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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by 굼벵이(조용욱) 201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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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은 ‘어리석음에 대한 찬양’(praise of folly)이다.

1492년 에라스무스가 어리석은 바보 여신의 자화자찬 형식을 빌려 시대를 풍자한 글을 내놓았다.

50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사람들이 보더라도 모두 공감하고

가슴 뭉클해 할 만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수록되어 있다.

 

어리석음은 경솔과 망각의 도움을 받는다.(정말 멋진 말이다) 

예를 들면, 남녀 모두 결혼의 고통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결혼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리석은 여신의 도움으로 결혼을 한다.

술에 취하고 웃음 가득한 우신이 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근엄한 철학자들, 수도승들, 권위 있는 군주들, 사제들, 교황들, 많은 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만물의 어머니 자연은 세상 곳곳에 어리석음을 뿌려놓았다.

이 어리석음이 있기에 집안이 조용하고 가족의 유대가 이루어진다.

어리석음이 없었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파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우신의 도움으로 알아도 모르는 척 적당히 넘어가며 가정이든 사회든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철학자는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실 세상과 이별하고 광야에 나가 홀로 자신의 지혜를 만끽해야 한다.

장사꾼, 지식인, 시인, 수사학자, 작가, 변호사, 논리학자, 철학자, 성직자, 신학자, 수도사

모두 우신의 숭배자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지식으로 인해 어리석다.

보석은 감추고 쓰레기는 내놓게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는 보석처럼 꼭꼭 숨겨져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의 지식만 세상에 나뒹군다.

 

플라톤은 사랑의 광기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다.

미치도록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것에 빠져 행복해 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우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한다.

 

일반 대중의 삶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어리석음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으므로 찬양의 대상이 되지만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군주나 귀족, 문인, 신학자 따위의 어리석음은

남에게 피해를 주므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는 똑같이 술 마시고 헤어졌는데 이튿날 이를 다 기억하는 놈들을 증오한다고 했다.(참 재밌다)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한 연설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도 또한 증오한다는 이야기를 말미로

우신예찬을 끝맺는다.(정말 위트가 극을 이룬 표현이다) 

 

중세시대에 이런 고난도 풍자 글을 좋아할 군주나 성직자가 있을 리 없다.

그러기에 우신예찬은 금서로 묶였다가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대에 따라 진리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그의 글이 보석같은 지혜를 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머는 삶을 맛있게 살아가게 하는 조미료다.

그 안에 고도의 진리를 담았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가!

나도 언젠간 에라스므스를 꿈꾼다.

조라스무스!

그날이 올걸 믿는다.

나도 다른 철학자들처럼 황야로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