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화)
외교안보연구원 글로벌 리더십 과정 졸업식에 참석했다.
미리 귀뜸해 준 대로 내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 인생 최고의 축복이었다.
대부분의 동기생들이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를 패스한 최고의 엘리트집단인데 그 가운데에서 나를 최우수상 대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많은 동기생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지금껏 그런 상은 공무원이 수상했지 우리 같은 공기업 직원이 받질 않았었다.
그런데 품위있는 국제수준의 외교부답게 정말 공정하게 평가해서 나의 노력과 성적을 인정해 주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데에도 나는 앞줄 교수 석에 앉혀주었다.
나아가 오찬시간에도 나를 헤드테이블에 배치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준규 원장이 축사를 하시면서 여기서 배운 외교력을 십분 발휘해 자신의 와이프나 아이들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라는 주문을 한다.
내 아픈 가슴에 직속으로 와 닿는 이야기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당하고 있는 시련은 결국 나의 외교력 부족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권태호와 인사처장을 잘못 관리한 데에서 온 것이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곧바로 회사로 차를 몰았다.
먼저 이도식 전무님을 만나 뵈었다.
이 전무님이 설합에서 내가 지난 토요일에 책갈피에 넣었던 것을 꺼내 다시 건네준다.
나는
“그동안 변변하게 밥 한 그릇 못 사드려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하고
“그러면 제가 나중에 식사제안 할 때 꼭 나와 주실 거죠?”
했더니 그러겠단다.
전무님은 예상한대로 나의 강한 글에 대해 질책을 하셨다.
나는 마음 깊이 사죄했다.
이어서 자신은 이번 사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씀을 하셨다.
알고보니 인사처장 선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다.
권태호가 나와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은 채 인사처장과 조직개발팀장을 끌어들여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린 것이다.
이 친구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내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당당히 맞서 내 권리를 요구했어야 했다.
남의 일 같았으면 그렇게 나섰을 것이지만 내 일이다보니 한없이 작아졌던 거다.
난 내 고등학교 4년 후배인 이 친구에게 그동안 원수진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친구가 악의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차라리 내 생각을 바꾸었다.
어쨌거나 전무님은 자신도 모르는 그런 결정을 한 인사처장을 불러다가 혼을 내었다고 한다.
잠시 기다리면 무언가 대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셨다.
이어서 인사처장을 찾았지만 자리에 없어 먼저 안중은 부장에게 갔다.
안부장은 조심스럽게 나를 맞았다.
나는 원칙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오히려 안부장은 인사의 변칙에 대하여 설명한다.
지난번 현상권 팀장이 대안을 찾으려 내게 찾아왔을 때 인사처장이 원칙인사를 강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떤 것이 원칙인지에 대한 반론을 준비했었는데 그걸 안부장에게 퍼붓고 말았다.
안부장은 나에 대한 다른 시각에 대하여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 나는 순환보직도 없이 편하게 인사처에서 승진한 사람이라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면 지방으로 나를 보냈어야 했다는 볼멘소리를 했더니 안부장이 또 오해를 한다며 불편해 했다.
안부장에게 내가 외교부장관에게 받은 최우수상을 내밀며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고위공무원들과 social network을 형성하고 열심히 노력해 최우수상까지 수상했으니 계속 전문직으로 두는 것 보다는 일반직으로 활용하는 것이 공사에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전환한다고 하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전무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했다.
이어서 인사처장을 만났다.
인사처장은 내게 원칙인사를 운운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위안하며 달래려고 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다 하는 바람에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그가 일반직으로 돌리기 위한 적절한 사유를 찾고 있다는 말에 외교안보연구원 최우수상 이야기를 또 꺼냈다.
정찬기 전무님 방에 들렀다.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정 전무님은 나를 만나자마자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이도식 전무님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이야기를 주변에서 우연히 듣고는 이 전무에게 나에 대한 대책을 먼저 논의하신 것도 당신이란다.
자신이 한 때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설명하고는 귀엣말 비슷하게 기회를 봐서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참 고마우신 분이다.
정전무님 방에서 김시호처장이랑 마주쳤고 차 한잔 하고 가자는 그의 제안에 따라 그의 방에서 차 한 잔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사람이 최우수상 수상 기념 ceremony를 하고 싶어 해 백암 순대집에 가서 소주를 내가 병 반 정도 마시고 집사람이 반 병 정도 마셨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귀가했는데 집사람은 나를 위해 모든 봉사를 다 해 주었다.
참 고맙다.
이게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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