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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616 인생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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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승격예정인원 공고가 났다.

관리본부에 전문원 1()직급 승격예정인원 1명이 포함되어 있다.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안다.

그러기에 나는 조용히 은인자중할 뿐이다.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누가 어떤 형태로 나를 흠집 낼지 모르니 모든 언행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권태호 말맞따나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호의호식 하는 줄 알고 씹어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노무처에서 갑자기 정년연장과 임금 피크제 관련사항은 인사처에서 임급교섭위원회 회의자료를 준비하라고 떠넘긴다.

아마도 추후 제기될 정년연장에 대한 책임론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까지 와 있다.

정부 승인 없는 정년연장은 어렵다고 내가 그렇게 설명했건만 나를 협상 대상에서 몰아낸 채 노무처를 중심으로 이인교 처장과 김주영 위원장 그리고 박흥근 처장이 한준호 사장과 극비리에 정년연장에  합의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제 와서 그걸 실무담당자인 내게 넘기려는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네들처럼 비겁하게 굴지는 않겠다.

내게 주어진 역경 고스란히 짊어지고 헤쳐나가겠다.

나는 남이 농사지은 과실만 몰래 따먹는 그런 얄팍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믿는 가치나 생각의 방향이 옳다면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헤치고 나가 끝내 이룰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나날들이 남들 보기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난 징역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다.

내게는 지난 10년이 징역형 살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난 빅터 프랭클처럼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에 맞도록 내 인지도식을 다시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즐거움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 중 하나가 견지낚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을 찾아 몸을 담그고 물고기와 더불어 그간 받아온 스트레스를 깨끗이 씼어냈다.

그런 취미생활이 나의 징역생활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는 평정심을 주었다.

내게는 내 자유를 억압하는 간수도 있었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동료 수감자도 있었다.

처음 간수로 발령 받아 오면 대부분 나를 정말 죄질이 나쁜 장기수로 안다. 

그들은 대부분 인사처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인사처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CEO 측근부서라고 착각하고 오는 경우도 많다.

돌이켜보면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모든 간수가 처음 이동보직되어 왔을 때는 나에 대해 엄청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걸 하나 하나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참으로 처절한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었고 밤이든 낮이든 정신적인 것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오로지 그의 수족처럼 일해야 했다.

어떤 간수는 야행성이어서 밤늦은 시간까지 과음이 이어졌고 만취상태에서 오더를 내리면 그걸 냎킨에 받아적어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 집싸게 보고서로 만들어 간수가 나타나자 마자 들이밀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만취상태로 자정 넘어 간수를 택시에 태워 집 앞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집에 들어오면 죽음 같은 잠에 빠진다.

잠들었는지 까무러쳤는지 모른다.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럴 땐 정말 힘들다.

죽음 같은 잠을 서너시간 자고 이른 새벽에 출근해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달래가며 보고서를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 때의 어려움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난 그걸 내 부하직원들에게 절대 전가하지 않았고 모두 나 혼자 해결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간수를 내 편으로 만들었다.

간수마다 각각 성격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르기에 카멜레온처럼 그들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키면서 그들을 만족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니 나를 파내겠다며 벼르던 간수도 떠날 땐 가장 아끼는 왕팬으로 바뀌어 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내 조직을 확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 불편해 하는 것 따위를 몽땅 가져다가 거리의 청소부마냥 묵묵히 수행했다.

같은 수감자 중엔 나보다 앞서기 위해 날 내 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수도 없이 날 내치려 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 친구의 간계에 넘어가 의심의 눈으로 날 바라본 간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간수들이 나서서 날 보호해 주었다.

 

노조 P

그는 편집증 환자였다.

그런 환자로부터 당하는 괴롭힘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이코 드라마보다 더 극단적인 고통을 현실에서 맛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사이코드라마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설명해 준다.

그런 공포를 나만큼 오랜 기간 동안 버텨내고 경험한 사람도 없다.

지금은 그도 날 무서워하고 나도 그를 무서워한다.

때론 동병상련을 느낀다.

어쨌거나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시행일자나 적용기준을 노조와 확정짓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합의문안을 작성하는데 무리가 있어 직접 노무처 급여복지팀에 가서 문안수정을 협의하고 왔다.

나도 무척이나 고집스럽지만 급여팀 신현호 차장은 나보다 더 심한 황소고집이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만 보아도 그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6.25일 P와 내가 출국하는데 노조는 22일에 단체교섭회의와 노사협의회를 개최한다는 통보를 했다.

그런데 노사협의회 안건에 별정직 직원의 다면평가 권한부여를 제안하고 있다.

그건 쉽게 끝날 수 있는 안건이 아니다.

신차장에게 노조 신기수국장에게 부탁해 노사협의회 안건에서 그 안을 삭제하도록 협의해 보라고 지시했다.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SHRM 세미나 일정이 뻐그러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는 노조와 심하게 격돌해야 하고 노조가 성난 사자처럼 달려들지도 모른다.

만일 신차장이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P에게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인생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늘 인간으로 하여금 盡人事하도록 만든다.

하루 일분일초가 새롭고 경이로운 만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신성한 명령이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