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6(목)
주간회의가 있었다.
지난 한 주 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논하는 자리다.
팀장들이 돌아가면서 자기부서 업무 진행사항을 설명하면 처장이 진도를 체크하고 문제점이나 착안사항을 지적한다.
허경구 처장님이 나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서 주단위로 시스템적 업무관리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방식이다.
반드시 지난 주 내용과 비교해서 진척사항을 논하거나 부진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우리 차장들이 그 내용의 중요성을 모르고 자료를 소홀하게 작성해 저녁 늦은 시간에 차장들을 불러놓고 한마디 했다.
“이 주간업무 보고서의 내용은 당신들의 얼굴이다.
여러분이 한 주 동안 무엇을 했으며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윗사람에게 알려주는 지표다.
차라리 놀았으면 놀았다고 적어라.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면 그것을 명확히 표현해 주어야 상사가 그 공을 인정해 줄 것이다.
여러분이 한 일을 인정받고 싶다면 제대로 정리해라.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보고서에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한 주 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이 보고서가 여러분 얼굴인데 여러분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놓고 싶은가?”
처장님은 나중에 이를 근거로 해서 인사고과도 평정할 것이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전하진 않았다.
나중에 또 한번 보고서 작성을 게을리 하는 일이 생기면 그 때 가서 말해 줄 것이다.
근무평정에 관한 TDR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이명환 차장은 내 맘에 쏙 들게 일한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내가 원하는 만큼 제 역할을 잘해 준다.
보고서를 바로 처장님께 가져가려다가 한꺼번에 가져가는 것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 오늘 아침에 가져다 드렸다.
이어서 노조의 단체협약 갱신요구안에 대한 검토서를 검토했다.
최차장이 취합한 검토의견이 영 함량미달이다.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는 최준원 차장의 변명도 있었지만 아직 경력이 일천해 내공이 제대로 쌓이지 않은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경험과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차장들이 아직은 근본적인 이유와 본질을 파고들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
검토를 마치고 차장들을 불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강을 지시했다.
그 자리에서 김병옥 차장이 별정직 6직급 직원에 대한 처우를 놓고 의아해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제는 업무 환경도 바뀌고 하는 일도 별로 차이가 없으니 일반직 4직급 밑에 5직급 기능직과 6직급 별정직을 묶어서 하나의 직급체계를 구성해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왜 일반직과 별정직을 구분해서 운영해야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회사 분사 이후 고리원자력발전소 근무자 중 별정직에서 일반직이나 기능직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한전을 상대로 퇴직금 반환 청구를 했던 사건을 설명해 주었다.
별정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채용 되었어도 이를 계속근로로 보아 퇴직금의 추가지급을 요구한 것이다.
전환채용시 별정직 근로기간에 대해 이미 퇴직금을 받았지만 그건 회사의 편의에 의한 것이고 사실상 계속 근로가 이어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부산의 한 노동사무소에 발생한 사건을 내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증거자료를 찾아낸 후 직접 부산에 내려가 근로감독관에게 증거자료를 제시하고 설명해 해결했었다.
당시 후문에 의하면 그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이 자신이 퇴직금을 추가로 더 받게 해주겠다며 해당 직원들을 부추겨 일부러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랑 얼마나 치열한 공방이 오갔겠는가!
결국 담당 근로감독관은 내게 혀를 내두르고 패배를 인정했다.
만일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유사사례가 너무 많아 퇴직금으로 수백억을 날릴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사건이라 절대 져서는 안되는 사건이었다.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인맥까지 총 동원해 내 주장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야 김병옥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며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는 채 노조는 집요하게 별정직 6직급을 직원 범주에 끼워넣어 자연스레 5직급 4직급 직원 범주에 넣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들이 나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야 어찌되든 알바 아니고 노조는 자신의 집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려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수없는 경험을 통해 체득해 왔다.
실은 처음 상용원의 명칭을 8직급으로 해달라는 주장을 할 때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 때 김종환 국장은 그것만 들어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각서까지 내게 써주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집행부는 '그때는 그때고 그 사람은 전임 집행부 사람일 뿐 지금 노조 집행부에 없다'면서 오리발 작전으로 떼법을 쓴다.
그러니 내가 힘들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엔 임청원 부장이 신입사원 특별채용과 관련해서 노조랑 시비가 붙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신임 사장이 오고 나서 자신의 운전기사 채용과 관련해 월급이 많네 적네 하며 우리에게 수차 이야기를 했었다.
나아가 혁신 전도사를 데려와야 한다며 KOO을 부장급으로 채용하고, 영어 전문가라며 POO을 채용하자 노조가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그런 노조의 행태는 옳은 일이다.
우리 회사는 민간회사와 다르기에 그런 식의 민간 마인드로 잘못 접근하다간 큰 코 다친다.
만일 새로 오는 사장마다 그런 전례를 남긴다면 이 회사는 그런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고 언젠가는 곪아터져 대형참사가 예견되니 노조 입장에서도 이를 방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장 입장에서야 이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 중 마음에 맞고 능력 있는 사람 데려다가 제대로 된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최고 경영자가 모든 걸 책임지고 직을 걸어 자기 마음대로 경영하겠다는 데 이를 말릴 방도는 없다.
잘못되면 책임자가 책임지고 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합리화하고 보조해야 하는 참모들 입장에선 자칫 잘못하면 화를 모면하기 어렵다.
그동안 수많은 사장들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게 될 테지만 이와 같은 전례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가며 새로 오는 사장마다 수많은 친위대의 비정상적 유입을 낳을 것이 뻔하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기업의 사장은 사장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규정에 정한 것 외에 직원 봉급을 1원조차 올려줄 수 없는 게 공기업 사장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기업 사장은 실질적인 회사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실질적인 주인은 따로 있다.
30년 이상 근속하며 목줄을 건 직원들이 실질적인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노조도 실질적인 공기업 주인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노조가 주인 될 자격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선출직 노조의 정치성을 버리고 진정한 경영 마인드로 일관성 있게 회사의 주인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영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한숨만 나온다.
사장이든 노조든 경영 마인드 보다는 정치 마인드로 무장된 채 경영의 탈을 쓰고 각자의 이익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하다.
이제 더 이상 정치가 주인행세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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