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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by 굼벵이(조용욱) 201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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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스페인 남부 세비야 광장

매일 종교재판과 더불어 화형식이 거행되었다.

광장 화형대에서 이단자를 처단하던 어느날

예수가 재림하였다.

예수는 고통받는 군중들을 구원하고, 축복하고, 치유하였다.

이를 본 대심문관이 예수를 체포하여 감금한 후 

심문하기를

"당신은 왜 이 땅에 다시 왔소?"

"우리에겐 이미 이전에 당신이 한 말로 족하오"

"이제와서 다시 새로운 말을 덧붙일 권리가 당신에겐 없소."

그런 그에게 예수는 다가가 말없이 키스를 했다.

예수 사후 조직체계(교회/국가)는 대형화 되면서

조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진리나 진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예수는 그 상징성만 필요로할 뿐 체제유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조직체제에 맞게 진리를 재구성(범죄의 재구성)해 나갔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아주 강한 소수만이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수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대부분 자신의 자유를 최고 통치자에게 반납한 채

경제적, 심적 안정을 보장받기만을 원한다.

대심문관은 이러한 인간의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광장 화형대에서 끊임없이 이단자를 처단하면서...

하지만 대심문관은 근대적 이성의 오만이 만든 이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 또한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했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자유는 자신이 자신의 지배자가 되어 자기실현을 도모하려는 적극적 자유와

예속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 가능한 소극적 자유로 나누어진다.

인간의 마음은 무한대로 넓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 속엔 모든 악과 모든 선이 공존한다.

그래서 테네시 월리암스는

"당신 마음 속에 있는 악마를 죽이면 천사도 함께 죽어"라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의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행복은 고통이 수반됨을 역설한다.

그러기에 고통을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

영어 passion은 열정이란 의미 외에 고통이란 의미도 있다. (the passion of christ)

열정적이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고통을 감내한다는 의미이다.

진정으로 자유를 향유하고 싶은 자, 행복을 원하는 자

모두 고통을 감내할 지어다.

열정적으로 살아갈 지어다. 

고통을 수반하는 열정만이 참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