을 내리거나 성장시킴으로써 치료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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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어린 시절에 상처를 준 친구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한다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똑같은 말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혹시 국민학교시절 철없는 나이에 내가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친구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물론 선생님에게도 배은망덕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제 삶의 주변에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인간이기에 불완전합니다.

아마도 그러기에 신은 인간에게 두 손을 주신 것 같습니다.

서로 감싸 안고 아픔을 쓰다듬어주면서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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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길가의 나무를 보더라도 상처가 치료되면 더욱 단단해 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아픔을 가졌던 친구들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아마도 나무의 옹이마냥 더욱 단단하게 우리들의 과거를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새해에는 선생님이 이 카페의 고문이 되셔서 늙어가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성장을 지켜봐 주시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친구가 있거들랑 예전처럼 가끔씩 옥상으로 불러 기합도 주시고 해 주세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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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의 승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새해 선생님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이계연 선생님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6학년 5반 반장 조용욱 올림

 

이렇게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박선생님의 사과문에 동조하는 글을 공지사항 란에 올렸다.

 

OO이가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걸었다.

1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약금까지 치룬 부동산 매매계약이 은행의 대출이 막히는 바람에 다 날아가게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그 천만원을 해 주기에는 부담이 되어서 어제 문자로 내 용돈 모아놓은 것 박박 긁어서 200만원은 어떻게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혹시 잘 안 되어서 날리더라도 친구 이름으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했다.

녀석이 ‘고맙네. 혼자 사무실 지키고 있다네.’라는 문자 메시지만 남기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늘은 통화를 해 보고 필요하다면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아침에 테니스장에 나가 다섯 게임을 했다.

계속 무릎이 안 좋다.

엊그제 이정복 부장이 글루코사민 한 병을 사다주었다.

역시 무릎은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닌 모양이다.

시큰거림이 계속된다.

이러다가 무릎 전체가 망가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규정 속도로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가야 편안하고 안전하다.

인생의 레이스도 마찬가지다.

무리하지 말고 가야 한다.

 

난 앞으로 정말 멋진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우선 부장급 까지는 인사전문가로 완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실력을 쌓아 놓아야 한다.

처장급이 되는 순간부터 진정한 리더로 거듭날 것이다.

모든 이론적 무장과 마음의 자세는 준비 되어 있다.

아마도 하느님은 나의 교만과 편견을 없애고 진정한 자신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내게 많은 시련을 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영혼까지 일터에 묻게 하라’ 책을 낼 때에는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도록 해주었다.

내가 어느 정도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갖추어진 모양이다.

 

당신의 뜻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나는 진정한 당신의 아들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내게 준 소명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이행할 것입니다.

 

(박중원 선생님은 지병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다가 먼저 소천하셨다.

소문에 사모님 이계연 선생님은 외국에 나가 사신다고 들었다.

모두들 내겐 정말 소중한 분들이셨다.

내 부모가 못한 역할을 대신해 내게 깊은 사랑을 주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