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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경영의 본질

1. 경영의 현주소

by 굼벵이(조용욱) 201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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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본질

(바른 경영을 위한 인문학적 접근)

조용욱 한국전력 안산지사장 yongwook3@hanmail.net

 

그 하룻밤,

그 책 한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바로 너희들 자신이다.

가장 위대한 작품은 바로 너의 삶 자체,

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네 삶을 만들어라!

- Memento mori !

- Amor fati !

- Carpe diem !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1. 경영의 현주소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이렇게 조선 사람을 평했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곡하려 한다.’

 

한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모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일면 모방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방에 기초한 성장은 진화에 성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에 모방의 한계를 넘어 차별화된 우리만의 창조의 틀을 구축하지 않으면 또다시 붕괴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창조의 틀을 구축하는 과정을 경영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역사의 중심에 언제나 경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사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그동안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 인사권자의 교만을 인사라고 착각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사는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국가가 공기업에 성과연봉제를 확대 적용하라면서 그 유사한 사례조차 찾기 어렵고 논리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성과별 차등임금시스템을 만들어 경영평가나 예산편성지침 등을 통해 도입을 강하게 권유해 왔었다. 사람은 물론 문화와 환경이 기관별로 각각 다르고 생산하는 재화나 용역의 종류와 질이 다른데 국가가 획일적인 성과별 차등 임금 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기관에 확산시키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름지기 모든 창조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획일적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한다. 지금까지 획일적 시스템을 주장해 왔던 모든 나라나 회사가 예외 없이 붕괴했다. 분단 초기 우리보다 잘 살았던 북한의 예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신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를 노사 간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우리만의 고유한 올바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롭고 돌연변이적인(Innovative) 시스템의 퀀텀점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각각의 기업이 자신의 조직문화에 맞도록 특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최적화된 우리 고유의 시스템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인류의 모든 지혜를 망라한 인문학적 조명을 통해 경영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영의 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한국적 경영 연구의 사명

한국적 경영을 고찰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고유하게 있어왔던 그럴듯한 경영 시스템을 찾아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을 뿐 영토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타국을 지배할 정도로 위세를 떨친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연유로 진화를 가져왔다고 내세울만한 경영 시스템을 역사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설령 찾는다 해도 앞으로 우리 역사의 진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잘나가는 몇몇 국가나 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모델로 한국적 경영을 논할 수도 없다. 최근 수 십 년간 우리 기업의 경영 시스템은 외국의 온갖 경영이론의 실습장이 되어왔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제 치하에 그 근원을 둔 일본식 경영 시스템이 1980년대까지 주를 이루었다가 1990년대 이후 물밀듯이 미국 중심의 경영 시스템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미국식 경영 시스템은 한국적 정서나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제도나 시스템은 사람의 의식구조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제도로서 정착하기 어렵다. 서구인은 범주화, 개념화에 능한 생각지도를 지니고 있는 반면 한국인은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관계중심의 생각지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영관리 방식도 다르게 적용되어야 올바르게 성과와 연결된다.

그러면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어떤지 들여다보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과연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적합한 경영 체계를 운용하고 있는지 알아본 후 최근 미국기업들의 움직임과 한국 정부가 과거에 핵심과제로 추진해 왔던 성과연봉제에 대하여 알아보며 문제점을 진단하고 올바른 경영의 진로를 모색해 보자.

 

  2) 요즘 한국 사람들

요즘의 한국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세대가 혼재되어 심한 소용돌이 속에서 다이내믹하게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세대는 삼십년을 주기로 교체된다고 한다. 나이가 오십대인 사람들은 1960년대 이후의 환경 속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의식을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50대인 사람들의 근간에는 80여 년 전인 1930년대 의식이 부모를 통해 대를 이어 내려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50대들은 대부분 유교적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관계 중심적, 가부장적 장유유서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싸울 때도 대부분 나이를 들먹이며 우위를 점하려 하고 또 그게 통하는 연령대다. 따라서 하극상이나 절대적 평등 따위를 매우 힘들어 한다. 그런 50대 직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미국식 성과급제를 적용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성과급제는 개념화 범주화에 능한 서구인이 그들의 의식구조에 적합하게 만들어낸 임금관리 시스템이다. 개인의 경력이나 지위 따위와 상관없이 얼마짜리 직무(직무 값)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직무를 수행한 결과 값 등급(성과 값)이 몇 등급이냐에 따라서 급여를 책정한다.

불만이 있더라도 감내하면서 지금까지 동양문화(일본식)의 임금제도 기반 아래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서양식 기준을 들이대며 50대 직원에게 당신은 금년에 얼마짜리 직무에서 얼마치 일했으니 그만큼만 준다고 하면서 한참 후배보다도 적은 연봉을 준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내가 젊었을 땐 회사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하루 평균 서너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회사를 위해 죽도록 일했다. 봉급은 쥐꼬리만큼 밖에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힘없고 능력이 좀 떨어질 때 보답을 받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군말 안하고 지금껏 회사를 위해 헌신해 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공은 팽개치고 새까만 후배보다 적은 연봉을 받으라고? 그렇다면 내 젊은 시절에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건데?” 

하면서 그동안 몸 바쳐 사랑해 왔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분하고 억울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2~30대의 젊은이는 생각이 다르다. 해방과 전쟁을 겪지 않은 50년대 이후의 의식을 가진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의식이 형성되었고 미국문화가 이미 깊숙이 침투한 2000년대 환경에서 자랐으며 직접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의식 속엔 상당부분 미국적 생각지도가 들어있다. 따라서 50대 와는 달리 관계중심의 집단주의적 사고보다는 너와 내가 각각 개념적으로 분리되는 개인주의적 사고체계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근속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나보다 적게 성과를 낸 선배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자유와 평등이고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므로 누가 뭐라던 하는 일의 종류와 성과가 임금지급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다행히 잘 나가서 정년까지 승승장구 한다면 문제가 없다. 또 성과 평가 시스템이 완벽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들도 나이 들면서 직무수행 능력이나 성과에 기복이 생기게 마련이다. 만일 그들이 나이 들고 50대가 되어 성과 창출이 부진하고 성과 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잘 나갈 때만큼 신뢰할 수 없다면 그 때에도 과연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후배보다 적은 임금에 만족할까? 그건 아마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2~30대는 절대 30년 후의 자신에게 닥칠 미래 때문에 오늘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수명이 길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좋은 회사들은 대부분 이런 두 가지 상반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 보상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요즘 한국 회사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좋은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패밀리’라는 집단의식이나 소속감이 무척 강하다. 이러한 연대의식과 주인의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런 회사들은 임금지급 기준도 단순히 성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반드시 투 트랙을 유지한다. 내 식구가 모두 회사를 믿고 정년까지 회사에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정년제 고용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적어도 기본급은 입사에서 정년까지 라이프 사이클에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성과에 따라 년 단위(Annual Base)로 성과급을 차등지급함으로써 충성(Loyalty)과 성과(Performance)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들의 성향이나 조직 문화 그리고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경영의 본질 등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성찰 없이 단지 일본에서 성공했었던 제도니까, 미국에서 성공했었던 제도니까 당연히 자신에게도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무차별적으로 외국의 경영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 경영이론의 경연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우리나라 경영학자들의 목소리도 컸다.

그동안 정부가 국가 사회에 주도해온 경영 관련 각종 정책의 변화를 되돌아보더라도 그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개혁이나 혁신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정부가 서로 상반된 정책들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IMF 시기에 정부는 경제 불황의 원인 중 하나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따라서 미국처럼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인력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보고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대규모 인력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을 활용하여 정규직 근로자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로 신분을 바꾸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 정권이 바뀌자 다음 정권은 비정규직, 임시직 근로자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덕분에 많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정년제 근로자로 다시 바뀌었다.

요즘 일본이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으로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이어 전쟁까지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을 분수령으로 이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 생각지도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경영 시스템을 설계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원 간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의식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요즘 미국 회사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따르면 2015년 초 기준으로 최소 150만 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글로벌 기업 30곳이 A,B,C등급 고과 시스템을 없앴다고 한다. 회사 간부와 평직원 사이의 지속적이고도 실속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요한 리더십』의 저자 데이비드 록은 2011년부터 ‘왜 인사고과 평가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지는지’에 대해 분석해 왔다. 록에 따르면 'A·B·C등급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직원들의 동기 부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위협과 보상은 개인의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인사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70%는 현재 다른 고과 평가 제도를 도입하거나 평가 제도의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록은 “왜 근무 평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근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 예전 같으면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목표’, ‘12개월 치 목표’ 등을 세웠겠지만, 요즘엔 그와 같은 목표를 세우려야 세울 수가 없다. 직원의 1년, 1개월, 1주 목표를 세우거나, 이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측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많은 직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업무에 관여하고 있고 다양한 TF에 속해 있다. 1년에 한 번씩 등급을 매기는 게 무의미한 21세기 근무 환경이다.

② A등급 놓고 경쟁, 협업 저해 = 등급 평가제도는 협업을 경시하게 만든다. 훌륭한 실적을 내고 있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직원 10명 중 A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명 혹은 2명이다. 결국 사람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고 협업에 실패하게 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등급 평가 제도를 없애자마자 직원들의 협업하는 비율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③ 직원들의 능력과 사기를 북돋워야 한다. = 젊은 세대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15∼35세 젊은 층)’는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 1년에 한두 번 매기는 평가 제도를 없앰으로써 회사 간부들은 평직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과거의 실적에 대한 평가에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 직원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클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 결국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직원을 알파벳이나 숫자가 아닌, 개개인의 사람으로 대하는 접근법만이 통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지적한다.

[출처: 중앙일보, 세계적 기업들이 A·B·C 등급 인사고과 제도를 없애는 까닭(2015.12.16)]

우리는 A,B,C 3단계평가 마저 버린 미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협업을 방해하는 평가 제도를 없애고 직원들의 능력과 사기를 북돋우며 소통하고 협업하여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의성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몇몇 기업이 시험 삼아 그러려니 하고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이 그렇게 바꾼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찾아보자.

 

  5) 정부가 해야 할 역할

한국정부는 얼마 전까지 노조와 심각한 갈등을 보이며 모든 공기업에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강도 높게 지시했었다. 성과연봉제란 성과급 제도와 연봉제를 합한 말이다. 즉 연봉 단위로 계약을 맺되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하지만 성과급 제도와 연봉 제도는 전혀 다른 범주의 개념이어서 함께 쓸 수 없는 단어다.

임금시스템의 전통적인 기본구조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차등지급 하는 직무급과 일의 결과 즉 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성과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봉제는 주로 직무급과 관련이 있다. 연봉계약은 다가올 미래 1년에 대한 고용계약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수행하게 될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미래보상 개념) 전년도에 달성한 성과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성과급(과거보상 개념)과는 시점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성과는 일의 결과이다. 성과 즉 업무수행 결과가 좋으면 더 많은 보상을 주고 나쁘면 불이익 처분을 한다는 것이 성과급제도의 근간이다. 따라서 성과급은 과거에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한 보상과 처벌이다. 보상과 처벌은 행동심리학의 고전적 학습 원리에 착안하여 만든 동기부여 방식 중 하나다. 따라서 그해에 창출한 성과에 대하여 그해에 보상 또는 처벌로 끝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더 이상 동기부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고전적 동기부여 이론은 전두엽이 없는 개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일 뿐 전두엽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에게는 그리 바람직한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는 성과연봉제의 효과를 최대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매년 성과평가 결과를 직무급에 해당하는 기본급에 반영시켰다. 직무 값으로 설계해야 할 기본급을 성과 값으로 바꾼 것이다. 직무가 같으면 같은 기본급을 받아야 하는데 같은 일을 하면서 성과에 따라 다양한 기본급을 받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나아가 특정년도의 잘잘못(성과평가 결과)이 퇴직할 때까지 누적적으로 기준임금에 반영되는 모순까지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 특성상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성과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따라서 신뢰하기 어려운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기준임금까지 왜곡하여 퇴직 시까지 공정하지 못한 처우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공기업 노동조합이 그토록 심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연봉제는 연 단위로 연봉계약을 맺는 근로계약 방식의 일종이다. 그래서 의미상 정년제와 서로 비교되는 개념이며 1년 단위로 협상에 의해 임금은 물론 채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연봉제를 운영한다고 하면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사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연봉제는 운동선수처럼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년 단위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으며 년 단위 고용계약이 적합한 직무에 대하여 주로 단기적 성과향상을 위해 운용된다. 미국의 CEO들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며 재임기간 중 기업 가치를 최대한 높이려 하는 이유도 연봉제 계약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에는 연봉제에 적합한 직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직무가 더 지배적이며 중요한 경우가 많다. 각종 새로운 연구나 개발, 전략, 기획, 장기 프로젝트 등은 수년, 수 십 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며 그 결과가 기업의 사활을 결정한다. 이와 같이 기업이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를 더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진화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조직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 조직 내 경쟁보다는 조직 내 서로 다른 직무 간 협업과 통섭을 통해 혁신의 퀀텀점프를 이어가며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도모해야 한다. 경쟁과 자연선택은 진화를 위한 필수 개념이지만 잘못 적용하면 오히려 도태의 나락으로 이어지는 첩경이다. 모든 유기체는 경쟁이 아니라 각 세포 간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쟁을 맹신해 왔던 이유는 우리 몸속에 내재한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우월욕망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경쟁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고 경쟁에 패배한 대안들을 가차 없이 멸종시킨다. 경쟁은 협업과 통섭을 해치고 이종교배를 통한 돌연변이적 진화를 방해한다. 하지만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돌연변이적 진화가 진짜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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