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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728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는 나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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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차장이 피자를 돌렸다.

자신이 갑상선 암으로 진단 받아 절제 수술을 하는 동안 찾아준 사람들과 쾌유를 빌며 건네준 촌지에 대한 보답이다.

우리 팀원 대부분이 교육을 가거나 휴가 중이어서 네 사람이 그 큰 피자 한 판을 다 먹어야 했다.

우리는 아예 저녁식사를 일찍 하는 셈 치고 다 먹기로 했다.

그걸 두 쪽이나 먹고 나니 생목이 올라 계속 물을 찾았다.

 

김응태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고플 때 스스럼없이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나나 권춘택이 그에게는 그런 친구에 해당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만만할 거다.

나야 늘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절대 거절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둘이는 글래스 타워 뒤편에 있는 권서방 네 순대국 집에 가서 수육을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김응태는 내게 승진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느냐고 물었다.

해외 다녀오는 길에 몽블랑 만년필만 선물로 사다드렸다고 했다.

전무님에게는 1110달러짜리, 처장님은 870달러짜리 권태호는 760달러짜리 만년필을 사다준 게 전부다.

내 딴에는 승진에 대한 고마움을 돈으로 전하는 것보다는 선물로 전해주는 것이 더욱 빛날 것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김응태는 나에게 바보짓을 했다고 한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며 차라리 돈을 주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쪽 세상은 자기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며 전무님에게는 세장 정도 처장에게는 한 장 정도를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아니, 당신들이 나서서 절대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이야기하시는 데 그렇게 하라니.

그러고 보니 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 회사가 돈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회사 안이고 밖이고 Lobbyist들이 돈의 흐름을 따라 한전을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누구도 모두 아무개의 작품이란다.

나는 그게 진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도 그게 사실일 가능성이 더 많다.

공기업이 왜 이렇게 혼탁해져 있을까?

나는 그런 혼탁한 분위기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와 관련해서 언젠가는 대형 사고가 터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정말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상한 나라 사람이다.

나도 그들과 한데 섞여 그런 일들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한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나?

어차피 술 마셔도 깨지고 골프를 쳐도 깨지니 술값이나 골프 값 수준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김응태는 KS원장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무슨 큰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 이유가 참 터무니 없다.

내가 그에게 따로 술을 사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가 나랑 함께 근무하는 동안 내게 그토록 날려보낸 엄지척 최고 사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돌이켜보면 그는 나를 이용만 했지 한번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나와 함께 근무하는 동안 단지 내 능력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그에게 충성심을 보이려 해도 그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나를 사랑해 달라고 구걸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이는 행태가 내가 본받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알콜 중독자처럼 늘 술에 절어있었고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늘 분노와 광기로 끝났다.

그의 취중 광기와 분노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나와 권춘택이나 이정복 정도가 그걸 소화해 낼까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낸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쓴다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은 과연 그 돈이 어디서 날까?

아마도 월급으로는 힘들 거다.

이젠 전문원 생활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금년 말 인사에서 어디로든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하황 처장은 엊그제 테니스를 마치고 술을 마시던 중 내게

처장이면서 부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상에 이사람 밖에 없을 거야라며 비아냥거렸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직제규정에 정한 내 업무분장 내용이 인사관리팀에 명기되어 있을 뿐 별도의 업무분장을 통해 완전히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갈라놓았다.

인사관리팀장이 인사정책까지 전권을 행사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실례가 있어 일부러 업무를 분장해 놓은 것이다.

나는 정처장의 말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로 얼버무리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받아 넘겼다.

상사에게 나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 굳이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

내가 조금 불편을 겪더라도 다른 모두가 편하다면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김응태에게도 이야기 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게 내가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되어서 더불어 나도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연원섭 차장에게 싫은 소릴 했다.

보고서가 늦은 데에다 내용도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관리협회에서 다음 달 20일에 열리는 인사부장 교류회에서 강의를 해달란다.

그러마하고 답해 놓았지만 준비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어제부터 파워포인트 작업에 들어갔다.

해 보니 해볼만 할 것 같다.

나 나름대로의 장점을 살려 실전 중심으로 풀어나가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건대 회고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냈을까.

도대체 난 무얼 바라고 세상에 나온 걸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딱 한가지다.

윗사람들에게 돈을 쓰거나 편법을 이용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걸 못하게 하는 정책만 만드느라 애쓰다 보니 절대로 그래선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김응태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바람에 난 지옥보다 더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