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키케로의 의무론

by 굼벵이(조용욱) 2013. 2. 7.
728x90

키케로(BC 106~43)의 의무론

 

키케로는 의무론을 통해 그리스 시대의 광장(Agora)을 중심으로 발달된 인간의 최고선을

로마시대의 광장(forum)에서 사회참여적 실천적 윤리로 승화시켰다.

이는 로마사회 지식으로 무장된 엘리트로 구성된 원로원과 시민사회의 정치적 자유

그리고 합리적 토론문화가 가져온 유산이기도 하다.

그는

1. 인간본성(humanity: 자연적 선)에 대한 신뢰와

2. 교육을 통한 인간성의 완성 의무

3.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관용(tolerance)

4. 이성적 자기애에 의한 삶의 추동으로

로마시대 인문주의를 완성시켰다.

 

그리스 시대 여러 스토아 철학자의 저술을 요약 정리하여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그리스적 가치와 사상을 로마적인 것과 융합시켰는데 이것이 의무론이다.

 

그는 이미 완성된 현자/ 군자가 지향하는 최고선(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보다는

일상적 관점에서 보통 사람 모두가 따르고 지켜야 할 적합한 수준, 규범, 일상적인 삶 전체에 관한 의무, 일반적으로 공유된 규칙 중심의 중간적 의무를 지향한다.(적합한 것)

그래서 윤리학의 출발점을 최고선이 아닌 동물적 본성으로부터 시작했다.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처럼 자기보존의 욕구와 종 보존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가정과 사회를 지키려는 욕구 즉 사회적 의무로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욕구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보여 지듯 도덕은 자연적 본성(측은지심)과 연결되어있고

그것은 일종의 욕구에 해당하며 정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자연주의 윤리설을 주장한다.

도덕성을 자연적 충동의 발전적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

그는 정의로운 전쟁이 되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1. 평화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2. 원인이 정의로워야 한다.(피해에 대한 원상회복)

3. 달리 대안이 없어야 한다(외교적 불가피성)

4. 절차가 정의로워야 한다.(먼저 손해배상 청구 → 경고 → 전쟁선포)

5. 방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민간인 배제, 잔학행위 금지, 포로 용서, 잔혹한 용어의 순화)

 

인격(Persona)에 대하여

1. 보편적 페르조나 : 모두에게 공유된 인격으로 동물과 구분되는 이성, 인권 따위를 말함

2. 개별적 페르조나 : 각 개인에게 고유하게 부여된 정신적 기질(character)

3. 상황적 페르조나 : 우연이나 외적 상황에 의해 강제되는 인격

4. 선택적 페르조나 :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인격으로 어떤 삶의 형식으로 표출됨. 결정된 것(1+2+3)을 토대로 결정되지 않은 것을 스스로 창조하고 만들어가는 것(자아)을 말함.

(고대인들이 인간의 성격을 이렇게 심층분석 했다니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지혜와 용기, 절제와 정의를 4추덕 이라고 한다.

그중 그리스인이 sophia 라고 부르는 지혜는 이 모든 것의 으뜸이다.

지혜는 신적인 것과 인간사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즉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간 공동체 및 결속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철학자라고 했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진리를 관조하기 때문이다.

진리탐구는 신적인 행복을 느끼게 한다.

신은 자기 안에서 기쁨을 찾는 절대적 자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를 탐구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반면 키케로는 즉 로마인은 진리탐색은 공동체의 의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실천과 결합된 지혜라야 한다며 이론과 실천의 통합 모델을 제시한다.

그리스식 이론보다 로마식 실천을 중시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사태의 본성상 정의 자체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철인정치를 통해 국가가 그 생생한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인간의 본성상 진짜 정의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이를 쫓는 그림자만 채워주면 되는 것이고 그마져도 어렵다고 본다.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법의 본래적 취지에 함축된

자연법의 그림자를 메워가는 사람이 좋은 재판관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시대나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결국 또 자연법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