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 역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흉내내기 챔피언은 침팬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적응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이다.
불빛을 암컷이 내는 교미신호로 오해하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우리의 마음은 진화 역사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가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초창기 단 음식 같은 열량이 높은 음식을 달게 느끼게끔 우리의 마음을 설계함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원을 섭취하게 했다. 그런데 그게 오늘날 성인병의 원흉이 되게 한 것이다.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외인 혐오증과 자민족 중심주의를 낳았다.
예컨대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이 서양보다 동양에서 강조되는 까닭은 동양에서 전염성 병원균이 더 득세했다는 환경적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음식에 고추 파 마늘처럼 맵고 자극적인 향신료를 첨가하여 병원균의 활동을 억제하게끔 진화하였다.
마늘, 양파, 칠리, 커민, 계피 등 세균을 특히 잘 퇴치하는 독한 향신료들은 추운나라보다 더운 나라의 요리법에 더 자주 등장하였다.
이는 더운 지역의 사람들이 순한 향신료보다 독한 향신료를 실제로 더 선호했음을 뜻한다.
과시적 소비행태는 수공작이 암컷 앞에서 꼬리를 펼쳐 으스대는 행동과 다름없다.
배우자를 고를 때 배우자의 지위와 재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쪽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등 따습고 배 부르니 어서 심신의 피로를 털어내고 유쾌한 기분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가 웃음이다.
남성은 남을 잘 웃기는 여성보다 자신이 던지는 유머를 잘 이해하여 즉시즉시 큰 웃음을 터뜨려주는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한다. 반면에 여성은 자신이 던지는 유머에 잘 반응해 주는 남성보다 무조건 자신을 잘 웃겨주는 남성을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외부적 실재가 아니다. 잡식성 영장류인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진화하면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정한 환경을 잘 찾아가게끔 그 환경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 정서일 뿐이다.
꽃을 좋아하는 것은 향 후 몇 달 동안 이곳에서 유용한 자원을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꽃은 오래지 않아 과일이나 견과, 덩이줄기 같은 음식물이 나게 되리라고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꽃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들도 찾아온다.
'털없음'은 자신이 기생충이 없는 건강한 사람임을 이성에게 광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 선택된 구애도구라는 것이다.
하이트는 직관이 추론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부분은 도덕적 정서가 어떤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재빨리 최종 판단을 내린다. 이성에 의한 도덕적 추론은 이렇게 정서에 의해 주어진 결론을 사후에 합리화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도덕은 본능이다. 곧 도덕성은 우리의 조상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풀고자 선택된 보편적 심리기제의 산물이다.
진화적 시각에서 보면 종교가 존재해서는 안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종교활동에는 물질적인 희생 정서적 비용, 그리고 인지적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파스칼 보이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주 약간만 낯설고 이상한 것에 가장 관심이 가고 더 잘 기억한다. 반면에 시시하도록 정상적인 것이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억하거나 전파하지 못한다. 신이 인간에 대한 직관적인 기대를 아주 살짝 뒤엎는 초자연적인 행위자기 때문에 잘 기억되고 전파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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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부분 수긍이 갑니다.
인간심리의 과학화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이해와 공감을 느끼지만
2500년전 사람들의 생각보다 지금 사람들의 생각이 전혀 나아진게 없다는 전제에서 보면
진화심리학의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심리나 정신, 사상 따위는 진화보다는 오히려 퇴화된 듯한 느낌이 많은데
나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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