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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자비를 말하다(카렌 암스트롱)

by 굼벵이(조용욱) 201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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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다른 사람과 함께 어떤 일을 견딘다는 의미이다.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 처해보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치 나의 고통처럼 느껴보는 것,

관대하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사랑의 네가지 요소(붓다)

1. 마이트리(慈): 모든 지각있는 존재에게 행복을 주려는 욕구

2. 카루나(悲) : 모든 생명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하는 결의

3. 무디타(喜) :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서 기쁨을 얻는 것

4. 우펙샤(捨) : 모든 존재를 동등하고 편견 없이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평정심

 

자비는 인간의 본성을 구현하고 자아를 버리고 끊임없이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하도록 요구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평상시의 아집에 싸인 상태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차원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붓다의 결정적인 성찰은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자기중심주의는 약 50억년전 살아남기 위해 태고의 진흙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파충류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생명체들은 오로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신경과학자들이 네가지 F라고 불리는 메카니즘에 따라 움직였다. 즉 feeding(먹이), fighting(투쟁), fleeing(도망), fucking(번식)이 그것이다.

 

공자의 인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신이 높은 지위와 명성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높은 지위와 명성을 얻도록 돕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길잡이로 삼아 남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사랑이 충만한 자가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지위를 원한다면 먼저 높은 수준의 사랑 능력을 쌓아야만 한다.

 

샬롬(평화)은 가장 높은 가치들 중 하나였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이상의 의미로서 온전함 완벽함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가정생활은 자기희생이 따른다. 거의 매일 용서해야 할 일이 생긴다.

자신의 가정에 대해 진심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죽음과 질병 그리고 점점 쇠약해지고

굴욕적인 노년이 될 가능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불교도들의 존재의 고통이다.

 

생존을 목적으로 한 파충류의 뇌는 전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조정되어있다.

이처럼 무자비한 자기집착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삶을 지배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는 비참해질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함께 슬퍼하기 위해 연극을 관람했다.

그들은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 시민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관객 개개인에게

개인적인 슬픔 속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확신했다.

자비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비극을 관람하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듯하다.

 

우리는 신, 열반, 브라만 혹은 도라고 부르는 초월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것들은 초월적인 것이어서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곳에 있으며

그래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겨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자아를 버리고) 

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시각을 말한다.

매 순간을 경이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지혜로운 거다.

 

하지만 자아를 버리고 나아가는 현자는 장자가 위대한 지식이라고 부르는

넓고 느긋한 것을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마침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릴 때까지 한 가지씩

조용히 앉아 잊어버리는 것을 익히게 되었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다. (坐忘)

장자는 완벽한 사람은 자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단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하다는 믿음을 버리게 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나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운다, 그래서 그도 운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존재로 여긴다.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는 것이라고 시몬베유가 말했다.

 

도가의 현인들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자신의 생각과 너무 강하게 동일시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비판하거나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 인격적인 공격을 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통치할 준비가 되어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이기적인 습관을 극복한 사람이다.

 

커다란 고통을 겪는 이유는 나에게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아가 없다면 내가 어떤 고통을 겪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자아만큼이나 천하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을 것이며 ...

 

자아는 과거의 지식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컴플렉스다.

자아를 버리고 매순간의 현상을 순수하게 인식해야 하며

자아 대신 다른 사람, 사물, 상대방을 온전히 자리잡게 해야한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하다.

만물의 영장, 초월적안 존재, 신처럼 살려면

파충류시절 약육강식의 생존을 위해 지녔던 유전인자를 버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안되면 그냥 파충류처럼 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