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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Tin Drum)

by 굼벵이(조용욱) 201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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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노동을 자신의 내적 잠재력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노동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자신의 내적 잠재력의 실현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부정한 대가로서 자신의 생존의 최소조건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노예운동으로 전락되었다.

그러니 노동을 통해 어떤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정치적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겪던 소시민들은

결국 나치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귄터그라스는 결국 개미가 역사를 만든다는 알레고리를 개미도로로 표현하고 있다.

일정한 루트를 따라 설탕을 나르던 개미떼는 마체라트의 죽음으로 인해 도로가 단절되자

이를 우회하는 새로운 루트를 만들며 행렬을 계속 이어갔으며

여전히 설탕의 맛은 변함없다는 표현을 통해

소시민이란 역사적으로 어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든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개미처럼 같은 길을 여전히 갈 뿐 정치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러한 소시민적 관점 이외에 정신적 미학적 전통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의 유미주의와 소시민의 일상 속에 배어있는 비합리주의가

정치적 사회적 현실참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천재 예술가는 세계와 사회에 대해 배타적인 고립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몇몇 천재 예술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시민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사회는 퇴화한다.

오로지 미학적 견지에서만 판단하고 행동하는 철저한 탐미주의, 극단적 유미주의가

정말 터무니없게도 나치당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개구리의 시각, 소시민적 관념, 극단적 유미주의에서 벗어나

매의 시각에서 마체라트의 죽음을 통찰하며

커다란 역사의 물줄기를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삶을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탕 맛은 변함없이 달다.

그러니 역사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진보는 사람의 생각처럼 그렇게 성큼 다가서지 않고

달팽이 걸음처럼 느리게 아주 느리게 찾아온다.

어쩌면 그래서 포기하고 오늘도 열심히 설탕가루를 나르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