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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경영의 본질

경영의 본질(바른 경영을 위한 인문학적 접근)

by 굼벵이(조용욱) 201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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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본질

(바른 경영을 위한 인문학적 접근)

조용욱 한국전력 안산지사장 yongwook3@hanmail.net

<필자소개>

조용욱 한국전력 안산지사장 yongwook3@hanmail.net.

필자는 84년 2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여 25년간 인사실무에 종사한 인사전문가로 인간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Drive)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리더십에 접목시킴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 자기를 완성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한국형 인사조직 연구회’, ‘21C 비지니스 포럼’ 회원. 저서로는 ‘영혼까지 일터에 묻게 하라’(2008)와 ‘진화의 끝에 선 마지막 리더’(2010)가 있다.

 

<본문요약>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모방에 의한 성장에 의존해 왔을 뿐 차별화된 우리만의 성장전략이 없었다. 그러나 모방에 의한 성장은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롭고 돌연변이적인(Innovative) 경영의 틀(Frame)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역사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진화를 가져온 핵심인자가 무엇인지 부터 알아내야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니체의 견해 그리고 대국굴기 등을 통해 살펴본 역사적 사실과, 철학, 심리학 및 진화심리학 등의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 세계사의 획을 긋는 대 전환의 계기는 항상 ‘창의적 아이디어’였고 창의적 아이디어의 모태는 우월욕망, 자유, 평등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경영의 개념을 단순한 사람관리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관리’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야 하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은 아래와 같음을 제언한다.

1. 경영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2. 진화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진화할 수 없다.

3. 경영시스템 전반을 완전히 정 반대로 뒤집어야 한다.

4. 더 진화된 상품의 개발(창의적 아이디어)이 경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5.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6. 우월욕망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특히 평등개념에 주목하라.

7. 개인 간 경쟁을 유발하는 모든 시스템은 과감히 버려라.

8. 개인평가는 버리되 꼭 필요하다면 3단계를 넘기지 마라.

9. 오로지 융합만이 퀀텀점프를 부른다.

10. ‘사랑’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모든 것을 융합하라.

11. 사랑의 그릇 크기로 사람을 관리하라.

 

 

 

 

 

 

 

경영의 본질

(바른 경영을 위한 인문학적 접근)

조용욱 한국전력 안산지사장 yongwook3@hanmail.net

 

그 하룻밤,

그 책 한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바로 너희들 자신이다.

가장 위대한 작품은 바로 너의 삶 자체,

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네 삶을 만들어라!

- Memento mori !

- Amor fati !

- Carpe diem !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1. 경영의 현주소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이렇게 조선 사람을 평했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곡하려 한다.’

 

한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모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일면 모방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방에 기초한 성장은 진화에 성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에 모방의 한계를 넘어 차별화된 우리만의 창조의 틀을 구축하지 않으면 또다시 붕괴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창조의 틀을 구축하는 과정을 경영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역사의 중심에 언제나 경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사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그동안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 인사권자의 교만을 인사라고 착각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사는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국가가 공기업에 성과연봉제를 확대 적용하라면서 그 유사한 사례조차 찾기 어렵고 논리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성과별 차등임금시스템을 만들어 경영평가나 예산편성지침 등을 통해 도입을 강하게 권유해 왔었다. 사람은 물론 문화와 환경이 기관별로 각각 다르고 생산하는 재화나 용역의 종류와 질이 다른데 국가가 획일적인 성과별 차등 임금 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기관에 확산시키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름지기 모든 창조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획일적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한다. 지금까지 획일적 시스템을 주장해 왔던 모든 나라나 회사가 예외 없이 붕괴했다. 분단 초기 우리보다 잘 살았던 북한의 예를 보더라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신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를 노사 간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우리만의 고유한 올바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롭고 돌연변이적인(Innovative) 시스템의 퀀텀점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각각의 기업이 자신의 조직문화에 맞도록 특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최적화된 우리 고유의 시스템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인류의 모든 지혜를 망라한 인문학적 조명을 통해 경영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영의 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한국적 경영 연구의 사명

한국적 경영을 고찰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고유하게 있어왔던 그럴듯한 경영 시스템을 찾아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을 뿐 영토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타국을 지배할 정도로 위세를 떨친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연유로 진화를 가져왔다고 내세울만한 경영 시스템을 역사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설령 찾는다 해도 앞으로 우리 역사의 진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잘나가는 몇몇 국가나 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모델로 한국적 경영을 논할 수도 없다. 최근 수 십 년간 우리 기업의 경영 시스템은 외국의 온갖 경영이론의 실습장이 되어왔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제 치하에 그 근원을 둔 일본식 경영 시스템이 1980년대까지 주를 이루었다가 1990년대 이후 물밀듯이 미국 중심의 경영 시스템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미국식 경영 시스템은 한국적 정서나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제도나 시스템은 사람의 의식구조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제도로서 정착하기 어렵다. 서구인은 범주화, 개념화에 능한 생각지도를 지니고 있는 반면 한국인은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관계중심의 생각지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영관리 방식도 다르게 적용되어야 올바르게 성과와 연결된다.

그러면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어떤지 들여다보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과연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적합한 경영 체계를 운용하고 있는지 알아본 후 최근 미국기업들의 움직임과 한국 정부가 과거에 핵심과제로 추진해 왔던 성과연봉제에 대하여 알아보며 문제점을 진단하고 올바른 경영의 진로를 모색해 보자.

 

  2) 요즘 한국 사람들

요즘의 한국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세대가 혼재되어 심한 소용돌이 속에서 다이내믹하게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세대는 삼십년을 주기로 교체된다고 한다. 나이가 오십대인 사람들은 1960년대 이후의 환경 속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의식을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50대인 사람들의 근간에는 80여 년 전인 1930년대 의식이 부모를 통해 대를 이어 내려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50대들은 대부분 유교적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관계 중심적, 가부장적 장유유서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싸울 때도 대부분 나이를 들먹이며 우위를 점하려 하고 또 그게 통하는 연령대다. 따라서 하극상이나 절대적 평등 따위를 매우 힘들어 한다. 그런 50대 직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미국식 성과급제를 적용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성과급제는 개념화 범주화에 능한 서구인이 그들의 의식구조에 적합하게 만들어낸 임금관리 시스템이다. 개인의 경력이나 지위 따위와 상관없이 얼마짜리 직무(직무 값)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직무를 수행한 결과 값 등급(성과 값)이 몇 등급이냐에 따라서 급여를 책정한다.

불만이 있더라도 감내하면서 지금까지 동양문화(일본식)의 임금제도 기반 아래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서양식 기준을 들이대며 50대 직원에게 당신은 금년에 얼마짜리 직무에서 얼마치 일했으니 그만큼만 준다고 하면서 한참 후배보다도 적은 연봉을 준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내가 젊었을 땐 회사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하루 평균 서너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회사를 위해 죽도록 일했다. 봉급은 쥐꼬리만큼 밖에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힘없고 능력이 좀 떨어질 때 보답을 받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군말 안하고 지금껏 회사를 위해 헌신해 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공은 팽개치고 새까만 후배보다 적은 연봉을 받으라고? 그렇다면 내 젊은 시절에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건데?” 

하면서 그동안 몸 바쳐 사랑해 왔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분하고 억울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2~30대의 젊은이는 생각이 다르다. 해방과 전쟁을 겪지 않은 50년대 이후의 의식을 가진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의식이 형성되었고 미국문화가 이미 깊숙이 침투한 2000년대 환경에서 자랐으며 직접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의식 속엔 상당부분 미국적 생각지도가 들어있다. 따라서 50대 와는 달리 관계중심의 집단주의적 사고보다는 너와 내가 각각 개념적으로 분리되는 개인주의적 사고체계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근속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나보다 적게 성과를 낸 선배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자유와 평등이고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므로 누가 뭐라던 하는 일의 종류와 성과가 임금지급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다행히 잘 나가서 정년까지 승승장구 한다면 문제가 없다. 또 성과 평가 시스템이 완벽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들도 나이 들면서 직무수행 능력이나 성과에 기복이 생기게 마련이다. 만일 그들이 나이 들고 50대가 되어 성과 창출이 부진하고 성과 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잘 나갈 때만큼 신뢰할 수 없다면 그 때에도 과연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후배보다 적은 임금에 만족할까? 그건 아마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2~30대는 절대 30년 후의 자신에게 닥칠 미래 때문에 오늘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수명이 길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좋은 회사들은 대부분 이런 두 가지 상반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 보상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요즘 한국 회사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좋은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패밀리’라는 집단의식이나 소속감이 무척 강하다. 이러한 연대의식과 주인의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런 회사들은 임금지급 기준도 단순히 성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반드시 투 트랙을 유지한다. 내 식구가 모두 회사를 믿고 정년까지 회사에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정년제 고용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적어도 기본급은 입사에서 정년까지 라이프 사이클에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성과에 따라 년 단위(Annual Base)로 성과급을 차등지급함으로써 충성(Loyalty)과 성과(Performance)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들의 성향이나 조직 문화 그리고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경영의 본질 등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성찰 없이 단지 일본에서 성공했었던 제도니까, 미국에서 성공했었던 제도니까 당연히 자신에게도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무차별적으로 외국의 경영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 경영이론의 경연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우리나라 경영학자들의 목소리도 컸다.

그동안 정부가 국가 사회에 주도해온 경영 관련 각종 정책의 변화를 되돌아보더라도 그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개혁이나 혁신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정부가 서로 상반된 정책들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IMF 시기에 정부는 경제 불황의 원인 중 하나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따라서 미국처럼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인력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보고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대규모 인력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을 활용하여 정규직 근로자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로 신분을 바꾸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 정권이 바뀌자 다음 정권은 비정규직, 임시직 근로자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덕분에 많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정년제 근로자로 다시 바뀌었다.

요즘 일본이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으로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이어 전쟁까지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을 분수령으로 이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 생각지도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경영 시스템을 설계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원 간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의식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요즘 미국 회사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따르면 2015년 초 기준으로 최소 150만 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글로벌 기업 30곳이 A,B,C등급 고과 시스템을 없앴다고 한다. 회사 간부와 평직원 사이의 지속적이고도 실속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요한 리더십』의 저자 데이비드 록은 2011년부터 ‘왜 인사고과 평가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지는지’에 대해 분석해 왔다. 록에 따르면 'A·B·C등급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직원들의 동기 부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위협과 보상은 개인의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인사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70%는 현재 다른 고과 평가 제도를 도입하거나 평가 제도의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록은 “왜 근무 평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근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 예전 같으면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목표’, ‘12개월 치 목표’ 등을 세웠겠지만, 요즘엔 그와 같은 목표를 세우려야 세울 수가 없다. 직원의 1년, 1개월, 1주 목표를 세우거나, 이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측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많은 직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업무에 관여하고 있고 다양한 TF에 속해 있다. 1년에 한 번씩 등급을 매기는 게 무의미한 21세기 근무 환경이다.

② A등급 놓고 경쟁, 협업 저해 = 등급 평가제도는 협업을 경시하게 만든다. 훌륭한 실적을 내고 있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직원 10명 중 A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명 혹은 2명이다. 결국 사람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고 협업에 실패하게 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등급 평가 제도를 없애자마자 직원들의 협업하는 비율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③ 직원들의 능력과 사기를 북돋워야 한다. = 젊은 세대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15∼35세 젊은 층)’는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 1년에 한두 번 매기는 평가 제도를 없앰으로써 회사 간부들은 평직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과거의 실적에 대한 평가에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 직원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클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 결국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직원을 알파벳이나 숫자가 아닌, 개개인의 사람으로 대하는 접근법만이 통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지적한다.

[출처: 중앙일보, 세계적 기업들이 A·B·C 등급 인사고과 제도를 없애는 까닭(2015.12.16)]

우리는 A,B,C 3단계평가 마저 버린 미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협업을 방해하는 평가 제도를 없애고 직원들의 능력과 사기를 북돋우며 소통하고 협업하여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의성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몇몇 기업이 시험 삼아 그러려니 하고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이 그렇게 바꾼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찾아보자.

 

  5) 정부가 해야 할 역할

한국정부는 얼마 전까지 노조와 심각한 갈등을 보이며 모든 공기업에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강도 높게 지시했었다. 성과연봉제란 성과급 제도와 연봉제를 합한 말이다. 즉 연봉 단위로 계약을 맺되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지급하겠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하지만 성과급 제도와 연봉 제도는 전혀 다른 범주의 개념이어서 함께 쓸 수 없는 단어다.

임금시스템의 전통적인 기본구조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차등지급 하는 직무급과 일의 결과 즉 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성과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봉제는 주로 직무급과 관련이 있다. 연봉계약은 다가올 미래 1년에 대한 고용계약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수행하게 될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미래보상 개념) 전년도에 달성한 성과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성과급(과거보상 개념)과는 시점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성과는 일의 결과이다. 성과 즉 업무수행 결과가 좋으면 더 많은 보상을 주고 나쁘면 불이익 처분을 한다는 것이 성과급제도의 근간이다. 따라서 성과급은 과거에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한 보상과 처벌이다. 보상과 처벌은 행동심리학의 고전적 학습 원리에 착안하여 만든 동기부여 방식 중 하나다. 따라서 그해에 창출한 성과에 대하여 그해에 보상 또는 처벌로 끝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더 이상 동기부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고전적 동기부여 이론은 전두엽이 없는 개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일 뿐 전두엽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에게는 그리 바람직한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는 성과연봉제의 효과를 최대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매년 성과평가 결과를 직무급에 해당하는 기본급에 반영시켰다. 직무 값으로 설계해야 할 기본급을 성과 값으로 바꾼 것이다. 직무가 같으면 같은 기본급을 받아야 하는데 같은 일을 하면서 성과에 따라 다양한 기본급을 받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나아가 특정년도의 잘잘못(성과평가 결과)이 퇴직할 때까지 누적적으로 기준임금에 반영되는 모순까지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 특성상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성과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따라서 신뢰하기 어려운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기준임금까지 왜곡하여 퇴직 시까지 공정하지 못한 처우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공기업 노동조합이 그토록 심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연봉제는 연 단위로 연봉계약을 맺는 근로계약 방식의 일종이다. 그래서 의미상 정년제와 서로 비교되는 개념이며 1년 단위로 협상에 의해 임금은 물론 채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연봉제를 운영한다고 하면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사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연봉제는 운동선수처럼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년 단위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으며 년 단위 고용계약이 적합한 직무에 대하여 주로 단기적 성과향상을 위해 운용된다. 미국의 CEO들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며 재임기간 중 기업 가치를 최대한 높이려 하는 이유도 연봉제 계약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에는 연봉제에 적합한 직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직무가 더 지배적이며 중요한 경우가 많다. 각종 새로운 연구나 개발, 전략, 기획, 장기 프로젝트 등은 수년, 수 십 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며 그 결과가 기업의 사활을 결정한다. 이와 같이 기업이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를 더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진화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조직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 조직 내 경쟁보다는 조직 내 서로 다른 직무 간 협업과 통섭을 통해 혁신의 퀀텀점프를 이어가며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도모해야 한다. 경쟁과 자연선택은 진화를 위한 필수 개념이지만 잘못 적용하면 오히려 도태의 나락으로 이어지는 첩경이다. 모든 유기체는 경쟁이 아니라 각 세포 간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쟁을 맹신해 왔던 이유는 우리 몸속에 내재한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우월욕망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경쟁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고 경쟁에 패배한 대안들을 가차 없이 멸종시킨다. 경쟁은 협업과 통섭을 해치고 이종교배를 통한 돌연변이적 진화를 방해한다. 하지만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돌연변이적 진화가 진짜 진화다.

 

 

2. 경영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성과는 누가 어떻게 내나?

    가) P = ACE

성과(Performance)는 어떤 방향(Alignment)으로 조직구성원의 능력(Capability)을 얼마만큼 몰입(Engagement)시키는가에 달렸다. 올바른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잠재능력까지 끌어내어 몰입할 때에만 진화를 위한 퀀텀점프가 가능하다. 진화할 수 없는 기업은 자연도태 될 수밖에 없다.

십여년 전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s Management : 미국 인사관리협회)에서 주최한 Annual Conference에 참석해 어느 전문가로부터 귀동냥한 바에 의하면 직원의 24% 정도만 자신의 일에 어느 정도 몰입할 뿐 76%는 마지못해 시키는 일만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개미사회든 인간사회든 20:80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자연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인 법칙이 존재한다. 이른바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의 근간에는 진화의 원리가 있고 진화는 무한경쟁과 자연선택 그리고 돌연변이를 기반으로 한다. 한여름 잠 못 자게 울어대는 매미는 힘찬 목소리로 자신의 우월성을 경쟁한다. 공작새는 꼬리털의 아름다움으로 경쟁한다. 아름다운 꽃들은 모두 화려함으로 경쟁한다. 힘 센 사자는 앞 발 주먹과 이빨의 세기로 경쟁한다. 이렇게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워 이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한다. 암컷과 수컷을 나누어 유성생식 이종교배 하도록 한 것은 무성생식보다 더 잘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루저들은 반복되는 패배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도전을 포기하고 결국 쓸쓸하게 스스로 자연도태 된다. 자연은 그렇게 DNA에 새겨진 명령에 따라 무자비하게 진화를 이어간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파충류 시절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했던 생각과 행동양식들은 뇌간에, 포유류 시절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했던 생각과 행동양식들은 변연계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 300만년 중 299만년은 영장류의 생활방식으로 살아왔고 고작 1만년 동안 대뇌를 발달시키며 인간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DNA는 99.66%가 구석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 DNA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인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기에 특별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파충류 시절에 만들어진 DNA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인간이 1만년 동안 발달시켜온 대뇌를 통해 충분히 그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방금 설명한 SHRM 전문가의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개미나 베짱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24%의 개미 직원이 76%의 베짱이 직원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발상을 통해 경영의 기본 틀을 뒤집을 수 있다. 베짱이는 변함없이 그대로 놓아둔 채 24%의 일꾼 개미들만 신상필벌로 죽도록 경쟁시켜 불행한 최후를 맞게 할 것이 아니라 76%의 베짱이 직원들을 일깨워 스스로 일터에 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경영의 본질은 일에 끌려 다니는 절대다수의 베짱이들을 일을 끌고 가는 개미로 바꾸는데 있다. DNA에 새겨진 유전자 명령에 따라 개미들만 죽도록 경쟁하다 비참하게 사라지도록 할 것이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이종교배의 돌연변이에 집중해야 한다. 진화는 화합과 통섭을 기초로 이종교배에 의해 창출된 돌연변이 변종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나) 툰드라 레밍 들쥐 떼

레밍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며, 우리말로는 ‘나그네 쥐’라고 한다. 일반 쥐와 마찬가지로 번식력이 강한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불어날 경우 불편을 겪던 한 놈이 갑자기 뛰어 달아나면 집단적으로 무작정 따라 뛰기 시작해 결국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바다·호수에 빠져 ‘집단자살’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도 어찌 보면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과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매춘부를 그렸다. 리용의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노엘이 화려한 밤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상경한 것도 일면 그런 이유다. 무일푼 상경녀가 어떻게든 상류사회의 유행을 쫓아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하나밖에 없는 자산, 즉 몸을 파는 일 밖에 없었을 것이다. 들로 산으로 사냥 나갔다가 돌아온 원시인 총각에게 몸을 내주고 고기 덩어리를 구했던 원시인 처녀의 유전자가 그녀를 그렇게 인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내 놓으며 전광판을 물들인다. 가엾은 노엘은 불나비처럼 계속 신상(새로운 상품)에 달려들며 몸을 팔다 결국 매음굴에서 허망하게 죽어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노엘들이 집어등에 몰려드는 오징어나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밍 들쥐 떼나 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진화의 초기단계에 입력된 DNA가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뇌간이나 변연계에서 지시하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76%가 아직도 노엘이나 들쥐처럼 행동하기에 경영의 바른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 미자하의 복숭아

고대 로마시절에도 미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지배계층이 많았는데 중국에도 과거에 그런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전국시대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왕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는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죄를 물어야 하지만 사랑에 빠진 영공은 죄를 묻는 대신

“어미가 걱정돼 벌도 잊을 정도이니 참으로 효자다”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은 미자하가 과수원을 거닐다 복숭아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맛이 괜찮아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내밀었다. 불충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영공은 이를 받아 맛나게 먹으며

“얼마나 나를 생각했으면 자신이 먹던 복숭아까지 주겠는가!”

라며 미자하를 칭찬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나이가 들자 미자하의 아름다움도 퇴색했고 따라서 왕의 사랑도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죄를 저지르자 사랑을 잃은 영공은 크게 노하며

“저놈이 예전엔 허락도 없이 내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가고, 제가 먹다 남은 더러운 복숭아까지 내게 주었다”

라며 벌을 내렸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한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판단하는 기준이 이처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렇듯 인간은 이성이 앞서는 것 같지만 언제나 감성 즉 직관이 앞선다. 이성은 감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앞 뇌 즉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불을 발견하고 부드러운 화식을 시작한 호모일렉투스 시절부터라고 한다. 그러니 잘해야 1만년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전두엽에서 보내는 생각보다 이전 299만년 동안 살아온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변연계, 간뇌)에서 나오는 생각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전두엽에서 내보내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변연계나 뇌간에서 내보내는 직관이 생각할 틈도 없이 앞선다. 직관은 자동적으로 거의 일 순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은 90%가 이기적-독립적인 성향을 띄며 10% 정도만이 이타적-협력적 성향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2) 과학적 인사관리가 가능할까?

기업경영의 핵심은 인사관리 즉 사람관리다. 모든 기업 활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과를 창출하게 하고 그 성과가 결과적으로는 기업 활동의 최종 목적인 이윤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인사관리는 대체로 채용에서 배치 및 보직(이동), 교육, 평가와 보상, 퇴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유지하며 개발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과정을 과학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에 관한 한 그 어느 과정이든 완벽하게 과학적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우선 채용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국가직무역량표준(NCS) 등 여러 가지 과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요리 조리 재어가며 최적의 인물을 골라낸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면접자가 피면접자를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 채용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면접자 안에 완벽한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평가도구를 적용해서 과학적으로 성과와 역량을 평가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라서 완벽하게 과학적일 수 없다.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절대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지 못하다. 이는 99%가 직관적이라는 특징 외에도 사람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의식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미자하의 복숭아처럼 시간과 공간 또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에 상응한 보상을 해 줌으로서 직원들의 성취동기를 유발하겠다고 하면서 BSC, MBO 등 미국의 여러 가지 과학적 도구를 도입하여 운영하는 회사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이고 공정한 제도를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평가의 본질로 들어가면 절대 과학적이라거나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평가행위 자체가 평가자의 직관에 의한 주관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가자의 주관이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평가를 할 때 대부분 평가자 자신의 직관이 만든 기준에 따라 먼저 피 평가자를 줄 세우고 회사가 정해준 과학적 평가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고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자하의 복숭아가 만든 여도지죄는 전국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늘 우리네 일상을 지배한다. 인간은 늘 이성을 주장하지만 언제나 이성보다 직관이 앞선다.

 

   3) 평가, 그 어리석음의 극치

일반적으로 90%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상위 10%이상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니 차등보상은 잘해야 상위 10%만 만족시킬 뿐 이를 벗어난 80%이상이 불만족할 수밖에 없다. 휴렛패커드는 자사 보상제도 개선 사례에서 차등보상 프로그램이 조직에 긍정적 효과보다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하면서 이런 증거를 무시하는 경영자 하나가 수 십 년간 지켜온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순식간에 망쳐버리기 쉬우므로 만일 이미 성과평가를 통한 차등보상을 운영 중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 제도를 뜯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경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평가를 통한 차등보상은 A급 우수성과자의 성과를 더 높이지 못한다. C급 저성과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절대다수인 B급 중간성과자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갖게 된다는 마태효과만 커진다. 결국 A급이든, B급이든, C급이든, 모두에게 보다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평가를 통해 차등보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평가의 객관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면 차라리 절대평가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지금껏 많은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들, 인사담당자들이 수 십 년간 노력했음에도 객관적 평가지표를 찾아야 한다는 외침은 그치질 않는다. 그 이유는 객관적 평가지표를 발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평가지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가자가 최대한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 하여 직원을 평가했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는 자신감 착각과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자신감 착각이 더 크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는 평가점수를 낮게 받은 직원들의 마음속에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불만만 자라나게 한다. [‘착각하는 CEO’(유정식) 인용]

 

   4) 인간은 마음이 만든 종합예술

사람은 본디 마음(의식)이 만들어 낸 종합 예술(Art)이다. 주로 직관이나 정서 등에 의존하는 ‘예술’은 객관이나 인식 등에 의존하는 ‘과학‘(Science)과 많이 다르다. 마음이란 자신 만의 경험과 학습 등이 만들어낸 경향성의 덩어리이다. 그래서 애당초 과학과는 거리가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도 예술 같은 인간을 과학으로만 다루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CEO들은 인사 컨설팅 회사들을 마치 마술사인양 생각한다. 그들은 인사관리를 위한 평가 도구를 주문하면서 집어넣고 돌리면 사람들의 점수와 등급이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나오는 완벽한 마술함을 기대한다. 나아가 직원들에게도 인사평가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수치화하라고 생떼를 쓴다. 때로는 평가를 엉터리로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회사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주관적 취향에 맞는 몇 가지 통계치를 조작해서 평가를 올바르게 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까지 하면서 평가의 과학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마술사의 마술이 진실(Real)일까?

마술사들은 상자 안에 예쁜 처녀를 집어넣고 허리를 잘랐다 붙였다 한다. 관중의 눈으로 보면 마술사가 벌이는 이 마술의 허구성을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마술임을 사전에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거짓이라는 전제하에 관람하므로 진실 같은 거짓을 본다고 생각할 뿐이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거짓을 발견한 사실이 없기에 거짓이 아닌 데에도 거짓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는 의식은 과연 진짜일까?

판단하는 의식 즉 생각지도는(Geography of thoughts) 일반적으로 개개인이 태어나 보고 듣고 느끼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경향성의 덩어리(Complex)라고 정의되어진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어떤 현상에 대하여 유사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향성들의 지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의식(마음)을 만들어냈다는 경험이나 학습 따위의 실체는 과연 진실일까? 나아가 내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모든 내용들이 모두 진짜(Real) 일까? 마술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 허구성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경험이나 학습, 현상 따위에 대하여 진실(Real)이라고 생각하듯 혹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태어나 자라면서 의식을 형성하기 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경험이나 배움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경험이나 배움은 아닐까? 어떤 사람은 코로 코끼리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은 다리로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배로 경험하고는 코끼리를 서로 다르게 정의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세계최초의 문서화된 경전인 베다경전을 비롯해 - 석가모니 - 칸트 - 니체 -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성현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사물의 실체(Reality)가 아니고 진화(Evolution)가 요구하는 대로 뇌가 재구성한 것을 볼 뿐이라는데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즉 물자체는 코끼리 전체이지만 각자 자신의 뇌에 그려진 대로 코, 다리, 몸통, 꼬리라는 현상을 각각 물자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란 마치 마술 상자와 같다고 정의하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있다. 필자는 그들의 그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의식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경향성의 덩어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복합체(Complex)인데 과연 그런 나의 의식으로 나와 똑같은 경향성의 덩어리인 다른 사람의 의식이나 역량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평가에 과학을 고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5) 미국 따라 하기

요즘 고위공무원 선발에 역량평가 제도를 이용한다. 필자는 역량평가제도도 미국에서 한 때 유행한 평가 기법을 여과 없이 도입한 잘못된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용되는 역량평가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중대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서류함 기법, 비즈니스 케이스, 역할연기, 집단토론,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측정하는 역량평가는 빠른 두뇌회전을 통해 임기응변력이 뛰어난 인물을 선발하는 데에는 최적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이들 평가방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꺼번에 많은 글을, 빠른 시간 내에, 읽고, 종합하고, 분석하여, 업무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복잡한 가상의 경영정책을 결정하거나, 본인의 성품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하게 연기하거나, 프레젠테이션하고, 집단토론 하는 능력을 평가자들이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전두엽이 발달한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감성보다 이성이 더욱 발달했고 따라서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실무자에게는 이런 임기응변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이 해야 하는 역할은 그 범주를 넘어선다. 관공서나 공기업 조직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이기적 이성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이타적 감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 또한 경영은 현장실무자와 달라 실무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조화와 통섭을 도모해야 하므로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뜻한 감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 가뜩이나 인간은 90%가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적어도 고위 공직자만이라도 이타적이고 협력적인 인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6) 나르시시스트들

사람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반드시 잘못된 결과를 낫는다. 채용이든 승진이든 잘못된 평가도구를 이용할 경우 부적합한 사람을 뽑거나 승진시킬 수밖에 없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고위직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아마도 나르시시스트들을 리더로 선발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성과 평가든 역량 평가든 그들의 잘 돌아가는 머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월욕망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서려 하는 경향이 있다. 또 화려한 그들의 쇼맨십을 리더로서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CEO들이 많다. 제일 시끄러운 매미, 제일 화려한 공작, 제일 아름다운 꽃, 제일 싸움 잘하는 사자를 선택하는 자연선택에 다름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경영에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현장 실무경험이 풍부한 경영 컨설턴트 유정식은 그 폐해를 그의 저서 ‘착각하는 CEO’에서 아래와 같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특징은 부정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관계가 있고 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잘난 척 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조직에서 실제로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그런 행위를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문제는 리더십과 실력을 과장하고 호소하는 특유의 능력에 힘입어 나르시시스트들이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데 있다. 그들은 창의적이지 않은 자기 아이디어를 창의적인 것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려 남들보다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려 한다.’

  사람에 대한 잘못된 평가가 나르시시스트를 낳고 나르시시스트가 궁극적으로는 조직을 와해시킨다. 잘못된 ‘과감한 의사결정’ 하나가 기업을 한방에 가게 한다.

 

   7) 잘못된 평가가 가져오는 것들

성과주의를 부르짖으며 무조건 평가를 해서 임금을 차등지급하라고 하니 많은 회사가 강제배분 방식을 채택하여 억지로 사람들을 상대평가 한다. 종합예술인 인간을 제멋대로 줄 세우고 S,A,B,C,D 5단계도 모자라 이를 다시 세분화 해 15단계까지 평가했던 굴지의 국내 대기업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개인 간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다. 개인단위 업무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벽을 넘어 아이디어의 퀀텀점프를 도모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놓고는 조직 내 개인 간 경쟁을 부추긴다면 협업은커녕 개인 간 갈등에 따른 부작용만 유발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조직에 필요한 이타적 감성이 풍부한 직원들은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밀려 자동적으로 조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내부경쟁을 강조하면 인력의 그레샴 법칙이 적용되어 이기적인 직원들만 들어차고 이타적 직원은 도태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기적 유전자로 인해 종족번식과 유전자 승계라는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숙주는 늙고 병들어 결국은 처참하게 용도폐기 되는 게 자연법칙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조직은 용도폐기 되어 스스로 붕괴한다. 

 

3. 경영의 본질

  1) 초기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기독교든 불교든 많은 종교인들은 ‘신은 네 안에 스스로 존재한다.’며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한다. 아마도 인간의 능력으로 인지할 수 없는 기적 같은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종교가 하나같이 ‘무조건적 사랑’(자비)을 인간의 의식 속에 신처럼 모셔야 할 가장 중요한 절대 이념(무조건적 믿음)으로 여긴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생겨났을까?

이는 아마도 우리의 의식이 형성되는 생애 초기에 경험한 성장배경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갓 태어나 자신만의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동안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준 부모나 주변에 대한 애착, 연민, 협동, 상호작용, 욕망 따위의 기초적인 의식이 자동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 즉 무조건적 사랑이 인간(육체)을 인간(의식)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탈선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정상적인 의식이 형성될 만큼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데서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신앙을 빌린다면 신이란 결국 부모나 주변에서 보내준 ‘무조건적 사랑’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신이 인간의 DNA 깊숙한 곳에 ‘무조건적 사랑’의 씨앗을 심어 인류가 함께 공존공영 할 수 있는 터전을 몰래 마련해 놓았는지 모른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희망’처럼...

이와 같은 원리는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침팬지나 코끼리 늑대 등 대부분의 동물세계에도 이러한 현상들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한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도 감정이입(Compassion)이나 협동심, 공정성, 호혜작용(Reciprocal interaction) 따위의 기본적인 도덕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물학자 프란스 드 봘은 TED 강연을 통해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기들 끼리 나름대로의 도덕성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을 각종 동물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인간처럼 도덕적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동물들도 새끼를 낳아 기를 때에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돌본다. 사람보다 더 헌신적이어서 때로는 새끼들을 돌보다가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자신의 육신을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렇게 새끼들이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동물들도 이와 같은 도덕적 의식들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조건적 사랑이 인간은 물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도덕적 질서와 의식을 부여한다고 보면 무조건적 사랑이야말로 창조의 씨앗이고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젖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경영, 어디로 가야하나

우리는 이 대목에서 매우 중요한 경영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하는 키워드다. 그래서 HR도 단순하게 인사관리 또는 ‘사람에 대한 관리’라고 정의하기 보다는‘사람에 대한 사랑 관리’라고 정의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영의 핵심가치도 ‘사람에 대한 사랑 관리’ 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어떻게 하면 조직 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과 회사 그리고 구성원 간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경영의 핵심과제라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몰입으로 이어져 조직구성원 각자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창출하게 하여 높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적 경영의 핵심목표라 할 수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

 

   3) 사람의 본질

인간의 삶의 본질에 관한 접근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진화심리학적 정의에 의하면 삶은 생존이다. 세상 만물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 얼룩말이나 돌고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 동물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하고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잘 먹어야 하며, 왕성한 번식을 해야 하고,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안전도 확보하고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잘 먹기 위해서는 먹는 즐거움이 필요하고, 왕성한 번식을 위해서는 섹스에 따르는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홀로 있으면 포식자의 먹이가 되니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있어야 하므로 함께 하는 즐거움도 필요하다. 인간에게 식욕, 성욕, 군거성 따위의 성향이 생겨난 이유다. 결국 생존목적인 진화를 위해 그 유인책으로 즐거움(행복) 이라는 수단이자 목적이 생겨났다고 본다.

삶의 본질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인간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고 했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야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조금은 이타적이고 협력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석가모니는 구도의 끝에 만나는 근본을 자비(慈悲)로 정의한다. 윤회설을 주장하며 100경조 분의 1이라는 어려운 확률로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바른 삶 즉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라고 했다. 인간은 마음속이 온통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痴)으로 가득 차 스스로 참고 견디어야 하는 고통의 사바세상을 만들었다며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無常) 영원한 자아라 부를 것도 없다(無我)면서 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날 것(苦集滅道)을 제안하였다. 그 방법으로 제안한 것이 8정도로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사유하며(正思)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업을 지으며(正業) 바르게 운명을 받아들이고(正命) 바르게 근면하며(正勤) 바르게 기억하고(正念) 바르게 마음의 안정(正定)을 찾으라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며 사는 삶을 주장한 공자도 삶에 대한 학이시습(學而時習) 즉 공부의 끝에 만나는 것은 결국 인의예지(仁義禮智)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다시 한 단어로 압축하면 인(仁)이라고 하면서 인은 말이 아니라 실천(知行合一)이며 사람의 기본이고 인간 존재의 이유라고 했다. 인은 우리에게 운명을 극복할 힘을 주고 근심을 없애주니 다른 사람을 아끼고 배려하며 존중하고 보살피라고 했다.

道라고 부르는 순간 더 이상 도가 아니라며(道可道非常道)며 세상의 모든 것이 가변적이니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무위하며 살 것을 주장한(無爲而無以爲) 노자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내 놓은 첫 번째 보물이 사랑(慈)이다. 두 번째가 검소(儉)이고 세 번째로 세상을 위한다고 감히 나서지 않는 겸손(不敢爲天下先)을 설하였다.

우리와 같은 동이족으로 목공 노동자 출신 천민이면서 추상같은 절대왕정 시대에 감히 공화정을 주장하며 계급과 국가를 넘어선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한 묵자의 사상에 깔린 본질도 더불어 사랑 즉 겸애다. 묵자의 겸애사상은 예수의 사랑과 일맥상통하여 시기적으로 볼 때 혹자는 묵자의 사상이 세기를 달리하며 예수에게 전수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결론은 그렇게 도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중용은 하늘이 명한 본성을 따르고 이를 갈고 닦으라고 한다. 本性이란 살리는(生) 마음(心)이다. 하늘의 명은 ‘살리라’는 것이고 살리기 위해서는 지극정성(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모든 성현들이 ‘삶의 본질’로 ‘사랑’을 이야기 한다.

사랑은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다. 서로 끌어당겨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수소 원자(H)와 산소 원자(O)가 서로 끌어 당겨 물(H2O)이라는 분자를 만들어내는 이치와 같다. 반대로 미움은 서로 배척하며 소멸해 버린다. 우주만물이 사랑과 미움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사랑을 창조의 씨앗으로 보는 것이다. 과학에 가깝다는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진화라는 창조물은 암컷과 수컷을 죽도록 ‘사랑’하게 하여(이종교배) 만들어낸 돌연변이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화의 도구는 ‘사랑’이다. 사랑은 ‘무조건적 긍정적 보살핌’이다. 신은 우주만물을 창조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구세주를 보내 세상 만물을 낳고, 기르게 하였다.

 

   4)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생존의 수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삶의 목적도 아니다. 행복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많이 사랑하게 유인하는 일종의 미끼이다. 깜깜한 바다 위 오징어잡이 배에 환하게 켜진 집어등과 같다. 불나비가 달려드는 횃불이기도 하다. 일종의 오르가즘이다. 결과적으로 행복은 사랑이 남긴 찌꺼기, 배설물로서의 즐거움이다.

 

   5) 기업의 본질

제도 몇 개를 뜯어고치거나 조직을 바꾸고 사람을 몇 명 보강하여 혁신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회춘한 기업도 없고 변화가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어서 그 자체가 오히려 기업을 도산 문턱에까지 이르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이도 있다.

기업도 생존을 넘어 진화가 본질이다. 기업의 진화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한 혁신으로만 이어간다. 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는 쉽게 구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이라고 하는 진화의 도구에서만 얻을 수 있다.

기업의 진화는 일반적으로 단순한 개선(Improvement)과 돌연변이적 혁신(Innovation)에 바탕을 둔다. 개선(Improvement)은 현재까지 축적된 같은 분야 경험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현재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창출하는 ‘과학적 진화’를 말한다. 돌연변이적 혁신(Innovation)이란 축적된 서로 다른 분야의 경험들 간 이종교배를 통해 현재 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변종을 만드는 ‘예술적 진화’를 말한다. 일테면 자연 상태의 돌을 그대로 사용하는 구석기시대에서 돌을 쪼개고 갈아서 사용하는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단순한 개선’에 해당하는 과학적 진화이고,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것과 같이 단순한 돌멩이에서 구리와 주석을 추출하고 이들을 배합하여 청동을 만드는 것과 같이 전혀 다른 종을 창조하는 것은 ‘돌연변이적 혁신’에 해당하는 예술적 진화이다.

이와 같은 기업의 진화는 조직구성원의 일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일이 너무 사랑스러워 일에서 행복을 느낄 만큼 몰입해야 창의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행복이란 열렬히 사랑하여 스스로를 잊을 만큼 무엇인가에 몰입했던 순간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일 뿐 현재나 미래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직원 각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몰입의 순간을 행복으로 기억하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경영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다. 인류 역사는 일에 대한 몰입을 통해 혁신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선과 혁신의 결과는 주로 전쟁의 형태로 이어지며 인류 역사가 진화하였다.

 

   6) 전쟁과 인류 역사  

어찌 보면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인간의 머리 안에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도록 하는 논리회로가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300만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고 다가선 도도새가 고기에 굶주린 선원들에 의해 멸종되어졌다는 슬픈 도도새의 전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초면엔 무조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는 전쟁에서 승리한 승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주로 강력한 신무기였으며 신무기 발달의 역사는 창조적 혁신의 역사와 함께한다. 구석기 문명의 부족들은 신석기 문명의 부족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고 신석기 문명의 부족은 또다시 청동기 문명의 부족이나 국가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으며 청동기 문명의 부족이나 국가는 철기 문명의 국가에게 정복당했다. 불패의 일본 최고 기마군단 다케다 가쓰요리가 창, 칼 들고 무데뽀(無鐵砲)로 덤비다 조총으로 무장한 오다 노부나가에게 처절하게 완패 당했다는 무데뽀의 어원적 전설이 역사적으로 이를 입증한다. 이런 신무기의 위력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오다의 후예들이 주제넘은 생각으로 세계정복을 꿈꾸었지만 그보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원자폭탄이라는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에 무릎을 꿇은 이래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이 현재까지 계속 패권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모방에 의한 성장은 반드시 붕괴한다는 또 하나의 전형적 사례이다.

건국 이래 미국이 이와 같이 패권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미국만의 차별화된 시스템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미국으로 하여금 장기간 패권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들었을까?

 

 

     가) 창의적 아이디어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미국의 특허법에서 찾고 있다.(대국굴기) 미국은 국가 건립 이후 앞으로 미국이 추구해야 할 핵심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심한 결과 그동안 세계사의 패권을 좌우했던 핵심요인이 다름 아닌 ‘창의적 아이디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특허권의 철저한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1788년 연방헌법을 제정할 때에 특허권 보장 조항을 헌법에 삽입함으로써 특허 등 창의적 아이디어를 초법적으로 보장하게 한 것이다.

혹자는 미국을 넘어서는 중국의 부상을 점치지만 모방을 통한 창조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소련의 붕괴과정에서 우리는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련의 성장을 가져왔던 산업기술의 발달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소련의 산업기술이 미국의 기술자를 수입해서 출발했다는 데에 있다. 즉 모방을 통한 성장이 오늘날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모방을 넘어 자기만의 차별화된 새로운 창조를 가져오지 않는 한 진화가 불가능하고 진화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도태의 과정을 겪을 뿐이다.

 

     나) 자유

미국은 또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이 전쟁 없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전쟁발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 이를 없애는 방법 또한 헌법으로 보장하였다. 그들이 찾아낸 전쟁유발의 근본원인은 바로 ‘자유’였다. 즉 인간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태어난 나이기에 나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목숨을 걸고 이를 쟁취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노예 해방운동을 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도 실은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돈으로 자유를 사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자유는 그 자체가 지니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이다.

    

    다) 우월욕망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인류역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더 이상 진화가 불가능한 진화의 마지막 최고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야말로 인류역사상 최고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헤겔은 이를 우월욕망이라고 표현하면서 인류역사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고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사람들 간에 이와 같은 우월욕망이 부딪히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전쟁에서 이긴 쪽은 군주계급이 되는 반면 진 쪽은 노예계급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라 할지라도 내면에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이 고스란히 내재해 있기 때문에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은 욕망이 분출하면서 자기해방 운동이 일어났고 자기해방 운동의 결과가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출현은 마침내 자유 민주주의라는 정치시스템을 낳는 모태가 되었는데 자유 민주주의야말로 독립된 개인들이 서로 싸우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준에서 각자의 우월욕망을 채울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의 정신은 프랑스 혁명을 거쳐 마침내 미국의 독립혁명으로 이어지며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 후쿠야마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를 진화시킨 단초가 되는 인정받기 위한 욕망(우월욕망)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진화심리학적으로 고찰하면 우월욕망이야말로 진화의 핵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종족의 진화를 위해서는 가장 우월한 놈이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서 힘차게 우는 매미, 가장 화려한 공작, 최고 싸움꾼 사자만이 대를 이어 진화한다. 신은 우주만물에 우월욕망의 씨앗을 심어 동종 간 서로 경쟁하게 하고 가장 우월한 놈이 대를 잇게 하는 진화의 법칙을 만들었을 것이다.

발달심리학적으로 보면 우월욕망 역시 인간이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의식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은 갓난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무조건적 사랑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수용하고 격려하고 칭찬해 준다. 이 경우 아이는 자신이 남보다 잘났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우월의식이 생겨나는 것으로 여겨진다.(공주병, 왕자병)

이와 같은 우월욕망(인정받기 위한 욕망)은 일면 삶을 도전적으로 이어가는 본원적 에너지가 되어 생의 추동(Drive)을 형성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지나친 우월의식은 경쟁과 싸움 심지어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매우 위험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위험한 우월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등개념이 출현하였다.

 

     라) 평등

후쿠야마는 니체의 우월욕망에 관한 견해로부터 역사 발전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인자를 찾아내었다. 니체는 진정한 자유와 창조성은 인간의 우월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남보다 뛰어난 존재인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인식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의 본원적 모태는 바로 ‘자유’이며 자유가 없으면 진정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발현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는 우월욕망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우월욕망끼리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 분쟁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우월욕망을 적당한 수준으로 억제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를 일정부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같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방편으로 평등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천부적으로 존엄한 존재이므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기에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평등원리로 자유를 제한하여 과도한 우월욕망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평등주의 사상이 상호존중의 개인주의로 이어지며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자유, 창조성, 우월욕망은 인간의 본질에 내재된 천부적인 것이어서 언제나 변함없는 항상성을 가진다. 하지만 평등은 인위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이성 즉 전두엽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법칙이다. 따라서 평등을 적용하는 방식에 따라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나뉘어 서로 이념을 달리한다. 작게는 가족단위에서 사회, 국가, 인류에 이르는 모든 집단의 분쟁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 궁극에 언제나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 인류의 미래는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자유가 어떤 형태로 발전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연구를 통해 경영을 공부하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소련이라는 거대강국이 무너진 근저에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면 일반 기업이야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래도 불평등만 조장하는 평가와 차별적 처우를 경영의 기본 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할 것인가! 언제까지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 아래 고통의 나날을 보낼 것인가!

 

   7) 경영의 본질

인류역사의 진화를 위한 핵심적 원동력인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쟁이나 싸움 따위가 발발하지 않도록 하면서 최대한 ‘우월의식’을 자극해 자유롭게 각자의 잘남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유는 다양성을 가진 개개인 인간의 본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으로 보면 언제나 서로 다른 개인적 자유간의 충돌을 가져오기 때문에 개인이 최대한으로 수용 가능한 ‘평등’의 재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창의적 아이디어’, ‘우월욕망’,자유’ 그리고 ‘평등’이야말로 경영의 핵심 키워드라는 것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인자들은 무조건적 긍정적 보살핌 이라는 사랑의 도가니 안에서 관리되어질 때에만 서로 융합되며 폭발력 있는 성과를 창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경영의 핵심인자를 포괄하는 기본 프레임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경영은 단순히 지금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경영은 창의적 혁신을 이어가며 지금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어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도모하며 진화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구성원이 한 일을 점수화하여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인센티브를 더 많이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벌을 주는 형태의 상벌적 인센티브 시스템은 고도로 발달된 현대인의 의식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미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경영의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이는 단지 인간이 동물로 취급되던 시절에 개발된 이후 지금껏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바탕을 둔 경영이 만연하고 있다.

 

   8) 욕구진화론과 경영

인간의 욕구는 진화한다. 인간의 진화하는 욕구를 매슬로우 만큼 명확하게 체계적으로 범주화한 사람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욕구 단계론이라고 표현하지만 필자는 그의 이론을 욕구 진화론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하위단계의 욕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상위단계의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오로지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 수준 안에서 살았지만 성장하면서 이와 같은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따뜻하고 안전한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배불리 지내다 보면 사회속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사회 속의 일원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뜻함과 사랑, 수용, 나아가서는 존경이나 숭배를 받고 싶어 하는 우월욕망(자존욕구)이 나타나면서 치열하게 경쟁 대열에 뛰어들게 된다. 이러한 욕망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자기 안에 침잠하며 자신의 소명에 몰입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자아실현 욕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아실현 욕구 수준까지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기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현대사회는 근대 이전의 사회보다 욕구 수준의 진화 속도가 더욱 빠르다. 그것은 물질문명의 진화속도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며 아무런 의심 없이 지금껏 사용해 온 성과급 시스템은 인간 욕구의 초기 발달단계인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를 주된 동기유발 요인으로 이용한 것이다. 당근이라는 먹이와(생리적 욕구) 채찍이라는 위협(안전욕구)을 통해 성취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당근과 채찍 보다 주로 인간의 우월의식을 자극하는 자존욕구나, 자신의 소명에 몰입하여 내면적 완성에 도달하는 자아실현 욕구를 중심으로 성취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 한국은 이미 먹고사는 문제에 큰 어려움이 없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앞으로 세계사를 창조적으로 선도해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4. 경영의 키워드를 찾아서

 

경영은 사람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지금껏 경영을 과학과 연계시키려는 잘못된 노력을 이어왔다. 나아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만이 유일한 진화의 도구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 안에서 없는 답을 찾아내려고 고심해 왔다. 인간의 의식을 움직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직관이라는 사실도 간과했다. 인간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실은 직관에 따라 결정하고 이성은 합리화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신봉해 왔던 경영의 프레임도 180도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비록 필자의 주장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퀀텀점프는 직관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경영의 키워드도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인간에 대한 이해

경영의 출발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동양과 서양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지도를 가지고 있다. 서양은 그리스 로마시대 공화정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사상을 발전시켰고 이는 그리스도교의 출현과 더불어 개인주의적 생각지도로 굳어졌다. 따라서 특별한 존재인 나를 존중하고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며 서로 구분지어 범주화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반면 동양은 오랜 왕정체제 하에서 통치자의 명령에 순종하며 개인 보다는 집단에 충성하며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유교나 불교, 도교를 발전시켰다. 특별한 존재인 자기를 부정하고 집단 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중심적 가치관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운용하고 있는 경영 시스템은 대부분 서양식 생각지도에 적합한 제도로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직수입된 것들이다. 서양도 지금은 인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개인 간 경쟁을 통한 차별보상이라는 성과주의 시스템을 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집단을 중시하고 관계중심 형 가치관을 지닌 우리는 더더욱 개인 간 경쟁 중심의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개인 간 화합과 협력을 통한 집단성과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어야 옳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고집하고 있다.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생각지도들을 고려하여 경영시스템을 우리의 생각지도와 인간의 본질에 적합하도록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진화의 본질에 대한 이해

진화는 반드시 지금보다 나은 변종을 요구한다. 그래서 무한경쟁과 자연선택 외에도 유성생식과 이종교배를 근간으로 한다. 동종 간 교배는 오히려 현재만 못한 후손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화의 키워드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바로 유성생식과 이종교배가 변종을 낳는다는 진화법칙이다. 그래서 창조 혁신조직은 대부분 다양한 생각의 교배를 통한 통섭을 강조한다. 조직의 진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조직원들의 생각을 이종교배 시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화는 경쟁을 기본으로 하지만 우월자가 선택되어 유전자가 계승되고 나면 패자를 무자비하게 도태시킨다. 패자가 살아남으면 진화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하여 함부로 도태되어 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전자의 잘못된 요구에 너무 익숙해져 죽을 때까지 경쟁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기적 유전자의 잘못된 요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유전자가 요구하는 최고 품질의 변종도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목적이 달성되더라도 비참하게 폐기처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경쟁 대신 소통하고 화합하며 교류하여 개인이 만드는 진화 대신 집단이 만드는 더 뛰어난 변종으로 우아하게 진화해 나가면 진화는 물론 도태도 동시에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용광로가 필요한 것이다.  

 

  3) 모든 인사시스템 전반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

인류문명은 신화에서 탄생했다. 신화를 통해서 흩어진 부족을 모으고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한 방향으로 정렬해 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겁을 주고 때로는 위안을 주며 모든 국민이 한 방향으로 협동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신화다. 그래서 역사발전의 초기엔 대부분 제정일치 형태의 국가를 운영해 왔다.

경영에서 인사제도는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직원의 생각과 행동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지를 정한 것이 인사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의 본질과 진화의 본질에 대해 확실히 이해했다면 이와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아마도 인사제도 전반을 현재와 정반대로 완전히 뒤집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도가 바뀌면 직원들의 의식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단순히 성과관리 시스템만 고친다고 성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채용에서 교육, 이동, 승진, 보상, 퇴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경쟁구도가 아닌 화합구도로 재설계하여야 한다. 전면적으로 새로운 틀을 구성하되 개별적인 기업문화 특성에 적합하게 하여야 한다.

 

  4) 더 진화된 상품의 개발(창의적 아이디어)

더 진화된 상품의 개발이 경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경영의 목표를 더 많은 생산과 판매에서 더 진화된 상품의 개발로 바꾸어야 한다. 세계사적 진화의 핵심 키워드가 창의적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끝나는 순간 기업도 국가도 모두 끝난다. 창의적 아이디어만이 앞으로 한국을 지켜줄 유일한 보호막이다. 한국이 세계사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진화하려면 모든 역량을 창의적 아이디어 개발에 쏟아 부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을 떠받치는 핵심기업 삼성도 반도체 분야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인한다. 더 진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영 시스템을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에 적합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구글이나 애플, MS, GE 등 창조와 혁신을 거듭하는 미국 기업이 최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그들이 A,B,C 3단계 평가제도 마저 포기한 데에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경영의 핵심인자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개선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 개발이 다른 무엇에 앞서 기업의 존립목적이라고 생각하라.

 

  5)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자유)

창의적 아이디어 개발이라는 경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환경요인은 자유다. 거침없는 생각과 행동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따라서 모든 조직 구성원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창출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직무범위, 조직구성, 근무지, 근무시간 따위를 포함해 조직 내 창의적 아이디어의 창출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찾아내어 제거함으로써 자유로운 분위기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6) 우월욕망 관리와 평등

인간은 천부적으로 우월욕망이 강하기에 특별히 이를 인위적으로 조장할 필요는 없다. 우월욕망은 오히려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값진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우월욕망의 상위단계인 자기실현 욕망까지 끌어올려야 하므로 우월욕망의 충족은 불가피하다. 여기서 우월욕망의 충족과 통제라는 서로 모순되는 요구가 발생한다. 우월욕망의 충족은 잠시 후 다루기로 하고 우선 통제 방법을 살펴보자.[ '10) 사랑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경영'에서 우월욕망의 충족을 다룸]

평등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의 우월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것은 이미 설명했다. 평등은 너와 내가 동등하다는 전제하에 공평하게 처우해주고 처우 받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동등하게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서로의 우월욕망을 잠재우고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등은 자연법칙이 아니고 인위적인 원칙이다.

평등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평등을 해치는 순간 자유도 우월의식도 창의적 아이디어도 모두 허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공평하게 처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등을 해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개인 간 경쟁을 통한 차별적 처우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신에 대한 낮은 평가를 수긍하지 않을 뿐더러 혹 수긍한다 하더라도 우월의식에 상처를 입어 소통과 화합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다.    

 

  7) 개인 간 경쟁을 유발하는 모든 시스템의 과감한 포기

미국은 A,B,C 3단계 평가마저 포기해 나가고 있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경영의 키워드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성과연봉제를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확산해 나가려 했었다. 성과연봉제의 이면에는 개인 간 차별적 처우의 극대화를 통해 경쟁을 도모하고, 개인 간 경쟁을 고도화하여 성과를 창출한다는 고전적 동기부여 이론이 숨어있는 데도 말이다. 고전적 동기부여 이론은 주로 인간처럼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개 실험 따위에 적용되었던 이론이다. 우리는 지금 2018년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이론을 지금껏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유전자의 이기적 요구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경영 시스템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개인 간 경쟁 유발 요소들을 과감히 폐기하고 어떻게 하면 소통과 화합을 이룰까 고민해야 한다.

 

  8) 개인평가는 버리되 꼭 필요하다면 3단계를 넘지 않아야

개인평가 제도를 버리되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절대 3단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것도 강제배분 방식의 상대평가는 반드시 피하고 절대평가 방식으로 해야 한다. 전체 가운데 자랑하고 칭찬해줄만한 모범적인 사례 몇 개 뽑아 알리는 수준에서 A급을 구분하여 두 단계 정도만 운영해도 충분하다. 꼭 세 단계를 운영해야 한다면 대표적인 부진사례 몇 개 더 선별하는 수준에서 C급을 구분하여 운용하면 될 일이다. 또 모범적인 사례든 부진 사례든 특별한 게 없으면 억지로 강제배분하지 말고 그냥 모두 B등급으로 평가하면 된다. 억지로 차별해서 평등을 깨며 절대다수에게 불편한 감정을 심어주는 것은 조직을 와해시키는 지름길이다.  

   

  9) 융합만이 퀀텀점프를 부른다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관련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융합적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아이디어는 몰입을 통해서 나온다. 개인의 경우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의 몰입이 있어야 전문가로 성장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폭발력 있는 변종 아이디어는 한 분야의 몰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생각이 핵융합처럼 함께 융합될 때 퀀텀점프가 일어난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변종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이것이 대박으로 이어지며 진화의 변곡점을 찍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간, 부서 간 또는 회사 간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관련 전문가들이 집단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10) 사랑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경영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용광로 안에 이 모든 것을 넣고 용융해 버려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우월의식 즉 자존욕구와 자기실현 욕구에서 나온다. 하지만 자존욕구 단계에서는 우월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단순한 개선(Improvement) 정도의 낮은 수준 밖에 이르지 못한다. 자기실현 욕구 단계까지 올라야 자발적 몰입을 통해 진화의 주축을 이루는 돌연변이적 혁신(Innovation)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실현 욕구 수준까지 진화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의 충족 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자존욕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뜻함과 사랑, 수용, 존경이나 숭배를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이 자존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무조건적 사랑이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신의 우월욕망이 충족되어야만 다음 단계인 자아실현 단계로 욕구가 진화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소명에 몰입해야 혁명적 아이디어가 창출된다. 따라서 경영의 기본 틀을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용광로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 용광로가 모든 것을 녹여 폭발력 있는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다.

 

  11) 사랑의 그릇 크기로 사람 관리

까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결국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두고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조직도 마찬가지고 회사조직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다. 창조주의 뜻에 따라 세상만물은 ‘살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고 그 살리기 위한 도구로 사랑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승진, 이동 따위에 적용되는 필요역량도 무조건적 사랑의 역량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주역은 그릇 론을 핵심사상으로 제시한다. 타고난 그릇보다 더 큰 자리에 앉으면 그릇이 깨지고 그릇이 깨지면 그릇도 사람도 모두 깨져버린다는 경고다. 과대포장 된 나르시시스트에 속아서 그들을 승진시키면 그 조직원은 사랑이라는 자양분 부족으로 고사하게 된다. 잘난 척 하는 나르시시스트 아래서는 자신의 잘난 점을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씨앗을 말리는 것이다. 다른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자애로운 엄마처럼 사랑으로 부하직원의 잘난 점을 부추겨 최고의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사랑 가득한 부하직원을 육성하는 상사가 최고의 상사이다.

리더십은 무조건적 사랑의 크기에서 나온다. 사랑만이 유일한 진화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세계사적 진화를 가져오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리더의 깊고 그윽한 사랑으로 조직 구성원의 자아실현 욕구를 자극하여 업무에 자발적으로 몰입하게 하고 몰입의 결과가 개인의 행복으로 기억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이어지면서 높은 성과가 창출된다. 경영은 차별대우가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경영의 궁극적 핵심인자는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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