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기
20100628
첫째 날(6.29)
출발 전날인 28일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깊은 잠을 자기 위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소맥 한 잔을 말아먹고 9시 경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워 한 시간 동안 뉴스를 보았다.
집사람이 먼저 침대에 누워 자고 있어 잠자리가 불편했다.
잠시 잠이 들었는가하면 흉몽에 시달리다 놀라서 다시 깨어나길 두세 번, 땀으로 온몸을 적시기까지 했다.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잠들려 애쓰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어서 4시 경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집사람도 일찍 깨어서는 장도길에 오르는 남편의 아침밥을 준비해 주었다.
다행히 공항버스가 바로 집 앞에 30분 간격으로 있어 5시에 출발하는 공항버스에 올랐다.
차 안에서 잠을 청하려 시도해 보지만 몸이 피곤한데도 역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똑똑한 리더의 치명적 착각’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남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치명적인 착각의 오류를 범한다.
버스는 예정대로 6시 10분에 도착했다.
M 카운터의 23~25 대기소에서 7시 30분에 만나기로 되어있는데 무려 한 시간 20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한적한 구석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000원하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공항에선 3800원 한다.
내가 잡아놓은 자리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젊은 남여 둘이 앉아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다.
커피 값 거스름돈으로 돌려주는 백원짜리 동전 두개 때문에 검색대에서 애를 먹을 것 같아 가방 한 구석에 처넣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옆자리 젊은 애들의 수다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녀석은 여자 아이의 허벅지를 계속 어루만지며 수다를 떨고 있다.
당췌 주위가 산만해 글 읽을 읽을 수가 없다.
녀석들이 떠나고 나서야 방해받지 않고 계속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어서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탑승수속을 마쳤다.
중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행시간으로 한 시간 반 정도에 그친다.
국제선이라고 그 사이 기내식도 나왔다.(갈 때는 생선요리가 나오고 올 때는 소고기 요리가 나왔다.)
상해의 첫인상
처음 중국에 도착하니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더군다나 나는 그룹에서 떨어져 혼자 나오는 바람에 더 불안했다.
누군가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나 '같이 가자'고 할 것 같기도 하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처지이다 보니 불안이 가중되는 것 같다.
20여분이 지나서야 일행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상해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이다 보니 고온다습하여 온 몸이 끈적거렸다.
현지 가이더 이미나는 연변출신으로 아버지는 의사를 하다가 은퇴를 했고 자신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가이더가 적성에 맞아 그 길을 택했단다.
중국에서는 전문직인 의사라 하더라도 자신의 병원을 개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부상열차를 설명하며 중국의 발전상을 알리고 싶어했다.
시속 431Km를 자랑하는 자기부상열차는 독일에서 제작한 것으로 공항에서 상해 전철연결선 구간을 오간다고 한다.
상해는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중국의 발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경제도시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포동과 포서로 구분되는데 포서는 1840년 아편 전쟁이후 영국,미국,프랑스가 상해 외딴지역을 조차하면서 국제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황포강 서쪽으로는 각기 다른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서방열강 시대에 지어진 것들로 그동안 상하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사진으로 보면 마치 유럽의 한 거리로 착각할 정도로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포동 지역은 중앙정부의 개발계획에 따라 90년부터 짧은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초현대식 건물들이 밤의 야경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있다.
특히 밤의 야경은 상해의 대표적인 볼거리라 할 수 있고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강변을 따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특히 연인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한다.
가이더 말로는 상해의 야경이 홍콩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홍콩을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인구밀도도 높아 시내에 2000만 명 정도가 거주하며 800만 명 정도는 상해 주변에서 장거리 출퇴근 하는 유동인구라고 한다.
양자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이 구분되는데 강남지역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드센 편이고, 반대로 강북지역은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드세다고 한다.
상해도 강남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여자가 더 드세 강둑에서 야경을 구경하다보면 가끔씩 여자가 남자를 밀어붙이며 키스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면에 더욱 엄격한 통제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남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상해는 이미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기에 젊은 남여의 애정행각도 국제화 된 것 같다.
상해도 강남지역이어서 상해 남자들은 대체로 집안일을 전담하는데 회사에서 퇴근하면 곧바로 장에 들러 먹거리를 준비하고,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며, 집안 청소와 빨래는 물론 저녁식사까지 준비한 다음 아내를 기다린다고 한다.
물론 TV 리모콘도 아내 차지란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감시용 카메라가 수없이 보이는데 신호위반이나 과속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차량에 대해 사진을 찍는 것 같다.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사무실이든 아파트든 에어컨만 있을 뿐 대부분 난방시설이 없는 것이 상해의 특징이란다.
중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평생 동안 다음 세 가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첫째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요,
둘째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고,
셋째는 모든 한자를 다 아는 것이란다.
그만큼 중국은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고, 따라서 문화나 음식이 다양하고, 한자도 평생을 다 해 공부해도 못 다할 만큼 많은 글자 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동방명주타워
처음 우리가 가 본 곳은 동방명주타워이다.
높이가 4백68m로 TV 송신탑 겸 관광 타워로 사용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타워란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어 탑 위에 올라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안개구름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비 오는 평일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거기다가 옛날 우리처럼 새치기도 많이 한다.
어쨌거나 붐비는 상해의 인구와 여행객들을 보면서 엄청난 시장가치를 느낄 수 있었고 왜 우리가 중국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나라다.
어쩌면 이런 습성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 사람도 만만치 않게 호기심도 강하고 동류의식도 강하다.
이런 중국사회에 쌈빡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바람만 불어넣을 수 있다면 불같이 타올라 엄청나게 큰 시장을 형성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많은 인파가 서로 탑에 먼저 오르내리려고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는 모습을 보면서 2~30년 전의 우리모습이 생각났다. 대개 국가발전은 이처럼 유사한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 모양이다.
경제가 발달하여 물질적 여유가 생겨야 정신적 여유가 생겨나고,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이나 세상 만물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는 듯하다.
상해는 자기부상열차를 운영할 만큼 초현대식 사회인 반면 대변을 보고 나서 조금만 잘못 힘을 주면 찢어져 낭패를 볼 수 있는 근대식 화장지가 병존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초현대와 근대 그리고 유구한 역사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무섭게 발전하는 사회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
이어서 우리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들렀다.
머나먼 이국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민족 지도자들의 삶을 돌아보매 울컥 서러움이 올라온다.
그 작은 건물에서 집무실, 주방은 물론 침소까지 겸하면서 힘들게 이어간 대한민국의 기구한 역사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방울로 가슴에 답답함을 더한다.
마지막에는 모금함에 돈을 넣거나 기부금을 내라고 하는데 선뜻 돈을 넣거나 기부예약을 하기가 어려웠다.
현재 임시정부 청사는 상하이 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부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초라한 임시정부 형태도 가슴 아픈데 여행객에게 구걸하다시피 모금하는 것은 임시정부를 한 번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 청사를 사들여 직접 관리하면서 모금행위 같은 초라한 행태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해 총영사관
저녁에는 총영사관에서 Briefing이 있었다.
총영사관 업무 전반에 관한 설명과 함께 상해 엑스포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영사관은 상해시와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을 관할하며 영사 21명에 행정원 42명(중국인 33명) 도합 63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상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상해는 중국경제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중국전체 GDP의 24%, 교역액의 37%, FDI 유치 총액의 55%를 상해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후진타오나 시진핑, 장쩌민, 주롱지, 우방궈 등 중국 최고지도자가 관할 지역 출신으로 정치 중심지이다.
한중 교역의 40%, 대 중국 무역흑자액의 59%가 관할지역에서 이루어질 만큼 한중 교역 및 투자의 중심지이다.
우리나라 기업 6000여개가 이 지역에 활동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 통상업무와 정무업무 재외국민, 영사업무와 문화 홍보업무 따위를 담당하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별첨 현황을 참조하기 바란다.
첫 정통 중국음식
저녁식사를 하는데 누가 자리배치를 해 놓았는지 두개의 테이블 중 총영사가 앉는 헤드테이블에는 국장급들만 모아놓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서기관급들은 다른 테이블에 앉혔다.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씁쓸했지만 그냥 모른 척 했다.
이제까지 먹어본 것들과 맛과 향이 너무 달라 내겐 영 불편했다.
마지막으로 내 온 수프는 동충하초를 넣어 만든 닭백숙으로 중국 최고의 보양식이라는데 우리는 그걸 거의 먹지 못했다.
그게 1인당 거의 3만원이 넘는 최고급 수준의 저녁식사란다.
룸살롱
만찬이 끝나고 상해홍구세기대주점(New century hotel shanghai)에서 여장을 풀었다.
OO부 J국장이 나와 K국장에게 9시까지 로비로 나오라는 주문을 했다.
로비에는 J국장 친구인 현지법인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차를 타고 30여 분 정도 가서 도착한 곳은 말로만 듣던 룸살롱인데 정말로 수십 명의 여자가 들어와 자신이 선택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많은 눈이 내게로 쏠려있는데 그 중에서 내게 봉사할 여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미안해서 할 수가 없다.
결국은 마담이 추천하는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
대부분 마담이 추천하는 여자는 술집의 매상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자기 하수인들이다.
우리가 안 보는 새에 글라스에 술을 잔뜩 붓고 마시는 척 하다가 얼음 통에 부어버려 술 소비를 촉진시키거나 술을 마신 후 물 마시는 척 하면서 머금었던 술을 물에다 쏟아버리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룸살롱에서도 많이 쓰던 수법이다.
술이 어느 정도 되고 시간이 12시가 가까워오자 누군가 각자의 파트너와 즐기자는 제안을 했다.
반대하면 안 되는 분위기이고 나도 분위기를 깨기 싫어 동의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술집을 나서 J국장 친구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막 문 앞을 들어서자마자 J국장에게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했다.
K국장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내게 핀잔을 주었다.
J국장은 “배신자는 죽이겠다.”며 농담 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냉철하게 분석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 없는 순간적 유희에 리스크를 걸 필요가 없었다.
엑스포 참석을 skip해야 할 만큼의 적당한 거짓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 거짓을 진실로 믿어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몇 되지도 않는 모임에 첫날부터 세 명이나 줄줄이 빠져버리고 나면 우리를 향한 비난의 눈초리를 감당해 내기도 힘들 것이었다.
아무리 이해관계를 따져보아도 무모한 행동이어서 나는 그냥 엑스포에 참석하기로 했다.
대신 다음날 아침 8시에 만일 파트너인 玉香이 나타나면 차비조로 200원정도 쥐어주고 곧바로 돌려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결국 자다 깨다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잠을 포기했다.
나도 정말 소심남이다.
그러나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무가치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나를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해와 편견
종종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 사람들 또한 한국 사람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으며 따라서 중국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어리석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종종 그들을 업신여긴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 대해 별것도 아닌 졸부가 많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까분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변방의 작은 조공국 이었던 조선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한국인을 업신여기려 든다.
그러다보니 서로간의 오해로 종종 심각한 불협화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두 가지 견해
미국 쪽 입장에서 바라본 중국의 성장과 발전은 부정적이다.
미래학자 조지 프리드만은 ‘중국은 절대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역적 개발 차이와 소득 차이, 점차 확대되는 개방의 물결로 사회적 차이가 심화되고 결국 나중에는 정치체제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적 정치상황이나 경제상황이 요동칠 때 중국 내부의 각 민족들이 분리운동이나, 사회적인 계층별 반대운동이 일어나 결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역시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중국은 나름대로의 저력을 가지고 있다.
흑묘백묘론을 통해 경제체제에 있어서만큼은 과감하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상해 浦東지구 개발의 예나 소주 공업원구 개발의 예를 보면 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을 보는 듯하다.
사회주의 사회이어서 국가가 원하면 언제든지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4대강 개발의 예나 용산 참사사건의 예를 본다면 이해관계의 조율을 통해 국민적 켄센서스를 구축하면서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개발이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른 초고속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상해 포동지구 개발, 소주 공업원구 개발 등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머지않아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허튼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발전현장을 직접 피부로 느낀 김정기 상해 총영사님은 우리와의 간담회에서 조지 프리드만의 책 ‘100년 후’를 읽으려고 하다가 너무 허무맹랑한 주장에 책을 던져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맹목적인 중국사랑 때문이 아니고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스스로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예측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모두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간 서로의 비교우위를 중심으로 모든 국가가 궁극적으로는 발전의 균형점을 찾아 흥망성쇄의 과정보다는 win-win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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