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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백년을 살다보니(김형석)

by 굼벵이(조용욱) 201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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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노 철학자의 결론이 듣고싶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진리와 얼마만큼 근접한지를 알고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일치했다.

100세 노인은 오로지 사랑만이 삶의 의미고 행복이라고 전한다.

 

분에 넘치는 재산은 고통과 불행을 초래한다.

70대 후반부터 80대가 되면 소유에 대한 욕망도 사라진다.

(이 대목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70대가 되기 전에  모두들 내려놓고 알량한 재산가지고 그만들 싸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릇도 안되면서 더 가지려고 욕심부리다가 쪽박 깨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혼은 사랑의 출발이다.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고독은 자녀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을 안겨주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준다.

인생은 50 전엔 평가해선 안된다.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다. (성경)

쇼펜아우어는 젊을 때는 모두가 자유를 외치다가

늙으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운명론자가 된다는 뜻이다.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라는 인생관이 있다. 

섭리는 자연법칙이나 윤리 도덕에도 없는 제3의 실체이다. 

흑과 백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실존하지 않는다.

중간 회색지대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회색분자를 싫어했다.  

하지만 회색분자를 없애면 실존하는 것은 없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프랑스나 독일의 합리주의보다 경험주의 가치관을 개발했다.

합리주의가 논리적 가치를 추구한데 반해 경험주의는 실리적 가치를 존중하고

합리주의가 이상에 현실을 맞추어간데 반해 경험주의는 현실에서 이념을 거쳐

더 높은 현실을 추구했다.

경험주의는 발이 커지면 신발을 바꾸면 된다고 보는 반면

마르크스 주의는 구두에 발을 맞추어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경험주의자들은 그 기준을 공리주의에 두었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를 창출했고 경제에 있어서는 복지 사회주의를 정착시킨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실용주의 철학과 가치관을 낳았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약으로 치료하는 처음 단계가 있고 주사를 쓰는 다음 단계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수술이다.

그것이 바로 대화, 토론, 투쟁의 순서와 같다.

경험주의에서는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고,

합리주의 사회에서는 토론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는다.

토론은 결론이 있지만 대화는 결론이 없다.

절대주의를 선택하는 마르크스적 사회에서는 투쟁의 방법을 택한다.

인간애는 사랑의 무거운 짐을 담당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아직도 내 인생이 오래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중사는 죽음의 문 앞에 섰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아직 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 최고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은 75세까지 정신적으로는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

건강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젊어서는 용기, 장년기에는 신념이, 노년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무가 높이 자라듯 나이들면 사람도 지혜가 자라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제가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90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 사실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다시 한 번 교단에 설 수 있다면 정성껏 제자들을 위하고 사랑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