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윌리암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by 굼벵이(조용욱) 2013. 2. 5.
728x90

 

아주 간단한 사건 하나를 놓고 관점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네 가지 측면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미국 남부의 암울을 복잡하게 그렸다.

미국은 신대륙의 발견 이후 서부개척이나 남북 전쟁 등을 통해 패배를 모르며

팽창과 낙관의 역사를 이어간 나라이지만 남부는 그 가운데에서도 전쟁의 패배를 경험한

유일한 지역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와 분노는 전쟁 패배의 역사적 Trauma를 경험한

남부인의 좌절과 상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작품으로 보여진다.

또한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정신세계가 관점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이 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20년대 이후 대 농장 제도(Plantation)의 몰락과정에 있는 한 귀족 가정의 개인사를 

중심테마로 잡고 있다.

흙 묻은 속바지를 입은 어린 소녀(캐디 톰슨)가 나무위에 올라가

죽은 할머니의 장례식을 관찰하는 것을 그의 형제들이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시발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풀어간다.

흙 묻은 속바지는 성적 타락의 상징이요, 나무위에 올라간 모습은 호기심에 가득 찬

도전적 여성상을 복선으로 하고 있다.

캐디 콤슨은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사생아 미스퀜틴을 낳고 결혼하지만

남편에게 소박맞고 파경에 이른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캐디의 오빠인 퀜틴은 하버드 대학생으로 여동생 캐디를 사모하는 감정과 관념적 근친상간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우울상태에 빠져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심약한 인간 유형을 설명한다.

세 살짜리 백치 벤지의 시야에서 바라본 누이의 결혼은 어머니 같은 보호자의 상실에서 오는 아픔이다.

제이슨은 현대사회의 물질만능 사상에서 바라본 누이와 형제들에 대한 관점을 통해

비천하게 타락해 가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녀 딜시의 시각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네 가지 관점에서 다루지만 각기 다른 이유에 기인한 극단적 우울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제목조차 맥베드의 유명한 독백에서 가져왔다.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꺼져라, 꺼져라, 가냘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잘난 듯이 무대 위에서 떠들어대지만

제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소란(소음과 분노)으로 가득 찬

의미 없는 이야기

**********************

Lost Generation 시대 우울의 극치를 보여준 소설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서로 다른 이유로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의미 없이 지껄이는

분노나 소음에 지나지 않는 허무일 뿐이다.

윌리암 포크너가 제 1 장을 거의 완벽하게 백치 벤지의 입장에서 서술하듯

작가는 하나의 소설 안에서 여러 관점을 다룰 경우 모든 표현이나 생각은

그 관점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구석구석에서 상실과 좌절과 느끼게 하는 몹쓸 책 같다.

제목마져도 그렇다. 

몸과 마음이 뒤틀리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렇지만 마음 한 편에선 끊임없이 그걸 요구하고 있다.

내가 미친 놈인지 책이 몹쓸 책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