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앞에서 일시적으로 얼어버리는 것이 동물의 본능 중 하나다.
유구한 역사 속에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인간은 더욱 동물스러워진다.
최고의 경쟁이 생존이다.
대다수의 수컷 침팬지는 평생 한 번의 짝짓기 기회도 갖지 못한다.
자연은 공정하지 않다.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 타조나 숭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에 의하면
아침식사는 출근하기 위한 거고 출근은 돈을 벌기 위한 거며
돈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므로 인간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도덕적 버전의 행복론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동의 원인은 생존에 있다.
행복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즉 인생의 목적은 생존이고 생존하기 위해선 우선 오래 살아야 하고
잘 번식(성욕)시켜야 한다.
오래 살기 위해선 잘 먹어야 하며(식욕)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죽지 않도록 잘 먹기 위해서는 식사의 즐거움이라는 생의 기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식욕을 준거고 욕구충족이라는 행복이 생긴거다.
홀로 있으면 외로워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의 기제가 아니고 후천적으로 얻어진 인간특성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사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먹기 위해 사냥을 한다거나 포식자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에 사회성이 발달한거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감을 느끼도록
집단무의식이 형성되어 대대손손 전승된 것일게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생존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사회 안에 가두어두려고
왕따를 당하면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섹스가 행복감을 주는 것은 생의 기제로 종족번식을 위해
자꾸 섹스 행위를 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종족이 번식하고 후계되기 때문이다.
결국 생존은 두 가지 원리 즉 보상과 처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즐거움이라는 행복감을 주어 특정 행동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법이고(섹스:보상)
다른 하나는 불쾌감을 주어 생존에 저해되는 행동을 막는 것이다.(외로움:처벌)
손이 잘리든 애인이 떠나든 뇌는 똑같은 곳에서 아픔을 주며 비상경보를 발동한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미 다트머스대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라고 했다.(social to the core)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혼자이어서는 생존이 어려워 서로 모이도록 진화했지만
인간 자체는 지나치게 개별적(Private)이어서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의 대립에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오만 생각을 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두뇌와 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외로워 죽는다고 하고 함께 있으면 원수처럼 싸우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화가 덜 된 것으로 본다.
승진의 기쁨,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이유는 승진 자체가 아니라
승진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 때문이라고 ?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승진은 더 많은 사람들과 보다 넓고 깊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얻게 되는 행복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만큼 넓고 깊은 사랑의 감정을 갖지 못한 사람이 고속승진하는 것은
개인이나 조직에 매우 위험하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것은
개미와 인간인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유별나게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 특성 즉 외향성이라는 성격특질이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는게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푸코는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우리의 뇌가 놀라울 만큼 빨리 무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응하는 것이다.
수년 동안 몸과 약간의 영혼까지 팔아서 얻은 승진이 주는 즐거움도 불과 며칠이다.
시간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운다.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험을 겪으면 감정에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어지간한 일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여행 따위의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보다 신상 구매와 같은 물질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빨리 적응되어 사라지기에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를 더 자주하게 된다.
금강산 구경을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기 위해(본질적 욕구)
금강산 구경(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은 가치 있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본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는 가치 있게 사는 삶이 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 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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