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전통적으로 지배층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아니라
지배층의 잘못을 비판하는 도구였습니다.
누가 역사를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정도전을 끝까지 신뢰했던 것처럼 공민왕이 신돈을 끝까지 신뢰했다면
고려는 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더와 참모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종종 창업공신을 수성에 방해가 된다며 토사구팽 합니다.
공신인 참모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리더인 군주의 가치관이 창업 후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군주는 대부분 수성에도 실패하고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지요.
그래서 리더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겁니다.
영욕과 득실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욕과 득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지만
결과는 하늘의 몫이니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실패해도 후사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원한을 품으면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는 천인감응설을
기원전 2세기 때 한나라 동중서가 주장했습니다.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최근 일어나는 갖가지 심상치 않은 사건사고들은 하인리히의 법칙과
천인감응설에 의한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위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을 위한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지나치게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지 국민의 이름으로 잘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말 토지제도의 실패로 군인전이 사라지면서 중앙군이 사실상 해체되고
그 결과가 위화도 회군을 가져왔습니다.
사전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정국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서도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 왕족들은 사전문제를 국가 전체,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의 문제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위정자가 사리사욕을 좇느냐 국리민복을 좇느냐가 국가의 존망을 결정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담보로 만들어진 것인데
사리사욕을 좇는다면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이니 당연히 붕괴될 수밖에요.
역사의 흐름은 무섭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 같습니다.
여기 휩쓸리면 임금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리가 좋다고 함부로 앉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깜냥이 아니면서 함부로 자리 탐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중산층이 몰락해서 양극화가 심해지면 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한 사회가 내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내부문제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에 달려있고 양극화입니다.
국리민복을 도모하되 골고루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지요.
부를 어떻게 창출하고 배분할 것인지가 위정의 중심입니다.
부의 크기를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의 공정한 배분입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몰락은 결국 여자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의 후취 선덕왕후 강씨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막내인 방석 대신
일반원칙에 따라 첫 번째 부인 한씨 소생의 적장자 또는
개국공신 이방원을 세자로 삼았다면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정도전과 이성계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요동정벌의 꿈이 실현되고
이성계가 중원의 황제가 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나친 상상일까요?
암튼 여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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