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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227 흔들리는 한전

by 굼벵이(조용욱)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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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어제는 또 한바탕 뒤집어 졌다.

초간고시 선발 예정인원을 결정하는데 사장이 또 시비를 붙은 모양이다.

송변전과 배전을 통합해서 뽑으면 어떻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처장님이 아무런 답변도 못하고 결재판을 접어 다시 올라왔다.

처장님은 해외사업 전문가니 해외사업 관련 사항 같으면 어떤 질문도 한방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별거 아닐 듯해 갑작스레 맡게 된 인사처장 일을 하다보니 이런 예측불허의 불시질문에 약할 수밖에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예측은 예측이 가능할 만큼의 충분한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 그냥 생긴게 아니다.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은 그 일에 종사해야 그 일에 차별화되는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고 그런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일에 관한 예측도 가능하다.

하루 세시간씩 일해 1만 시간을 채우려면 적어도 같은 일에 10년은 종사해야 한다.

적당한 대응방안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미 이를 예정해 고시를 준비해 온 직원들이 있어 급작스런 변경은 어려우니 일단 이번에는 그냥 구분 시행하고 다음해에 통합방안을 검토해 보겠습니다'하고 임기응변으로 넘어갔어야 한다.

사장이 원하는 대로 직군을 통합해서 시험을 보게 하면 노조가 한바탕 뒤집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못마땅한 사장인데 조합원에 대한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으니 한바탕 굿꺼리를 제대로 제공한 거다. 

사장이 노조에게는 절절매면서 애꿎은 인사처장에게만 엉뚱한 소릴 해 대서는 안된다.

싸움에서 노조를 이길 자신도 없으면서 긁어 부스럼 만들어 손해 볼 짓을 왜 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한전을 우습게 보아온 당신 생각에 한전에 전문성은 필요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분야든 전문성은 반드시 존중되어져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전문성이 무너지면 절대 경쟁에 이길 수 없다.

이 일 저 일 무차별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디테일에 집중하게 하는 시스템이 무너지면 안된다.

그런데 사장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전의 일은 누구에게 맡겨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사무직 일은 기술직이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사무직을 대폭 줄이라는 주문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가 아니고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는가이다.

기술자들이 기술자 콤플렉스에 매달려 자신들이 사무직에게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직군의 벽을 깨자고 하면서 정작 사장이란 사람이 사무직과 기술직간의 벽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어불성설이다.

권태호 부장이 처장과 함께 사장실에 들어갔다 와서는 내게 사무직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흥분된 어조로 목소리를 높혔다.

이 친구 늘 그 모양이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고 남의 집 불이니 흥분될 만도 하다만 잔뜩 흥분해서 신나게 사장 생각을 이야기 한다.

자기 생각으론 내 팀에서 이루어지는 직무분석을 통해서 해결해야 된다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태가 얄미워 한 참을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

기획처 조직개발팀에서 정원을 조정해야 하는 사항 같은데?

했더니 잔머리 지수가 높은 이 친구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제자리로 돌아가 조직개발팀으로 전화를 걸어 나랑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유차장에게 장황하게 설명한다.

사장 바뀌고 나날이 이 모양이다.

회사가 일관성도 없이 이사람 저사람 오가며 조직문화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그러니 독점체제가 아니라면 벌써 망했을 회사이다.

자신의 민간기업 경험 세계에서 가져온 자신만의 생각을 보편적 진리인 양 떠들어대는 사장의 말 한마디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한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김쌍수 사장님은 민간기업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으면서 기술직으로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기술자이지만 관리자로 성공한 케이스다.

그러니 모든 기술자가 다 유능한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무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한 과잉 일반화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다양한 꽃들은 모두가 토양에 맞게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것들의 조화로운 삶이 필요하다.

경영자의 지나친 자기 과신은 금물이다.

 

퇴근길에 임청원 부장과 교대 앞 우삽겹 집에서 술 한 잔 나누었다.

늘 내 편에서 날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내게 해 주는 그가 고맙기 때문이다.

내일을 위하여 간단히 하자는 그의 의견에 동조하여 2차는 생략했다.

그가 전입할 때 권태호 부장이 그에게 준 상처가 너무 컸던지 권부장을 영 못마땅해 하는 것 같다.

권태호가 지난번 발생한 사건을 또다시 상기시켰던 모양이다.

그가 발령 날 때 권태호가 그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임부장을 위해 퍽이나 신경 써 준 것 처럼 생색을 냈지만 그에게는 그 말이 오히려 상처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상처가 너무 깊어 스쳐가는 바람에도 아픔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생색내는 방법도 잘 생각해야 한다.

그건 생색이 아니라 그에게는 칼을 들이 댄 것과 같다.

권태호 부장은 또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사건 당시 임부장을 위해 제 친구인 이명현 변호사에게 부탁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는데 임부장이 고마움을 모른다고 불만에 차 있는 소리를 한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상대방과 상황을 배려해야 한다.

임부장이 내 미래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절차를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하여 재확인시켜 주었다.

자격승격한 후 자연스럽게 경영 직군으로 바꾼다면 사무직군도 기술직군도 아니기에 자기 몫을 빼앗겼다는 불만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승격해 교육요원으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신분을 변경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