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토)
출근과 동시에 처장 방에 가서 아침 출근인사를 하고 왔다.
OOO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년퇴직 예정자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내게 이야기해준다.
이치훈 부장이 김홍욱과 연대를 이루려 한다는 이야기,
반려 통보된 노조 설립신고 안내 공문이 도착하면 행정소송 대신 행정심판으로 갈 것이라는 것,
그렇게 하면 한 두 달 내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
회사 이삭줍기(gleaning) 정책으로 우리 회사 주변의 업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지자 사장을 몰아내기(drive out)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전해왔다.
그는 어찌보면 나의 정보원 역할을 해 주는 거다.
그의 정보를 정리해 인사처장 방에 가서 동향을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인사처장이 좋아한다.
그동안 내 능력은 어떻고 내가 어떤 놈인지 알지 못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듯했다.
나는 OOO을 곧바로 이동조치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고 그는 나의 제안에 동의했다.
송처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병옥 차장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와 달란다.
그는 MBO 평가제도 시행결과를 사장에게 보고하고 싶어 했다.
사장이 SABCD 분포비율이 정확히 10/20/40/20/10 구조로 이루어지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그걸 정확히 맞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란다.
김병옥 차장이 그동안 그 주문에 늘 시달림을 당해왔다.
나는 처장에게 No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준비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내 자리로 돌아와 김병옥차장에게 직원이든 간부든 동점자 처리에 한계가 있어서 분포비율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조직평가 결과를 반영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주었다.
김병옥 차장은 그동안 그런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런 주문을 받을 때 무척이나 황당해 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조직평가 결과로 동점자 우선순위를 결정해 주면 정확하게 비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만일 조직평가 결과가 없으면 직상위자의 성과평가결과를 반영하면 된다.
이는 내가 십 수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기에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도출되지만 김병옥 차장에게는 무리다.
그동안 벽에 부딛혀 엄청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그가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가집단을 넓히는 방법으로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자 김병옥이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같다.
환한 얼굴로 곧바로 내 아이디어를 협의하러 노무처 급여팀에 갔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일에 보람을 찾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즐겁다.
인사관리팀/ 인력개발팀/ 조직개발팀에서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먹으면서 멀리 내가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했는지 인사관리팀 직원이 일부러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왔다.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는 그걸 회의 탁자에 올려놓고 가버렸다.
조직개발팀은 바로 옆에 나와 김병옥 차장 달랑 두 사람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자기들끼리 간식을 먹으며 빈말이라도 우릴 불러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인력개발팀으로간 내 새끼 이명환 차장은 자신들이 먹다 남긴 간식을 가끔씩 싸다준다.
거지같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한신이 굴욕을 견디며 불량배들(thug, hoodlum, hooligan, bully) 가랑이 (crotch)사이로 기어 다니듯 나도 이런 수모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병옥 차장은 나보다 더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사업소에 근무하는 간부들에게 내 책을 보내기 위해 책을 담을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86매의 봉투를 썼다.
오늘 사남매 모임이 있었으므로 여섯시 반 경에 사무실을 나왔다.
누나들이 내가 이번 겨울에 겪었던 어려움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형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나는 누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인생은 언제나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큰 파장이든 작은 파장이든 운명의 파장을 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힘든 일이 따른다.
그 파장의 골이 크고 깊을 수도 있고 작고 얕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것이 없고 그 파장을 타고 가며 의연하게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건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믿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법칙이다.
작은 누나가 엄마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엄마는 한마디로 여장부(amazon)라는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유전자로부터 많은 것을 전수받았다.
엄마는 6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도 주변의 거지나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껏 사시면서 기죽지 않고 똥기마이가 쎄다.
그것이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립심을 많이 길러주었다고 했다.
잔정이 깊지 않아 엄마가 우리에게 별로 정을 주지 못했지만 그 덕에 강한 자립심을 기를 수 있었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 유전자 덕분에 나도 집사람이나 아이들에게 별로 잔정을 베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혼자 사시면서도 동네에서 꿋꿋하게 자존심 내세우며 강하게 사시는 엄마의 모습에 존경을 표했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만일 아버지가 혼자 되셨다면 정말 어려우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나약하고 착해빠진 유전자를 물려주셨다.
그래서 우리 패밀리에겐 양면성이(double sided mind) 있다.
집사람이 또 내 전립선(prostate) 폴립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내가 병원에 가지 않는 다고 하자 다른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병원에 가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녀의 그런 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죽음은 내 뜻이 아니니 의연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하늘의 부름이고 따라서 어찌보면 축복이다.
형은 나를 위해 케익을 준비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다.
내 생일이 구정 전날이어서 형제나 부모에게서 평생 생일상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작은 누나는 형제자매들끼리 생일을 중심으로 모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면 적어도 두 달에 한번 꼴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어서 모두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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