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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중용(심범섭)

by 굼벵이(조용욱) 201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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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길러내는 힘을 가졌으며 가장 지극한 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亨은 음양이 합쳐져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면서 만물의 형상을 갖게 하는 힘을 가졌으며 아름다움이 모여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利는 시작과 끝을 밝히는 힘을 가졌으며 義로서 조화를 이루는 성질을 갖고 있다.

貞은 순환하고 반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뿌리와 줄기가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性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 준 순수한 성품이고(천이 우리에게 내린 순수한 명령)

道는 그러한 성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고

敎는 그 도를 따라 수양해 나가는 것이다.

命은 목숨이나 운명 또는 명령을 말한다.


동대문은 興仁지문, 서대문은 敦義門, 남대문은 崇禮門, 북 쪽은 弘智門으로 하여 인의예지를 갖추었다.


庸이란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중을 잡아 변하지 않게 일상에서 유지하는 것이 용이다.

따라서 중용이란 원래 인간에게 천도의 섭리에 따른 중이 있는데 그 중이 제자리를 갖도록 일상생활에서 항상 성실하게 중화를 유지하고자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조화와 균형을 갖춘 中을 어어감이 중용이다.

 

희노애락 등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이고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중절하는 것을 화라 이른다.

중은 천하의 대본이고 화는 천하의 달도이다.


상극도 궁극적으로는 상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군자란 도덕적으로 매사에 상대방에 대해 중화를 이루기 위해 한결같은 도를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항상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세우고 타인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잣대를 세우는 것이 정직의 중용이 된다.

군자는 중용에 의지해서 세상을 피해 숨어서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이럴 수 있다.


誠意正心은 자신의 몸에서 도가 떠날 것을 염려하여 戒身恐懼와 愼獨의 의지를 갖는 것이다.

성의정심은 격물치지에 의해 천도의 도를 깨닫게 된 후에 마음을 조절해 가는 과정이다.

수신은 상대방을 대할 때 성의정심의 마음상태를 유지하면서 혼자 있을 때나 인간 관계 속에 있을 때나 항상 충서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충서는 가운데에(中) 마음을(心) 두는 忠과

같은(如) 마음(心)인 恕를 말한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가운데에 모이도록 하는 것이 충서 즉 중용의 기본원리이다.

사시의 현상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을 대할 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격물치지를 하여 지속적으로 수신해 나가야 한다.


천도가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를 실천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상생하기위한 것이다.


천은 우주만물의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천이 생명과 性을 내려주어 만물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천도를 본받아서 모든 일을 중용으로 대응하고 인으로 세상사람들을 대하고 인간관계에서 충서를 하는 것은 천이 내려준 성과 생명을 유지하고 천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고 그 뜻을 이어받는 공경의 표시인 것이다.


선에 상대되는 개념은 불선과 악이다.

악은 천도에 역행하는 것이고 불선은 잠시 몸에서 이탈해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잠시라도 불선하지 않기 위해 성실함이야말로 일관된 수신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며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천의 성이 스스로 천도를 이루고 만물을 생성한 것처럼 본인 스스로 인을 이루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지혜를 갖게 됨에 따라 자신의 성을 회복하고 그 덕으로 사람들을 교화한다.


높은 지위가 아니라 중심에 서라.


자신에게 때가 온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과거 역사의 흐름을 자신에게 대입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용은 욕심이 아닌 상생의 마음으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