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된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사람의 생각, 정의, 원리원칙, 이치, 목표 따위는 가변적이어서 고착될 수 없듯
도는 말로 표현하여 정의할 수 없다는 노자님 말씀이다.
천지는 세상에 애정이 없다.(天地不仁)
천지는 세상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돌아가는 게 아니고 그냥 스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법도 그냥 그렇게 저절로 굴러간다.(道法自然)
되돌아가는 성질이 도의 움직임이고(反者 道之動)
부드러움이 도의 쓰임새다.(弱者 道之用)
언젠간 되돌아가기에 세속이 정한 원칙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을 타고 부드럽게 자기를 실현하라는 말씀으로 풀이된다.
道德이 타락하면 仁義가 생긴다.
집단무의식으로 수천만 년을 내려와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도덕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규범이나 규율 등 인위적 원칙(仁義) 강요함으로써 자연스런 삶을 방해한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 有爲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몸을 맡기고 無爲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有爲的 마음 때문에 고통이 생겨나니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살 일이다.
최고의 덕은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무위하며 사는 것이다.(上德 無爲而無以爲)
이토록 무위를 주장했던 노자도 三寶를 제안한다.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我有三寶)
첫째는 사랑이고(一曰慈)
둘째는 검소이며(二曰儉)
셋째는 감히 세상을 위한다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음이다(不敢爲天下先)
내게 사랑이 있어 남을 위해 용감히 나설 수 있고(慈故能勇)
검소하기에 남들이 더 가질 수 있게 함으로써 넓게 사귈 수 있고(儉故能廣)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세상 만물의 으뜸이 될 수 있다(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이 모두 이타적 관점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물러서 남을 위하고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연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노자의 성격을 검사한다면 아마도 전형적인 안정형(S) 스타일로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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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38장 上德 無爲而無以爲
上德은 不德이라, 是以로 有德하며,
최상의 덕은 덕스럽지 않으므로 오히려 덕이 있다 할 수 있고..
下德은 不失德이라, 是以로 無德이니라.
덕이 타락하면 덕을 잃지 않으려고 하므로 오히려 덕이 없다고 할 수 있다.
上德은 無爲而無以爲하고, 下德은 爲之而有以爲하니라.
덕이 높은 사람은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고
덕이 없는 사람은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上仁은 爲之而無以爲하고, 上義는 爲之而有以爲하며,
어진 사람은 어진 행동을 하려고 억지로 애쓰지는 않지만,
의로운 사람은 올바로 살려고 하면서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上禮는 爲之而莫之應하면, 則攘臂而扔之니라.
예를 내세우는 사람은 예의를 잘 지키면서, 다른 사람이 잘 따라하지 않으면
팔을 걷어 부치고 강제로 이끌어 시킨다.
故로 失道而後에 德이요, 失德而後에 仁이요,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는 덕을 높이고, 덕을 잃은 후에는 인을 들먹이고,
失仁而後에 義요, 失義而後에 禮니라.
인을 잃은 후에는 의요, 의를 잃은 후에는 예이다.
夫禮者는 忠信之薄이요, 而亂之首니라.
예라는 것은 공정함과 믿음이 사라졌을 때 생기며 사회적인 혼란의 시초이다.
前識者는 道之華이요, 而愚之始니라.
앞서 알려진 것들은(仁義禮) 도라는 것의 겉치장일 뿐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是以로 大丈夫는 處其厚하고, 不居其薄하여
그러므로 대장부는 본질에 머무르지 얄팍함에 머무르지 않으며,
處其實하고, 不居其華하니라. 故로 去彼取此니라.
실재에 머물러 겉치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껍질을 버리고, 내면의 본질만을 취하는 것이다.
(규리나 블로그에서 옮겨옴)
(어느 분이 해석하셨는지 정말 깔끔하고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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