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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10

20100120 우산 속 연인들의 딴 생각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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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 전상서

비 오는 날의 연인들(20100120)

오늘도 예외 없이 공릉 역에서 내려 아카데미까지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보슬보슬 작은 비가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산을 들고 부지런히 오고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은 비 오는 날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남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제 갈 길만 걸어갑니다.

길가다가 혹 우산끼리 부딪히면 어느 누구하나 먼저 미안하다는 말이나 제스처를 보이기보다는

왜 신경질 나게 와서 부딪히고 그래

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언짢아합니다.

키도 서로 고만고만해서 좁은 길을 가려면 수도 없이 우산을 부딪혀야 합니다.

조금 키가 큰 사람은 잘못하면 우산살에 눈을 찔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서 우산 들고 걷는 길을 가장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각자 부지런히 제 길을 가며 다른 사람의 눈높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제가 걸어가는 맞은편에서 연인 한 쌍이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걸어옵니다.

여자가 남자의 팔짱을 꼈는데 조금 사이를 두고 떨어져서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리 많지 않은 비여서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를 위해 남자 혼자 우산을 쓰고 가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자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비를 맞고 우산에서 벗어난 여자가 비를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둘이 감싸 안고 꼭 붙어 가면 두 사람 모두 한 우산 아래 비를 맞지 않고 행복한 동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남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지난 월요일에 연차휴가를 냈었습니다.

지난 해 휴가를 쓰지 못해 강제사용 통보가 왔기 때문입니다.

(저 있을 때 만든 제도이지요.ㅎㅎㅎ)

제가 휴가를 낼 때의 생각은 저를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아주신 전무님을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후 두시쯤에 집을 나섰었습니다.

신호등을 지나 막 교대 앞을 지날 무렵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스레 내 생각만 가지고 바쁘신 전무님을 곤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17년 만에 떠난 인사처 이지만 한 달 만에 다시 방문하려니 무언가 조금은 쑥스러운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에 잠깐 멈추어 서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래, 언젠가 본사에 들어갈 기회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자

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본 연인들의 생각이나 제 생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오면 그 때 들러서 전무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2010. 1. 20

조용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