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토)
이도식 전무님 전상서
전무님 안녕하십니까?
KEPCO Academy의 조용욱입니다.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이면 외교안보연구원 글로벌 리더십 과정을 졸업하게 됩니다.
저는 교육도 정말 남들보다 알차게 열심히 받았습니다.
각종 발표나 봉사활동은 물론 논문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분에 어제 외교안보연구원 행정실로부터 저를 최우수상 수상자로 상신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번 기수의 회장과 총무를 뽑는 선거에서 고위공무원도 아닌 제가 우리 기수 총무로 당선될 만큼 동기들로부터 두터운 신망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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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12월 7일 발령 이후 저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KA로 발령이 나고 이어서 교육기획팀의 팀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비록 전문원이긴 하지만 처장급이 팀원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주변의 고위공무원 교육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 발령에 대해 물어오는데 저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 대충 얼버무려 버렸습니다.
요즘은 잠이 들더라도 30분이나 한 시간 후면 깨어나고 이후 밤새 머리통을 안고 뒤척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합니다.
생각은 저를 밤새도록 괴롭히며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대충 두 가지로 결론이 나더군요.
하나는 명예퇴직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랍니다.
그러나 명예퇴직은 불명예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자꾸만 죽음으로 결론이 나는 바람에 제 스스로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인사제도 전문원이 KA에서 할 일이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왜 그런 고초를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잘못이 있다면 사장님 뜻대로 Right People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는 잘못 뿐입니다.
회사를 위해 온갖 열정을 다 바쳤다는 죄밖에 없습니다.
과거사를 논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만 회사분할 과정부터 지금까지 온 몸에 상처를 입히면서 꿋꿋하게 회사를 위해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지금의 제 모습으로 나타나다보니 실망감이 지나쳐 자괴감으로 이어지면서 거의 일주일을 제대로 잠을 못 잤습니다.
나중에는 별 이상한 생각들이 다 들더군요.
사람이 미친다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자율학습 날이어서 KA에 출근을 했습니다.
교육입교한 사람들이나 연수원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길을 마주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Refresh 교육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측은한 눈빛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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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께 정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전문원의 족쇄에서 풀어 일반직으로 환원시켜 주십시오.
기술직도 모두 경영직군으로 분류하는 판에 사무직 인사제도 전문가를 경영직군으로 분류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영업분야의 전문원과 송변전분야의 전문원도 모두 수석급에서는 일반직으로 전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유독 그렇게 힘들어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장님도 절대 반대를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장님 생각이 얼마나 진취적인지는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일단 상임인사위원회 결의로 저를 일반직 경영직군으로 환원시켜 놓고 KA에 근무하게 하다가 사업소든 어디든 자리가 나면 발령 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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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께 누가 될까봐 지금까지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 한통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전무님 힘들어 하실까봐 전무님께 식사제안 한번 제대로 못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성장배경에 문제가 있었는지 저는 회사가 정해준 원칙을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칙을 정하는 일을 주로 해 와서 그런가 봐요.)
어제 밤도 밤새 뒤척이다가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제 스스로 정말 힘든 지경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 12. 11
전무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조용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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