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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최진기)

by 굼벵이(조용욱) 2016.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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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리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세계

행복한 때에도, 불행한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상과 마주대하던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쇼윈도가 출현했다.

물건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기호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상품에 부여된 기호 , 즉 이미지, 감성, 지위표시, 유행, 구별짓기, 사회적 코드 등과 같은 것들을 소비한다.

본질은 어디가고 인간의 욕망에 편승한 껍데기 허구적 가치를 욕망하며 소비하는 거다.

시뮬라크르 : 시늉, 흉내. 현실을 대체하는 모사된 이미지.

시뮬라시옹 : 시뮬라크르 하기. 실재가 가상의 실재인 시뮬라크르로 전환되는 작업을 의미.

모더니즘이 근대 이성주의를 바탕으로 진리의 기준을 인간의 이성으로 정의한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에 대한 믿음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감성과 의지, 이미지 등을 강조한다.

보드리야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셸 푸코 : 권력은 숨겨진 형태로 어디에나 있다.

광인은 미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광기는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정상성에서 분리되지 않고 일상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17,8세기 대 감금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 강제수용소는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표준에 못미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고 그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길들입니다.

길거리 광인들은 가차없이 수용소로 보내져 육체와 정신이 감금당합니다.

권력은 이렇게 개인을 통제하고 규율을 내면화 해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며

그러한 구조를 통해 원하는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진리는 궁극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고 시대마다 다른 사유방식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그는 사회구조가 우리를 지배하며 권력이 그 구조 속에서 각종 장치를 통해

은밀하게 행사되어 왔음을 감옥, 정신병원, 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추적하여 밝힙니다.

 

위르겐 하버마스 : 그래도 이성은 죽지 않았다.

모든 인식은 우리의 언어 속에 들어있다.

토론이 대립적이고 논증적이며 자기주장적 진술이라면

담론은 어떤 주제에 관한 인식을 표현한 모든 말과 글을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역시 발전의 원동력을 경제 즉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화에서 찾는 반면

하버마스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합리적 발전과정과 제도화가

역사 발전의 또 하나의 축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합리적 의사소통의 구조가 확대되어온 것이 역사발전이고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말합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변화가 역사발전을 의미한다.

서울 소재 9개 유명 대학의 사회과학대 교수의 절반이상이 미국 유명 10개 대학 출신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미국의 주류 학문성향을 따라 배우고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이 그렇습니다.

 

울리히 벡 : 위험사회와 성찰적 근대화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산업사회가 재화(goods)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위험사회는 해악(bads)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1.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위험의 평등화)

2. 위험의 전 지구화

3. 사회적 불평등의 개인화 : 끊임없이 개인주의화

4. 소통방식의 개인화

5. 과학의 상실, 위험을 해결하기 보단 증가시킴

인간의 이성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성에 기반한 근대성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성이 내포되어있다.

산업사회의 원리 자체를 성찰하여 산업사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사회와 기술공학 체계 자체의 복잡성을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

국민국가적 시각에서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으로 바꾸어야한다.

 

한나 아렌트 : 악의 평범성, 사유 불능성

인간은 평등하기에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차이가 있기에 구별된다(인간의 복수성)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즉 사유불능성 그 중에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을 유태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에게 선포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악에 이용당하고 나아가 악을 돕는 관성의 폐해를 지적한 말이다.

 

사르트르 :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대상을 존재와 본질로 구분한다.

의자의 존재는 의자 그 자체인데 본질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가구이다.

앉을 수 없는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어서 버린다.

즉 물건은 본질이 존재에 우선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본질이 아닌 존재로 대우한다.

잘나든 못나든 모두가 의미 있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의 존재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기에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그러기에 인간은 기투하는 존재이다.

기투란 인간이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자신을 스스로 던지는 실존방식이다.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거다.

인간이란 본질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다.

 

조지 리처 :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 화

패스트푸드 맥도날드는 주문한지 5분 내에 나오는 시스템으로 합리성이 극대화 된 것이다.

그러한 합리성이 음식점 뿐아니라 기업, 병원, 학교 등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는 현상을 맥도날드 화라고 한다.

합리성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합리화된 공정의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눈다.

 

새뮤엘 헌팅턴 : 문명의 충돌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이념은 가고 그 자리에 문명이 들어설 것이다.

8개의 문명권이 있고 각 문명권은 핵심국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계속한다는 문명 패러다임을 주장했다.

새로운 국제사회의 분쟁은 문명과 문명의 단층선지대에서 시작될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 지구촌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문명간의 경계선이 곧 미래의 전선이 될 것이다.

걸프전은 이슬람과 기독교문명간 최초의 자원전쟁이라 볼 수 있다.

문명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문명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갈등이 벌어지는 면적(단층)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교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이 동맹을 맺어 서구 기독교 문명권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맞서는 악몽 즉 서구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특히 이슬람과 중국을 주목한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탈냉전의 세계에서 국제관계의 도가니는 아시아 그것도 동아시아가 문명의 가마솥이 될 것이다.

 

하랄트 뮐러 : 문명은 공존할 수 없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아테네의 악명 높은 도둑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가 지나가면 집안으로 불러들여 침대에 눕힌 다음 침대보다 키가 길면 잘라서 죽이고 짧으면 늘여서 죽였다는 데서 유래한 말.

헌팅턴을 패권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힌 미국정부의 논리를 대변하는 데 지나지 않다고 비판한 사람이 뮐러다.

문명은 교류하면서 변화하고 공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오히려 과도한 국가주의가 문제다.

유대인 학살도 과도한 국가사회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다.

국가간 충돌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사회통합의 수단은 문명이 아니라 국가, 민족, 인종, 계급에 있다. 문

명은 공존하고 개방되어야 한다.

강자가 먼저 약자에 다가가야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 : 동양에 대한 관념, 오리엔탈리즘

서양에게 동양은 원래 한중일이 아니라 중동을 의미한다.

당시 페르시아는 최고의 문명국가였다.

서양인들은 동양의 로맨틱함과 이국성,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강조하며 판타지를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시각이 깔려 있고 그래서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무지의 충돌이다.

서구사회의 이분법적 사고와 야만적 관행이 문제다.

911테러 후 아프가니스탄 공격이나 이라크 전쟁도 거기 기인한다.

서구사회가 동양사회를 더 정확히는 서구외의 국제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무지의 충돌이다.

서양의 기준으로 동양인인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한국사회, 정체성이 없고 대학교수 대부분이 미국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초중고 교육을 미국에서 받은 아이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자기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개념인 옥시덴탈리즘은 서양(Occident)에 대한 동양의 확인되지 않은 고정관념, 왜곡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인구달 :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동물행동학자)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9.5%가 동일하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오래된 미래

인도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서 직접 생활하고 관찰한 기록이 오래된 미래이다.

검소한 생활과 협동,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지혜를 통해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라다크의 생활방식은 오래되었지만 미래의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에서 ‘오래된 미래’가 나왔다.

 

E.H. 카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토인비가 영웅주의적 역사관으로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인간사회 문명과 역사가 발전했다고 보는 반면 카는 개인이 처한 사회적 힘을 더 중요시 한다.

개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동기에 의해 독립적으로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와 사회 속에서 규정된 동기가 그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라고 보았다.

역사에서 인간의 행동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 상호관계에 관한 행동이며 그의 행동마저도

행위자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까지 초래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일들이다.

역사에서 개인을 강조하는 토인비 입장과 반대로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다수 즉

민중이 이끌어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개인은 어디까지나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크로체와 콜링우드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현재의 인물인 역사가의 임무가 막중하다고 본다.

카에게 있어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형성하는 한편,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는 노동자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칼 포퍼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언젠간 이 가설을 반증할만한 근거가 나올 때까지만 우리가 참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식은 어떤 문제에 대한 합리적 가설을 제안하고 이를 반증하며 확장된다는 것이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이다.

역사주의란 역사가 어떤 원리나 규칙에 따라 결정된 목적을 향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란 정해진 법칙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의 조건이 변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인간과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들이 모든 사상에 대해 비판과 사유가 가능할 수 있는 사회 즉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다.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지배자를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지표이다.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회를 말한다.

수없는 사례 속에서 반증을 거친 이론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합리주의자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모든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고 잠정적이다.

 

존 롤스 :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공정성의 핵심은 운(fortune)의 중립화이다.

즉 출생, 사회적, 자연적 여건 등 우연성의 결과를 무효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

1.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

2.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이익, 즉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최대이익이 되도록 함

3. 모든 직무와 직위에 기회균등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사회적 협의를 해야 정의에 걸맞은 원칙에 합의할 수 있다.

 

조지 레이코프 : 프레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은 인간이 실재를 이해하도록 해주고 때로는 우리가 실재라고 여기는 것들을 창조해주는 심적 구조를 말한다.

프레임은 우리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구조화하고 사유방식을 형성하며 생각과 행동의 배경이 된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프레임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은유를 통해 각자 프레임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좋다.

정치는 결국 프레임 전쟁이다.

모든 정치적 , 상업적 선전들은 프레임을 만드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중매체는 무서운 프레임 권력이다.

 

제레미 리프킨 :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접속의 시대

세계 인구의 5%가 안되는 미국이 세계 화석연료의 1/4을 소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가축사육을 위해 소비되고 있다.

세계는 기술천국의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결함사회)로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젠 소유가 아니라 접속의 시대로 변할 것이다.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며 소비하는 가치창출을 통해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 : 이기적 유전자, 지상 최대의 쇼

인간만이 이기적 자기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다.

즉 인간은 그저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불과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유전자(DNA)를 보전하기 위해서다.

돌연변이 중에서 수명이 더 긴 것, 더 많은 수를 복제하는 것, 자신을 더 정확히 복제하는 것들이 살아 남아 진화하고 이들끼리 서로 경쟁하게 된다.

유전자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대신할 생존기계를 만들게 됩니다.

이 생존기계가 바로 인간이고 모든 생명체다.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가리지 않는 무한전략의 이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의 이기적 행동의 목표는 바로 유전자입니다.

언뜻 이타적으로 보이는 동물들의 행동도 사실은 불멸의 코인인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다.

이기적 목적이 이타적 결과를 탄생시킨다는 거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되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이 아닌 장기적 이익을 도모할 능력이 있다.(마시멜로 이야기)

이 자유의지가 밈(meme:유전자가 아니라 모방 등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통해 문화를 일구고 후손에게 전달한다.

 

토머스 쿤 : 패러다임 전환, 과학혁명

과학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세계에 대한 의심 그로부터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다.

 

제임스 클리크 : 카오스 이론, 무질서 속의 질서

세상은 온통 코스모스적 질서가 아닌 카오스적 무질서로 덮혀있으며

우리가 그 혼돈 속에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카오스 이론이다.

나비효과에서 카오스 이론이 태동.

프랙탈이란 부분의 구조가 끝없이 반복되어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의 모양도 부분의 모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나뭇잎)

복잡계 이론이란 복잡성을 가진 현상들을 이론화 한 것이다.

복잡한 현상들을 하나의 보편적인 명제로 만들려는 학문적 시도이다.

얼핏 작은 사건처럼 보이는 현상도 수많은 변수가 유기적,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찰스 다윈 :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 세상을 열다.

자연선택이란 어떤 종의 개체 간 변이가 생겼을 경우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것이다.

유전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설계도 즉 DNA가 발견됨으로써 진화론이 확고히 되어갑니다.

 

에밀 뒤르켐 :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

이기적 자살 : 사회통합도 낮고 개인 결속도 약한 경우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타적 자살 : 사회통합이 너무 강해 발생한다.

사회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보다 훨씬 클 때 발생한다.

아노미적 자살 : 가치규범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자살이다.

전통사회가 근대화로 인해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살이다.

(미국 대공황시 증가한 자살)

숙명론적 자살 : 아노미적 자살과 반대로 극단적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자살이다.

 

막스 베버 : 합리성과 자본주의 정신

부르주와 민주주의야말로 독일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라고 생각했다.

기존체제 중심의 개혁이 필요하다.

청교도는 직업인이기를 바랐다.

반면에 우리는 직업인일 수밖에 없다.

산업화에 따라 새로운 합리성이 필요했다.

 

“공무원 같은 철밥통 직장에서 성과급 약발이 안 먹히는 이유가

지금도 편한데 돈 몇 푼 벌자고 뭐하러 사서 고생하겠느냐는 데에 있다”는 최진기의 견해는

그의 삐뚜러진 사회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표현이다.

성과급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본질적으로 성과급 시스템은 공무원 직무에 적합하지 않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민에 대한 봉사를 본질로 하는 공무원 업무는

물건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일반 기업 업무와 매우 다르다. 즉 대상이 다른 것이다.

성과급이란 기업업무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경영시스템이고 나아가 일반 경영에서도 초등학교 수준 정도의 사람들이 수행하는 매우 단순한 노동 직무에나 적합한 시스템이다.

요즘처럼 고도화된 직무는 성과연봉제 보다는

자발적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코칭 기반 MBO제도가 더 많은 생산성을 가져온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로부터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찾았다.

남부유럽은 기톨릭이고 북부유럽은 개신교라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가톨릭의 가치관은 부유함을 추구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언젠가는 하느님께 귀의해야 할 인간에게 속세의 부와 화려함은 덧없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생활이 될 만큼만 하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묵상과 기도 같은 정신활동에 매달려야 한다.

인생의 목적인 구원을 위해서라면 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특히 칼뱅파에게 노동의 의미는 각별하다.

개인의 직업은 신이 준 의무 즉 소명이다.

그들에게 노동은 신을 찬양하는 가장 신성한 길인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에 의한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재능을 힘껏 발휘하여 그 대가를 취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오히려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의식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청교도의 근검절약 정신은 은행에 돈이 모이게 했고 이것이 산업자본의 원천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경제구조인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인 법이나 문화 종교 등을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반면 베버는 종교, 즉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한 것이다.

 

칼 마르크스 : 반항, 변화, 혁명 그리고 유토피아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자신을 실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로서 노동과 노동 생산물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확인되고 실현되는데 그 노동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결과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니 소유에서 소외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소외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본질을 완성하지 못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과 정치공동체 사이의 소외를 극복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국가는 부르주와 계급의 지배도구이다.

경찰, 군대, 관료 모두 부르주와의 지배를 원활하게 하고 프로레타리아를 탄압하는 지배계급의 도구일 뿐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현실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가족도 계급 대립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가족이란 간통과 매춘으로 보완되는 일부일처제에 불과하며

남자의 재산이 아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발전한 것이다.

원시공동체 > 고대 노예제도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물질 즉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행동한다는 유물론적 사고에 기인한다.

노동자는 임금에 해당하는 필요노동 외에 자본가를 위한 잉여노동도 하며 이 잉여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다.

자본가는 잉여노동 즉 이윤을 늘리기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임금을 삭감하거나 노동강도를 강화하거나 생산성을 향상시켜 잉여노동을 착취한다.

그러기에 노동자는 일을 많이 하더라도 더욱 힘들어지고 궁핍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이윤을 창출 할 수 없는 단계가 와서 붕괴된다고 보았다.

평균이윤률 저하의 법칙 때문이다.

자본이나 토지 등과 같은 불변자본이 노동 등의 가변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경향 때문이다.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윤률이 점차 저하된다.

자본주의적 경쟁은 지속적으로 불변자본의 비율을 높인다.

더 비싼 토지와 농기계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자본가의 잉여는 노동자의 노동에서만 나온다.

가변자본은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할 수 있지만 토지 기계 등 불변자본은 착취할 수 없다.

따라서 이윤율이 낮아져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프로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은 그 기간을 단축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다.

우리가 사는 시장경제는 필요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이다.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예언했다.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꿈의 해석, 무의식이 일으킨 혁명

나는 성 에너지만큼 강한 생명에너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 행동 동기의 근본 원인에는 늘 성 에너지가 연관되어있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한 프로이트 동조자이다.

 

헨리 조지 : 인류는 진보했지만 왜 인류는 아직도 빈곤한가?

왜 도시 노동자들은 시골의 지주보다 더 가난할까?

바로 토지의 독점적 점유 때문이다.

토지를 공유화해서 지주가 지대를 얻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되 순수하게 토지에만 세금을 물리고 그 외의 나머지(건물, 수목, 다양한 시설 등)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토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생산활동이기에 그 이익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토지 공개념과 택지 소유 상한제, 개발이익 환수제, 토지 초과이득세 등이 이 개념에 속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종합부동산세도 이 개념이다.

선진국은 부동산이 전체 자산의 50%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7%에 달한다.

열심히 일해 번 돈을 부동산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니체 : 파괴하라 그리고 창조하라

1879년부터 연금생활을 하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막스 베버도 그랬다.(연금생활자)

낙타는 이상에 대한 경외와 믿음의 단계이다.

신을 믿고 따르는 단계를 말한다.

사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 하고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용기를 말한다.

자유정신, 독립을 말한다.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기에 모든 믿음, 모든 의견은 필연적으로 거짓이라는 통찰만 남게 된다는 허무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진리, 도덕, 종교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삶과 자연은 거짓의 가면을 벗고 도덕의 자살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종교가 붕괴되면서 그것이 언제나 인간의 생산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사자를 통해 짜라투스투라는 종교가 인간의 작품이며 광기라는 것을 폭로하고

너희들과 내가 신을 죽인 살인자들이라고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단계에서 새롭게 창출해야할 것은 가면이 벗겨진 도덕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초극하는 존재,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내는 존재 그가 바로 초인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근본 특징인 권력에 대한, 힘에 대한 의지이다.

허무와 그에 대한 극복을 통해 결국 영원회귀에 이르게 된다.

영원히 회전하는 존재의 쳇바퀴 속에서 모든 것은 사멸하고 동시에 꽃을 피운다.

끊임없는 자기극복 속에 결국 끊임없는 존재의 영원에 이르게 된다.

어느시대에도 그랬듯이 오늘날도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구분된다.

왜냐하면 하루의 2/3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자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레비 스트로스 : 슬픈 열대에 바치는 노래

원주민 사회는 서구와는 다른 종류의 사회일 뿐 미개나 야만의 사회가 아니다.

세상에 더 우월한 사회는 없다.

하지만 문명인이 가져온 인플루엔자로 인해 많은 열대인이 죽고

그로인해 부족 간 전쟁에 시달리며 인원수가 급감하는 슬픈 열대가 되었다.

 

베이컨, 데카르트 : 근대사상

인간의 지식은 곧 인간의 힘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어떤 효과도 낼 수 없다.

우리는 자연에 복종함으로써만 자연을 복종시킬 수 있다.

중세적 사고와의 결별

종족의 우상이란 인간이기에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왜곡된 인식을 말한다.

주변을 마치 인간과 같은 이성적 존재로 인식한다.

동굴의 우상이란 개인의 성향으로 인한 편견을 말한다.

중세의 장원적 사고 즉 우물 안 개구리를 말한다.

시장의 우상이란 언어의 한계로 인해 내재된 편견을 말한다.

언어에 일치하는 대상이 마치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말한다. (용, 여의주, 귀신)

극장의 우상이란 특정인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교황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면 그냥 믿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본유관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선험적 관념을 말한다. (수학적 공리)

외래관념이란 외부 사물에 의해 우리 마음 속에 생기는 관념을 말한다. (소리. 맛, 색감)

인위관념이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 내는 관념이다. (사랑, 열정, 용)

그들로 인해 신이 아닌 이성을 통해 진리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홉스는 왕이 부당한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는 면에서 악마같은 존재이지만 불안한 자연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필요악(리바이어던)으로 보았다.

 

존로크는 人間悟性론을 통해 인간의 오성은 공백의 칠판과 같은 것으로 관념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고 외적 경험으로서의 감각과 내적 경험으로서의 내성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에게 일부의 권력만 양도했을 뿐 자연권과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주지 않았다.

만일 국가 공권력이 우리에게 부여된 천부인권을 침해한다면 이에 저항하여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조직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루소는 낭만주의 운동의 창시자로 모든 가치기준은 공리주의적 이해타산이 아니라 심미적 또는 느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과 예술에 의한 온갖 사치와 게으름은 인간사회를 타락시켰고 이런 허위 문화가 만연할수록 진정한 인간관계는 쇠퇴하니 자연으로 돌아가라.

인간이 사회상태를 경험하면서 점차 사유재산과 신분 등 불평등이 발생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배타적 소유권에 기반한 사유재산에 기인한다.

일반의지란 보통사람들의 사익이 배제된 도덕적 의사,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도덕적으로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국가의 목표는 바로 이 일반의지의 실현이다.

주권의 기초는 국민의 일반의지이고 법이나 정부도 일반의지에서 나온다.

왕정은 일반의지가 아니고 사적의지여서 인정될 수 없다.

 

홉스는 사회계약설을 왕을 위해 만들었지만 로크와 루소에 이르러서는 왕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변모했다.

 

토크빌 : 미국의 민주주의

지적으로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귀족주의자이다.

민주주의를 사랑하지 않는다. (천박한 자유주의에 대한 경종이다.)

 

아담스미스 : 국부란 어디서 오는가?

아담스미스는 국부란 재화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역량이 풍부한 나라를 말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리를 추구하며 이윤동기만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자유방임,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작은 정부 야경국가를 주장한다.

진정한 부의 원천은 바로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분업화된 인간의 노동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 : 국가의 개입

인간의 이기심이 항상 공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적 연역일 뿐 현실세계에서는 허구이다.

개별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들은 공익이라는 선을 이루어내기에는 너무 무지하거나 미약한 존재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자유방임은 종식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우리의 현실은 관념의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이데아의 모사에 불과하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함이란 완전한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사물이다.

사주덕론 : 머리는 지혜롭고 가슴은 용기가 있으며 정욕은 절제될 때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사유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구별하는 기능이라고 보았다.

이를 극대화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덕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진리추구와 명상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 안에는 덕이 존재한다.

중용과 일치하는 품성만이 덕이 될 수 있다.

중용은 양극단을 배제한 중간의 덕이다.

행복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올바른 습관을 갖추며 살아가야 한다.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삶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는 진실성을 강조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남들과 공유하는 중용 그것이 바로 진실성이다. (실천의지)

비겁한 관대함보다 스스로 고귀한 덕을 선택해야 한다.

 

맹자

내집 노인을 공경하듯이 남의집 노인을 공경하고 내 아이를 사랑하듯이 남의 아이를 사랑하면 천하가 내 손바닥위에서 움직인다.

천명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민중에게 있다.

민의에 어긋나면 군주를 토벌할 수 있다. 그것이 혁명이다.

왕과 지배계층에 강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장자

예전에 자기 그림자를 무서워한 사람이 있었다.

그림자를 피해 도망가다가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심장이 터져 죽고 말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 될 것을...

제물의 경지란 대립을 초월한 초 이분법적 경지를 말한다.

변화와 생성의 본질로서의 도를 인식할 수 있는 통찰을 지닌 상태를 말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크고 작음은 현상의 인식에 불과하다.

큰 것도 더 큰 것과 비교하면 작은 것이 된다.

진리도 상대적이다.

앉아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좌망과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심재를 통해 제물의 경지에 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