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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백성호)

by 굼벵이(조용욱) 201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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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시 '행복해진다는 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이라는 한가지 의무 뿐"

그가 보기에 우리의 존재의미는 아주 간명하다.

행복이다.

 

유학에서는 자기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본다.

공자는 네가지가 없으니 제멋대로 억측함이 없고,

반드시 일을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없으며, 완고함과 아집이 없었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과녁탓을 하지 말고 자기 탓을 해야 한다.

바깥에 대고 징징대지 말고 자기 탓을 해야 한다.

문제의 근원이 자기였으니 이는 자기혁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것

스스로 정성을 다하면 창조의 에너지가 발생하여 못 이루는 것이 없다는 중용의 이론도 같은 맥락이다.   

天理라고 표현한 이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 대한 깊고 과감한 수용을 뜻한다.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

자녀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결핍을 허용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가게 해야한다.

인류사의 모든 문명은 결핍에서 성장하고 풍요에서 쇠퇴해 갔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나를 보는 것에 있다.

각성 자체가 치유를 보장한다.

노자와 장자는 좌망 즉 너 자신을 잊으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잊을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훈련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훈련법이 가장 풍부한 건 불교였지만 출가자를 위한 전업 훈련법이 많았다.

하지만 유학은 일상 속에 훈련법을 가르쳐준다.

삶의 모든 형태의 전쟁은 우리가 지닌 삶의 공격성 그리고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편견과 관념으로 인해 발생한다.

격물치지란 지식의 끝까지 궁리해 보라는 말이죠.

스티브잡스는 매우 인상적인 말을 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한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바닥까지 파보는 사람이 없더라.

그게 충격적이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네가지 훈련법을 가르쳐준다.

첫번째는 입지다.

자기 안의 문제를 발견하고 혁신하려는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둘째는 혁구습이다.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인생은 습관이 결정하므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

세번째는 몸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持身이다.  

네번째는 고전을 익히는 독서이다.

특히 독서가 중요한데 그건 삶의 이치, 인간의 이치, 세상의 이치에 대해

생각하고 읽어내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게 통찰력이다.

배우고 익힘은 스스로를 인터테인먼트한다는 말로 노년에 이런 영역이 없으면 인생은 불행해진다.

나이들수록 소유보단 존재의 양식을 필요로하게 된다.

상처로부터, 고전으로부터 배워라.

그렇게 터득한 이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지혜롭게 한다. 행복하게 한다.

궁리 끝에 행복이 온다. 학이시습지리니...

 

살아있는 집이란 기본적으로 열려있는 집,

자기 것을 갖고있지 않은 집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이죠.

자신의 것을 갖지 않기에 다른 것을 품을 수 있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한옥에서 가장 열린 구조가 정자와 사랑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타란 곧 의지이다.

생명에는 끊임없이 시도하는 원초적인 능력이 있다.

무작위의 질서 속에서 작위의 질서가 생겨나는 것을 창발이라고 한다.

의지야말로 우주를 관통하고 우리 삶을 관통하는 방향타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한 의지가 있다면 내가 죽은 후라도 이루어진다,

의지는 곧 기도와 같은 의미이다.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상처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인간적 성숙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왜그러냐면 상처를 재료로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성장통이다.

고통을 자신의 삶이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긍정할 필요가 있다.

땅 위의 나무는 아름다워요. 잎, 꽃, 새둥지도 있고요.

하지만 땅 속 뿌리는 깜깜하고 벌레도 많고 바위 투성이에 공기도 희박합니다.

그래도 뿌리는 내려가야해요.

내려간 만큼 몸통도 자라는 거니까. 그래야 나무가 건강하니까.

그 뿌리가 고통, 외로움, 좌절, 상처들로 만들어져요.

깊은 깨달음에서 오는 즐거움, 온전한 나를 찾는 이들만이 지어보일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같은 것이 Joy다.

 

진중권

칸트는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은 종교에 맡기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일상의 유배 자발적 유배다.

삶의 유희화 아무리 모독을 받아도 게임으로 받아들이기

 

이덕일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먼저 자신을 다스렸다. 그게 수기치인이다.

맹자도 유항산 유항심이라고 했다. 먹을게 있어야 제대로 된 마음이 유지된다.

먹을게 없으면 최하위 욕구단계에 머무르기 때문에 자기실현 욕구에 다다르지 못한다.

누가 과연 역사의 승자인가? 결국 무엇을 추구했느냐의 문제다.

정승 대감 높은 지위가 빛나는게 아니고 어떤 분야를 추구해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가 빛을 발하는 거다.

결국 인간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하다.

중요한 것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데 있다.

위너가 별건가요? 행복한 사람이 위너지!

 

정재서

意馬心猿 : 생각은 말처럼 날뛰고 생각은 원숭이처럼 까분다.

그런 요괴인 나와 싸우는게 손오공이다. 

결국 그런 나를 이겨내고 자아의 각성 깨달음에 이르는 여행이 서유기다.

만족을 알고 멈출 때 행복을 알게된다.

그건 내게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찾는 일이다.

 

최재천

고통은 간절함으로 바뀌고 간절함이 진화를 가져온다.

미안한데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루소가 무책임한거예요. 다만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는 있어요.

 

고진하

기독교에서는 자꾸 죄를 이야기하잖아.

야고보서의 구절처럼 욕망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식으로.

인간의 욕망을 죄의 근원으로 여기는거지.

'바가바드기타'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해요.

그걸 단죄의 대상으로 여기면 위선을 떨게돼요.

안그런척 하면서 뒤에서 다 하잖아

그게 죄라고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자유로운 거지. 그래서 인도철학이 좋더라고

고독은 곧 창조성이에요.

고독을 통해서 비로소 내 안으로 깊이 침잠하게 되는거고

침묵하며 홀로있으라. 그리하면 놀라운 삶이 펼쳐질테니.

 

유미숙

어른과 아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요.

나를 먼저 알고, 상대방을 알고, 나와 상대방이 컴뮤니케이션하는 스타일까지 알아야 소통이 되죠.

즉 관계를 이해해야 소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행복은 느낌이자 발견이다.

그 느낌은 가치로부터 오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는 건 부모의 못이다.

 

대해스님

멋진 영화를 만들려면 연출력이 뛰어나야 하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정답도, 영원한 오답도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눈앞의 현실에 맞는 답을 끌어다 쓰면 그게 정답이 된다.

불교에서는 108번뇌가 있다고 하죠.

번뇌가 곧 지혜입니다.

너무 많으면 혼잡스러울 수 있어 108개로 개념화했지요.

 

황병기

옛것을 물려받되 새것을 만들어 내는게 전통이지.

그대로 전수만 한다면 골동품이야.

그래서 서양음악사도 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시작해.

그런데 중세 교회음악의 선법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

그리스 로마가 아니야. 모두 아시아에서 나온거야.

이오니아 선법, 도리아 선법, 리디아 선법 하잖아.

이들 지명이 다 중동지방에 있었거든

이들 서양음악에 그리스 로마가 없듯 우리 음악도 신라나 고려가 없어.

베토벤도 귀가 먼 상태에서 아름다운 곡을 썼잖아.

사람이 비참해지면 비참한 곡을 쓸 것 같지만 거꾸로 아름다운 곡을 쓰고싶은 충동이 나와.

어릴적 돋보기로 종이 태워본 적 있지? 간절함은 그런 일이다.

햇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빛을 하나로 모으는 일 그게 간절함이다.

간절하지만 힘이 빠져있고 힘은 뺐지만 간절해야 한다.

내가 뭘 하겠다고 힘을 주면 금방 추락해버려.

 

서민

인간은 불행의 숙주다.

불행은 기생충 같은 존재이며 고통은 그것의 생태적 특성이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땐 제가 독서에 열중한 것처럼 뭐든 죽어라 해보세요.

도움이 되거든요.

기생충이 우리 몸에 큰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을 괴롭히려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지들 양식이나 조금 얻어가려는 소박한 목표를 가졌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