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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뜨거운 유월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by 굼벵이(조용욱) 202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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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은 추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고 연은 결론을 내렸다. 

연은 마치 모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이지 모수는 일기를 쓰고 나서 일기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사로잡힌다고? 
그렇지 사로잡히는 거지. 
모수는 무엇을 생각해서 무어라고 말을 하는것이 아니라 무어라 말을 했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말을 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 같았다. 
노트에 그렇게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모수는 살아갔다. 
모수의 노트를 읽어가면서 연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모수는 생활을 하고 생활한 곳에 대해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쓴 이후에야 생활을 하는 사람 같았다. 
책을 읽고 마트에 가고 옥상을 청소하고 어구들을 정리했다고 적은 뒤에 모수는 책을 읽고 마트에 가고 책상을 청소하고 어구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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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들이 보이는 증상이 대체로 이런가 보다.
그렇게 보면 모수는 일기중독자다.
그렇다면 나도 일기 중독자다.
삼십년 가까이 일기를 쓰고 썼고 쓸거고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아왔으니까.
또 쓰면서 희노애락을 실제 상황보다 더 명확하게 다시 느끼고 분석하며 되새김질 했다.
소가 풀을 뜯어 되새김질하면서 영양분을 얻듯 그 안에서 내일의 삶과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향타와 지혜 따위를 얻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그걸 다시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며 사생활의 역사까지 쓰고 있다.
그시절 그 때를 낱낱이 분석해 인간의 내면을 철저히 분석한다.
그래서 나도 결국은 중독자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가 어떤 종류든 하나 이상의 중독증상을 보이며 살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