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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10

20100331 한국전쟁의 이해

by 굼벵이(조용욱)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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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한국전쟁

 

48년 말 소련이 철수하고 49.6 미군이 철수한 후 50. 6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1년 동안만 유일하게 대한민국 역사에 외국군이 전혀 없었던 시기임

 

6.25에 관한 설

전통주의

- 세계대전 후 유럽을 미소가 나눠먹음

- 서방진영에 공산주의 확산

- 조지캐넌 소련은 지금 팽창 중

- 따라서 소련의 팽창 봉쇄(containment) 필요성(47년 이후)

- 소련의 팽창정책이 냉전을 불러왔고

- 결과적으로 공산주의자의 남침을 가져옴

수정주의

- 미국은 능력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개입함

- 냉전도 미국이 만들어 소련에게 뒤집어씌운 것임

-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 49년 말 핵무기 개발하고 한국전쟁 발발

- 따라서 남침은 맞지만 남한이나 미국에도 책임 있음

49.3 김일성 박헌영 모스크바 행 스타린과 회의

동포 해방을 위해 남침하겠다.

소련은 아직 핵무기가 없었으므로 미국을 의식해 못하게 함

49.9 소련 원자탄 개발

김일성 스티코프 대사에게 스타린 설득 요청

50.1.11 미국방어선 (딘 에치슨)

한국과 대만이 라인에서 벗어남

에치슨 라인은 한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미국의 판단

공산주의자에게는 공격을 위한 청신호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 행

- 박헌영은 남로당 출신으로 남한에 20만의 지하당원이 있어 쉽게 승리가 가능하다고 설득(3주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

- 미군이 개입하는데 6주가 걸림

50.3 스타린 허용

그러나 모택동에게 가서 승인 받을 것을 제안

50. 5 /박이 모택동에게 가서 승인 받음

전쟁주도계획 : 김일성 (소련/중국 승인)

- 소련 : 장비지원(비행기)

- 중국 : 병력지원(중국 내전에서 전투 경험있는 조선족 병사3~4)

6.25에 미국은

트루먼 고향인 미조리에서 휴가중

- “분명히 스타린이 전쟁을 일으킨 거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 UN 안보리 제출

- 북한군에게 38이북 복귀명령

6.27 UN 회원국에게 군사적 지원 결의안

- 서방국가들 참전 안하려 함

- 상징적 군대 만이라도....

7.7 UN군을 만드는 결의안 (개별 국이 아니고 UN깃발아래 전쟁)

- 미국이 UN군 사령관(맥아더)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인정되었는데 마침 소련은

- UN의 대표권을 장개석에서 본토정부인 모택동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들어주기 전까지 불참선언(50.5부터 불참)

- 8. 1일부터 소련 복귀

9.15 인천상륙작전

이 때까지 파죽지세로 북한군 몰려옴

3.8 이북으로 진격해야 하나?

- 유엔군의 참전근거 : 북한군을 38이북으로 퇴각시키기 위해

- 38넘을 시 소련과 중국 개입가능성

- 미국 내에서 넘기로 결정

- 소련 거부권을 의식한 미국이 안보리가 아닌 총회 결의로 넘겨

- ‘한반도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고(10.7)

- 모든 노력의 범주에 북진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

이승만은 UN 결의안과 상관없이 우리 군 만으로도 북진을 주장(10.1)

- 국군의 날이 생긴 이유

미국은 38이북으로 올라가되 중, 소 참전 시 stop하기로

북진

2,3일 만에 북한 땅 거의 점령

영국의 제안 : 북위 30도선에서 방어선 구축

- 전선이 길어지면 보급로에 어려움

- 북쪽지역은 공산지역의 완충지역으로으로 하고 나중에 통일하자

맥아더는 빨리 전쟁을 끝내고 크리스마스에는 go home 하려는 생각

중국은 38넘을 때부터 경고

맥아더 트루먼

트루먼 : 맥아더에게 들어와 이야기 하자

맥아더 : 전쟁 중이라 바쁘다

중간지점인 웨이크 아일랜드에서 만남

- 중공군 무시해도 된다. bluffing이다, 들어와도 공군으로 막는다(녹음)

- 맥아더 해임의 증거자료로 제시

10. 1 : 중국이 개입결정

소련에게 참전 종용 (모택동이 스타린에게)

소련은 공군, 중군은 육군 참전

중국의 참전목적 : 38선 까지만

중공군 게릴라식으로 밤에 압록강을 넘어

10.25 : 첫 교전(항미원조전쟁)

팽덕회가 조중연합사령관으로 지휘

미국의 다짐(11.30)

모든 수단()을 다해서라도 이기겠다.

: 연합군과 상의해서

실제로 만주에 핵폭탄 투하 논의

영국은

중국과의 전쟁시 홍콩 등 동남아 침공 우려

영국의 정상회의 요구(12. 4 : 6회 개최)

미국이 이김(싫으면 너의 군대만 철수시켜라)

51.6까지 전선 교착상태

이후 휴전회담 시작

53. 7.27 휴전(21개월간 휴전회담이 지속되었나?)

포로문제

- 북한포로 : 15만명, 유엔군 포로 : 1만명

- 제네바 포로 협정(49) : 포로는 숫자와 상관없이 전체 대 전체로 교환

- 북한포로 중 절반이 안 가려 함

- 53. 4 스타린 사망으로 국제적 현안 조속 처리 희망

- 중립국 감시위원단에서 희망자 선출하여 북측에 보냄

이승만은 끝까지 휴전 반대

이승만

사사건건 미국과 부딪힘

이승만 제거계획 (operation Ever ready)

- 부산 정치파동

-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화(대통령 간선제)

비민주적인물이지만 이승만 만한 반공주의자 없음

- 미국적 정서를 알고 있음

외교적으로 뛰어남(미국을 앎)

직선제 개혁

휴전보장 요구

- 전쟁이 다시 일어나도 미국이나 UN이 도와줄 수 있나?

- 한미동맹체결

- 53.7.27 한미상호 방위조약 : 한 쪽이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헌법적 절차에 따라 개입한다(NATO와 같은 자동개입조항이 아님)(국회 비준 없으면 개입 불가)

- 자동개입조항을 넣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승만의 북진 가능성 때문

 

결국 대한민국은 주변국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됨(내 생각)

- 유사 이래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때가 별로 없었음

- 지금도 우리는 미국의 우산 아래 있음

- 미국의 우산이 없어지면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이 될 가능성

- 중국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생각할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