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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짜라투스투라(니이체)가 내게한 말

by 굼벵이(조용욱) 201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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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헤겔 사후 헤겔철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그가 말한 관념적 절대진리는 칼 맑스가 모순 투성이로서의 현실을 내세우며 부정하고

체계는 니이체의 관점주의로 무너졌으며

동일성(identity)는 프로이드에 의하여 무의식 속의 배제된 욕망에 의해 거부되었다.

'삶에의 의지, 나는 거기에서 항상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하였다.' 고 하면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신을 모독하고, 기존 가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과정과 사자의 과정을 거쳐 어린애의 과정을경험한다.

낙타는 황폐한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강한 인내와 더불어 살아간다.

아울러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마치 유년기 시절 부모님의 훈육(You should~)을 받아들이듯... 

사자는 혼자 외로이 살아가는 자유정신이다.

강력한 권력의지이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하여 자기 부정을 서슴지 않는 자유의지이다(I will)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다.

스스로 찾아서 논다.

규칙도 없으며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논다.

모든 것을 긍정하고 새로이 무엇인가를 창조한다.

나는 나일뿐이다. (Ich bin)

 

신은 죽었다.

아니 사람들이 죽였다.

신은 죽어 마땅하다.

왜냐면 인간의 모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을 견딜 수가 없어 인간은 신을 죽였다.

신은 창조주이며 완전한 존재이고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절대 진리를 추구한다.

이 모든 생각은 인간인 나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절대 진리는 부정되어질 수 있고

최고의 가치는 결국 내가 부여하는 것이며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누가 우리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은 결국 내가 창조한 것이고

이를 부정한 내가 죽인 것이다.

신의 죽음은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고 세속화되면서 허무주의로 인도한다.

신의 창조자였던 인간은 새로운 가치도 창조할 수 있다.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위버맨쉬(Uvermenesch초인) 이라고 한다.

초인은 끊임없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사람을 말한다.

초인과 종말인(세속인)은 다르다.

종말인은 사랑, 창조, 동경, 별이라는 말에 가슴 뛰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해 새로운 자아를 얻으려는 욕망 없이 세속적인 욕구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초인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사유하는 사람이다.

자기 극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자유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보다 높은 상태의 자기를 동경하고 지향한다.

초인은 권력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창조자로서의 초인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권력에의 의지란(will to power)공동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다.

들판의 꽃과 나무도 이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단세포동물인 아메바도 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살기 위해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먹이활동과 생산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외면적인 힘 이외에도 내면적인 의지를 포함한다.

창조적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충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지와 충동은 운동성과 지향성을 갖는데

그 힘은 끊임없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이를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영원회귀

현재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이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이 삶에 최선을 다했다면 죽음의 순간에 이 삶을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인생에는 주어진 목적이 없다.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추구하며 생성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순간에 충실하라(윤리적 의미)

우주론적으로 보면 우주는 늘 무엇인가 생성과 소멸이 계속 반복되며 이어진다.

(우주론적 의미: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정치적 의미)

그러기 위해선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라(Amor fati)

지금까지 본류에서 제외되었던 타자에게로 관점을 돌려야 한다.

허무주의란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수동적 허무주의가 있는 반면

세계의 가치는 우리의 해석에 달렸다고 보는 능동주의가 있다.

항상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삶이필요하다.

나는 고착된 개념이 아니다.

계속 변화해 가는 경향성의 덩어리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네가 다시 태어나기를 영원히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순간순간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