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섬진강과 보성강을 누비고 다녔어요.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김동호 대리님이 자신의 농장에 초대해 주시기에
술도 한 잔 했고 퇴직 후 삶에 대한 관심도 있고 해서
다음 주말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꼼꼼하신 김대리님은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확인까지 하시더라구요.
함께 계시던 운영실장님도 백대리님과 함께 가시기로 했지요.
저녁에 농장에 모여 매운탕에 소주 잔이나 나누자고 하고는
매운탕거리는 내가 섬진강에서 잡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는 토요일 아침 여덟시에 섬진강에 입수했습니다.
피라미 두어마리 붙더니 입질이 끊기고 황어가 붙습니다.
후킹이 제대로 안됐는지 황어 두마리는 운 좋게 자연방생 모드로 다시 강으로 돌아가고
두마리만 살림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평상시 같으면 돌려보내지만 오늘은 저녁에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갑자기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엄청 큰 놈이 나타나 나랑 10여 초간 기싸움을 벌이더니 이내 줄을 끊고 사라집니다.
그 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요즘 매스콤에 섬진강에 연어가 돌아왔다고 하는데 혹시 연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다음 번에도 똑같은 놈이 똑같은 형태로 줄을 끊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빨로 끊지 않았다면 아마도 물 속에 날카로운 금속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밑걸림이 심한 걸로 보아 지난 장마에 무언가 몹쓸게 떠내려오다 걸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사실일 경우 거기서 낚시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습니다.
10시 반쯤 되었을까 한실장님이 전화를 합니다.
지금 섬진강으로 오시겠다는 겁니다.
날이 추워 바지장화가 없으면 안된다고 했더니 그새 바지장화까지 구입했답니다.
그것도 백대리님 것까지 두벌을 장만했다더군요.
대단한 열정입니다.
11시 조금 넘어 도착하시어 김밥에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을 때우고 셋이서 입수합니다.
그사이 물고기도 식사시간이 지난 모양입니다.
영 입질이 없습니다.
하여 보성강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날이 추워 그런지 거기도 신통치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실장님이 '어어어어~~~~'하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대물이 물어버린 것이지요.
견지에서 초짜가 대물을 끌어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내가 얼른 받아들어 놈을 대신 끌어냅니다.
바로 이놈입니다.
줄자로 재어보니 65센티나 나갑니다.
백대리님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사진을 찍던 한실장님이 내가 잡은 것이니 나도 기념사진을 박아야 한다고 나섭니다.
이 자랑스런 모습을 보십시오!
웬만한 견지꾼도 이런 대어를 잡아본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어복충만한 우리의 한실장님은 한방에 큰 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그 충격과 가슴떨림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조심하시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곧바로 중증 환자상태로 빠지게 되죠.
므흣!!(이놈을 내가 잡았어.....고맙다...누치야...)
한실장님은 김대리님 농장에 도착해서도 우리의 대멍짜 누치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날 저녁 김대리님은 엄청 준비를 많이 해 놓으셨더라구요.
매실주, 북분자주, 소주, 맥주, 양주 등등 갖가지 술을 준비해 놓으시고
오리 훈제구이와 삼겹살 안주에 꽃게탕 그리고 각종 찬에다가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 직접 만드신 녹차까지....
술 한잔 거나하게 한 데에다 10시가 넘어가니 점점 졸음이 쏟아집니다.
김대리님이 따끈하게 뎁혀놓은 황토방에 들어가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눕자마자 거짓말처럼 아침 기상시간까지 내쳐 달콤한 잠에 빠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창고를 열어보니 평소 성격 그대로 농기구며 각종 연장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습니다.
매실나무가 주를 이루지만 배나무 복숭아 나무 모과나무는 물론 뽕나무까지
두루 두루 심어놓고 정성으로 키우더군요.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데
김대리님 나무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소명을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 김대리님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소명을 발견하고 몰입하며
멋진 인생을 사시고 계시더군요.
정년이 얼마 안남으셨는데도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멋진 선배로 소문나 계시고
주말엔 나무와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차곡차곡 준비해 가시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대리님의 아름다운 삶 덕분에 정말 멋진 주말을 보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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