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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마지막 리더(2010)

2. 제 1 장 : 무리를 지어 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

by 굼벵이(조용욱) 2017.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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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는 30호가 채 못 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흉물스레 폐허가 된 집은 거의 없다. 사람은 떠나도 더 먼 시골마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다시 정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민이 환갑을 넘은 노인층들이다.
  우리 집 옆에는 마을회관이 있다.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대개 아침식사를 마치면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 둘 이곳 마을회관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할머니들끼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투를 치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만나 즐겁게 노시다가도 가끔은 어르신들끼리 심한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종갓집 맏며느리이신 우리 어머니도 그 안에 계시다.
  우리 어머니는 자기주장이 무척 강하신 분이다. 16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의 일이다. 전통예법에 따라 장례를 다 마쳤는데 어머니는 성당에 가서 장례미사를 다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천주교 신자이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지당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성당에 갈 때 입고 가는 복장이었다. 어머니는 장례식 때 입던 삼베옷과 두건을 쓰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성스러운 장소에 모두들 단정한 옷차림으로 예배를 보러 나오는데 남 보기에도 좀 창피스러우니 그냥 검은색 양복이나 입고 가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게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셨다.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형제들은 결국 수많은 성당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요상한 복장으로 성당에 나타나 장례미사를 드려야 했다.
  성격이 그러시다보니 어머니는 주변의 동네사람들과 의견충돌이 잦은 편이다. 무언가 충돌이 생긴 날이면 집에 오셔서 열을 올리시며 미주알고주알 그날의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 편에 설 것도 없이 그냥 모른 체 하고 지나간다. 그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어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아마도 몇 권의 소설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도 집성촌이다 보니 대부분 친척 간이고 11대 장손 며느리인지라 손아래 동서들이 많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시고 넘어가 주신다. 그분들이 필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시집 와 수십 년을 함께 사시면서 어머니의 성격을 이해하시고 적응해 나가신 덕분일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성격에 맞추어 스스로 자신들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셨을 것이다. 간혹 어머니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신 몇몇 분들은 마지막까지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신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동네사람들은 어머니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게 되셨고 그러기에 요즘은 커다란 불화 없이 대체로 편안하게 지내신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전보다는 덜하지만 지금도 꼿꼿하게 당신의 캐릭터를 지키고 계시다. 이런 우리 어머니 안에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의 삶이 들어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라는 질문을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를 묻는 말이다. 이를 묻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만일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있다면 그의 생각이나 행동의 방향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성격을 알면 자신의 성격과 비교하여 어떻게 하면 상대방과 서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성격이란 단어의 영어 표현 ‘Personality’는 라틴어 ‘페르조나’(Persona)에서 나온 것으로 ‘탈’, 혹은 ‘가면’을 의미한다. 페르조나는 다른 사람에게 겉으로 보여 지는 개인의 모습이나 특징을 뜻한다. 대부분 사회나 학교, 가정, 친구 따위와 같은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이나 의무, 약속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
  물론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감춰져 있는 본래적 ‘자기(Self)’가 가장 중요한 자신의 본질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하지만 가정이든 학교든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자아(Ego)가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들이 축적되어 형성된 페르조나는 표면적으로 개인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두 태어난 시기가 다르고, 사회가 다르며, 가정이 다르고, 양육방식이 다를뿐더러 경험한 세상이 다르다보니 누구나 조금씩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같은 사회 또는 같은 조직 내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좋은 사람’라고 규정하여 잘 지내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여 무리 내에서 많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정된 자신의 현상학적 구조 틀 안에서만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같은 무리 안에서 서로 갈등과 충돌현상을 보이며 때로는 목숨까지도 빼앗는다.

  그렇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 주어도 갈등이나 충돌을 피하면서 각각 자신의 프라이버시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사회가 선진화 될수록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기능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가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보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은 성격조차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채 살아간다. 때로는 알고 있지만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끌어간 리더들 중에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자신의 성격을 바꾼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무리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리더의 리더십은 교과서나 매뉴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리더의 성격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종류의 리더십을 주장하고 설명해 왔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히 주장컨대 리더십은 리더의 성격에서 나오며 그 성격은 스스로 학습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멋진 성품을 지닌 뛰어난 리더로 거듭 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 글을 통해 하나 하나 증명해 나갈 것이다.

  역사의 진화와 더불어 사람의 성격도 진화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회나 학교, 가정에서 요구하는 가치기준들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가치기준이 변하면서 사람의 성격도 변한다. 사람의 성격이 변하면 사람들을 안내하고 이끌어주는 리더의 리더십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진화가 불가능한 변화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마지막 리더가 보이는 리더십은 과연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그 마지막 리더의 모습을 미리 그려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진화의 마지막 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그려보기 위해 먼저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동서양간의 생각의 차이 비교를 통해 알아보고, 생각의 지도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지 그 진화의 방향을 예측해 볼 것이다.

  다음은 세계적인 CEO나 컨설턴트, 학자는 물론 시인이나 소설가, 성직자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시대의 바람직한 리더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에 이어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정신세계의 본질은 무엇인지 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다.

  다음은 리더십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리더십 이론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마지막 장에서는 진화의 끝에 선 마지막 리더의 리더십 특성을 총체적으로 정의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