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2(금).
승진인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인사관리팀이 방문을 걸어잠그고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오늘 오후 4시 경에 상임인사위원회를 개최하기로 되어있단다.
어제는 비교적 조용히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 일찍 전무님이 주최하는 처장회의에 앞서 전무님 방을 찾았다.
일기를 쓰던 중 그걸 노사 실무 처장회의 결과를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알아내곤 일기 쓰다 말고 얼른 전무님 방에 내려가 보고했다.
전무님은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셨다.
전무님의 가장 큰 장점은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이다.
긍정적 피드백을 교과서대로 잘하신다.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가 이야기하면 함께 힘들어하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이해해 주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뜨뜻미지근해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사람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전무님이 아침에 내 보고를 받고 “수고했어.”라고 한 한마디가 하루 온종일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오후 늦은 시간에 퇴근을 앞두고 권태호 부장을 만났다.
권부장이 나를 승진시키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는
“전무님이 사인을 안 하려고 해서 내가 해야 된다고 막 우겨 사인을 받았어.” 한다.
“전무님이 왜 그러셨는데?” 하고 물으니
“어떤 새끼들이 자꾸 씹어댄 모양이야.
부장 승진도 그렇게 하고 순환보직도 안한 채 부처장까지 그렇게 승진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한 거 같아.
자기를 위해서 순환보직 기준도 바꾸었다고 하고.”
나는
“아니 순환보직 기준은 내가 바꾼 게 아닌데?”
권태호는
“그 새끼들이 뭐 그런걸 아나.
나도 좆나게 씹어대잖아
내가 전무님한테 그랬어.
나 같으면 형 같은 일 못했을 거라고.
온갖 수모 다 겪어가며 골 빠지는 일만 하는데 이젠 해방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장은 다른 사람들 보기 그러니 우선 승진해서 교육이라도 다녀왔다가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게 좋다고 했어.”
나는
“그래 고생했다. 고맙다.”
전무님이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불안해 왔다.
나는 임청원 부장, 장주옥 처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 상태여서 임부장과 함께 내려가 장처장을 만나 군산 아구찜 집을 찾았다.
아구찜은 집사람과 연애하던 시절에 자주 먹던 음식인데 아직도 질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 자리에서 난 권태호 부장과 나눈 이야기를 했다.
장처장도 임부장도 모두 '우리 이도식 전무님 같은 분들도 주변에서 수없이 흔들어대니 이 회사 사람들은 정말로 웃기는 사람들'이라며 뒷담화를 좋아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을 흉봤다.
임부장도 내 말을 듣고 흠짓 놀라는 기색이다.
장처장은 나보다 더 흥분해서 한참동안 그들을 흠씬 욕해 주었다.
남들이 무어라 해도 그는 영원한 내 편이다.
내가 도와준 것도 별로 없는데 그는 내게 평생 도움을 받았다며 내 칭찬을 한다.
나로서는 정말 훌륭한 귀인을 얻은 셈이다.
장처장이 내일 전무님께 찾아가 내 승진을 부탁하겠다고 했다.
마침 김시호 처장이 회식을 하고 나가면서 우리 테이블까지 계산했다.
승진대상자인 내가 밥을 사주어도 시원치 않은데 두루두루 신세만 지고 말았다.
멕켄치킨에 들러 생맥주 한 잔씩 더하고 헤어졌다.
장처장은 전철을 타고 가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택시라도 태워 보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그와 함께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왔다.
시간을 보니 11시 반이 넘었다.
혹시 전철이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싶어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 번 더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집사람에게 이번 주말에는 섬강 여행을 가자고 했다.
집사람도 그리 반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새로운 견지터 개발도 해 볼 겸해서 문막과 간현교를 한번 다녀올 셈이다.
그 쪽 방면으로 가면 차가 많이 막히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월간 인사관리 5월 호를 읽다가 좋은 글귀가 있어서 발췌했다.
○ 세계적인 미래학자 패트리셔 에버딘(patricia Aburdene)은 그의 저서 메가트렌드 2010에서 사람들의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가치, 생각, 마음 등을 Spirituality 라고 말했다.
○ 진정한 리더란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상대방과 소통하며 여기서 교감과 동감을 기초로 한 Leading 과 Supporting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포크레인 보다 힘이 센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야후에 들어있는 지식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세요.
이제는 기계들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기 때문에 손이나 머리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모름지기 남과 차별화되는 역량을 갖추고자 하는 개인과 조직은 가슴의 시대 즉 꿈꾸는 능력에서 차별화 되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꿈꾸고 도전하는 21세기에 걸맞는 개인과 조직능력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호신이와 아침을 같이 먹는 시간은 호신이에게나 나에게나 모두 고통스럽다.
호신이는 지금껏 한번도 제 어멈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첫 번째로 반응한 적이 없다.
“호신아, 밥 먹어라”
엄마가 처음에는 부드럽게 부르다가 대 여섯 번 불러도 잠자리에서 안나오면 짜증 강도가 높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 진다.
나는 가급적 우리집에서 부정적인 표현을 쓰지 말자고 했지만 참다못한 엄마는 나중에
“너 안 일어 날거야?”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신경이 곤두선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학습되어 몇 번째, 어떤 상태의 고성에 반응할 것인지가 호신이 머리에 인지도식으로 그려져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일정 한계를 넘은 고함소리에도 녀석이 안 일어났다.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보는 나도 신경이 곤두서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즈음 내게 일생 일대에 가장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기로 했다.
“일어나 밥 먹어라!”
하고 점잖은 어조로 녀석을 불렀다.
녀석은 제 아버지가 한 성깔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제 어멈 말은 개떡같이 알아도 아버지 말은 찰떡 같이 알아 듣는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인상을 완전히 구긴 채 억지로 밥을 먹는데 정말 가관이다.
지인이 보내준 명란젓을 제 어멈이 반찬으로 내어놓았는데 한 입 반찬 하기에는 조금 크게 잘라놓았다.
녀석은 그걸 젓가락으로 잘게 자른다고 명란젓 덩어리와 씨름을 하는데 잘 안 잘라지니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면서 젓가락을 휘저어 크게 털어낸다.
한 쪽 끝을 젓가락으로 잡고 신경질적으로 털어서 자르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을 바라보니 참 가관이다.
예전 같았으면 '밥 처먹기 싫으면 관둬!' 하고 한소리 했으련만 오늘은 꾹 참고 녀석의 행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내 머리엔 호신이에게 하고 싶은 말로 가득하다.
평소라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거다,
“명란젓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 명태를 잡기 위해 흘렸을 어부의 땀방울과
명태알을 따는 아주머니의 잔주름
고추 모종을 심고 몇 달을 키워서 땡볕에 나가 따고 말리는 농부의 시름
그 고추를 가루로 만드는 방앗간 할머니의 흰 머리
고춧가루와 명란으로 젓갈을 만드는 요리사 아주머니의 아픔이
골고루 배어있는 명란젓을
제 어멈의 밥 먹으란 말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너 같은 놈에게 학대를 받아야 할 젓갈이 아니다.”
하지만 이 말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냥 마음으로 삼켰다.
호신이 가슴에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호신이가 자기 자신 만의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세상 만물이 공존하는 드넓은 세상의 고귀함을 스스로 깨닫는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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