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2(월)
지난 주말에 전무님이 주재하는 산행이 있었다.
이도식 전무님은 처실별로 돌아가면서 주말에 산행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가장 건전한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박인환 차장이 내게로 와 행사일에 전무님 사모님도 오시는데 처장님 사모님도 올 수 없으니 우리 집사람이 와주었으면 좋겠다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마지못해 하면서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명환 차장이 8시 30분 경에 우리 집 앞에 도착해 우리를 픽업했다.
등산 루트는 산성각에서 시작하여 성 주면을 타다가 수어장대를 정점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김남수 위원장이 전무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침이 마르도록 내 칭찬을 한다.
많이 민망했다.
여기저기서 귀인이 나타나 나를 돕는다는 금년 신수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본 새해 신수 중에서 금년이 가장 좋은 해인 것 같다.
무언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노조로부터 그리 심한 공격을 받고도 부서지지 않고 잘 버텨내다보니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위로의 애틋한 감정을 자아낸 것이다.
나는 기회를 보아 적당한 순간에 전무님께 한마디 이야기를 전했다.
“저희 집사람도 예천이 고향이에요.
장인어른은 안동농림 출신인데 조흥은행에서 정년을 맞으셨어요.”
그렇게 화두를 꺼내 자연스레 집사람과 이전무의 대화를 유도했다.
집사람이 먼저 이전무에게 자기는 지보인데 예천 어디시냐며 대화의 문을 열었다.
둘이 이런 저런 고향에 관한 대화를 잠깐 주고 받았다.
나는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처음 만나 더 이상 길게 나눌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내 아내가 당신 동향사람이란 것만 인식시켜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은 유난히 동향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점심은 산성각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파전을 안주삼아 소주도 마시고 전무님이 가져온 음악 숙성 복분자도 함께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지은과 송병근 차장을 태워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려 생맥주 한 잔 더하러 갔다.
한 잔 더 하고 갈테냐는 내 질문에 송차장이 좋다고 해 맥주집으로 가는 데 지은이도 쫄래쫄래 따라왔다.
넷이서 을지로 골뱅이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술이 취해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술 마시고 취하면 말을 조심해야 한다.
취중 망언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나잇살이나 먹은 놈이 때로는 푼수처럼 헛소리도 해 가면서 틈새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페르조나에 지나치게 얽매어 순수한 자신의 감정을 학대하거나 가식적인 삶을 사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와 송차장이 각각 두 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을 보내고 집에 들어와 잠시 잠을 청한 후 저녁에 영화를 한 편을 보았다.
‘게임’ 이라는 제목의 사이코드라마다.
이렇게 주말엔 적어도 영화 한 편은 봐야 직성이 풀린다.
감기가 제대로 온 것 같다.
콧물이 나고 목이 부어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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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은 정상적으로 기상했다.
몸이 안 좋은 것을 핑계 삼아 30분 정도 더 이불 속에 있다 일어났다.
분석심리학 책을 읽다가 7시 반이 되어 테니스 가방을 메고 잠실 테니스장에 나갔다.
오늘도 많은 회원들이 득시글거린다.
오늘은 이상기 처장과 한 조가 되어 전승을 이끌었다.
이처장이 엄청 좋아한다.
그날 점심은 이처장과 함께 처음으로 이 테니스장을 찾은 최문규 부장이 냈다.
이처장이 전승을 빙자하며 자신이 낸다고 했지만 최부장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는 것 같다.
회원들에게 이름 석자라도 알리게 하고 싶었을 게다.
점심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와 보고서를 검토했다.
월요일에 있을 노사협의회 자료를 검토한 후 평가제도와 승격제도 그리고 초간고시제도를 차근차근 검토했다.
초간고시는 내 언어로 정제된 것이 아니어서 읽기에 걸림이 많다.
그래서 결국 내 언어로 다시 손질하기 시작했다.
사장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적어도 5번은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사장님 앞에서 막힘 없이 원숙하게 내 언어로 나 자신을 쏟아낼 수 있다.
지나쳐서도 안 되지만 모자라서도 안 된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아야 한다.
힘들어도 최대한 노력해서 내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지금 내 주변엔 온통 나를 도와주는 주는 사람들뿐이지 않은가!
저녁 6시 반까지 보고서를 검토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사람에게 돈데이 가서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집사람이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집사람이 만든 계란찜에 고등어 김치조림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영화 한편 보았다.
미션이란 영화인데 전에 한번 보았던 영화다.
그래도 재미있게 잘 보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티브이를 켰다.
산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삶이 방영되고 있다.
갑자기 전원생활이 그리워진다.
나중에 은퇴해서 시골 가면 그렇게 살아야겠다.
(지금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하지만 전원생활도 거기에서 파생되는 또다른 애환들이 있다.
행복해 보이는 길도 가지 않은 길일 뿐 삶은 어디에나 애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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