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쓴 책들/경영의 본질

2. 경영에 관한 오해와 진실

by 굼벵이(조용욱) 2018. 4. 10.
728x90

2. 경영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성과는 누가 어떻게 내나?

    가) P = ACE

성과(Performance)는 어떤 방향(Alignment)으로 조직구성원의 능력(Capability)을 얼마만큼 몰입(Engagement)시키는가에 달렸다. 올바른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잠재능력까지 끌어내어 몰입할 때에만 진화를 위한 퀀텀점프가 가능하다. 진화할 수 없는 기업은 자연도태 될 수밖에 없다.

십여년 전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s Management : 미국 인사관리협회)에서 주최한 Annual Conference에 참석해 어느 전문가로부터 귀동냥한 바에 의하면 직원의 24% 정도만 자신의 일에 어느 정도 몰입할 뿐 76%는 마지못해 시키는 일만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개미사회든 인간사회든 20:80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자연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인 법칙이 존재한다. 이른바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의 근간에는 진화의 원리가 있고 진화는 무한경쟁과 자연선택 그리고 돌연변이를 기반으로 한다. 한여름 잠 못 자게 울어대는 매미는 힘찬 목소리로 자신의 우월성을 경쟁한다. 공작새는 꼬리털의 아름다움으로 경쟁한다. 아름다운 꽃들은 모두 화려함으로 경쟁한다. 힘 센 사자는 앞 발 주먹과 이빨의 세기로 경쟁한다. 이렇게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워 이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한다. 암컷과 수컷을 나누어 유성생식 이종교배 하도록 한 것은 무성생식보다 더 잘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루저들은 반복되는 패배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도전을 포기하고 결국 쓸쓸하게 스스로 자연도태 된다. 자연은 그렇게 DNA에 새겨진 명령에 따라 무자비하게 진화를 이어간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파충류 시절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했던 생각과 행동양식들은 뇌간에, 포유류 시절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했던 생각과 행동양식들은 변연계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 300만년 중 299만년은 영장류의 생활방식으로 살아왔고 고작 1만년 동안 대뇌를 발달시키며 인간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DNA는 99.66%가 구석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 DNA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인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기에 특별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파충류 시절에 만들어진 DNA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인간이 1만년 동안 발달시켜온 대뇌를 통해 충분히 그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방금 설명한 SHRM 전문가의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개미나 베짱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24%의 개미 직원이 76%의 베짱이 직원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발상을 통해 경영의 기본 틀을 뒤집을 수 있다. 베짱이는 변함없이 그대로 놓아둔 채 24%의 일꾼 개미들만 신상필벌로 죽도록 경쟁시켜 불행한 최후를 맞게 할 것이 아니라 76%의 베짱이 직원들을 일깨워 스스로 일터에 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경영의 본질은 일에 끌려 다니는 절대다수의 베짱이들을 일을 끌고 가는 개미로 바꾸는데 있다. DNA에 새겨진 유전자 명령에 따라 개미들만 죽도록 경쟁하다 비참하게 사라지도록 할 것이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이종교배의 돌연변이에 집중해야 한다. 진화는 화합과 통섭을 기초로 이종교배에 의해 창출된 돌연변이 변종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나) 툰드라 레밍 들쥐 떼

레밍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며, 우리말로는 ‘나그네 쥐’라고 한다. 일반 쥐와 마찬가지로 번식력이 강한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불어날 경우 불편을 겪던 한 놈이 갑자기 뛰어 달아나면 집단적으로 무작정 따라 뛰기 시작해 결국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바다·호수에 빠져 ‘집단자살’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도 어찌 보면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과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매춘부를 그렸다. 리용의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노엘이 화려한 밤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상경한 것도 일면 그런 이유다. 무일푼 상경녀가 어떻게든 상류사회의 유행을 쫓아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하나밖에 없는 자산, 즉 몸을 파는 일 밖에 없었을 것이다. 들로 산으로 사냥 나갔다가 돌아온 원시인 총각에게 몸을 내주고 고기 덩어리를 구했던 원시인 처녀의 유전자가 그녀를 그렇게 인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내 놓으며 전광판을 물들인다. 가엾은 노엘은 불나비처럼 계속 신상(새로운 상품)에 달려들며 몸을 팔다 결국 매음굴에서 허망하게 죽어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노엘들이 집어등에 몰려드는 오징어나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밍 들쥐 떼나 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진화의 초기단계에 입력된 DNA가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뇌간이나 변연계에서 지시하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76%가 아직도 노엘이나 들쥐처럼 행동하기에 경영의 바른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 미자하의 복숭아

고대 로마시절에도 미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지배계층이 많았는데 중국에도 과거에 그런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전국시대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왕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는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죄를 물어야 하지만 사랑에 빠진 영공은 죄를 묻는 대신

“어미가 걱정돼 벌도 잊을 정도이니 참으로 효자다”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은 미자하가 과수원을 거닐다 복숭아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맛이 괜찮아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내밀었다. 불충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영공은 이를 받아 맛나게 먹으며

“얼마나 나를 생각했으면 자신이 먹던 복숭아까지 주겠는가!”

라며 미자하를 칭찬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나이가 들자 미자하의 아름다움도 퇴색했고 따라서 왕의 사랑도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죄를 저지르자 사랑을 잃은 영공은 크게 노하며

“저놈이 예전엔 허락도 없이 내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가고, 제가 먹다 남은 더러운 복숭아까지 내게 주었다”

라며 벌을 내렸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한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판단하는 기준이 이처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렇듯 인간은 이성이 앞서는 것 같지만 언제나 감성 즉 직관이 앞선다. 이성은 감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앞 뇌 즉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불을 발견하고 부드러운 화식을 시작한 호모일렉투스 시절부터라고 한다. 그러니 잘해야 1만년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전두엽에서 보내는 생각보다 이전 299만년 동안 살아온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변연계, 간뇌)에서 나오는 생각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전두엽에서 내보내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변연계나 뇌간에서 내보내는 직관이 생각할 틈도 없이 앞선다. 직관은 자동적으로 거의 일 순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은 90%가 이기적-독립적인 성향을 띄며 10% 정도만이 이타적-협력적 성향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2) 과학적 인사관리가 가능할까?

기업경영의 핵심은 인사관리 즉 사람관리다. 모든 기업 활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과를 창출하게 하고 그 성과가 결과적으로는 기업 활동의 최종 목적인 이윤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인사관리는 대체로 채용에서 배치 및 보직(이동), 교육, 평가와 보상, 퇴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유지하며 개발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과정을 과학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에 관한 한 그 어느 과정이든 완벽하게 과학적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우선 채용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국가직무역량표준(NCS) 등 여러 가지 과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요리 조리 재어가며 최적의 인물을 골라낸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면접자가 피면접자를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 채용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면접자 안에 완벽한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평가도구를 적용해서 과학적으로 성과와 역량을 평가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라서 완벽하게 과학적일 수 없다.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절대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지 못하다. 이는 99%가 직관적이라는 특징 외에도 사람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의식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미자하의 복숭아처럼 시간과 공간 또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에 상응한 보상을 해 줌으로서 직원들의 성취동기를 유발하겠다고 하면서 BSC, MBO 등 미국의 여러 가지 과학적 도구를 도입하여 운영하는 회사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이고 공정한 제도를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평가의 본질로 들어가면 절대 과학적이라거나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평가행위 자체가 평가자의 직관에 의한 주관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가자의 주관이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평가를 할 때 대부분 평가자 자신의 직관이 만든 기준에 따라 먼저 피 평가자를 줄 세우고 회사가 정해준 과학적 평가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고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자하의 복숭아가 만든 여도지죄는 전국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늘 우리네 일상을 지배한다. 인간은 늘 이성을 주장하지만 언제나 이성보다 직관이 앞선다.

 

   3) 평가, 그 어리석음의 극치

일반적으로 90%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상위 10%이상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니 차등보상은 잘해야 상위 10%만 만족시킬 뿐 이를 벗어난 80%이상이 불만족할 수밖에 없다. 휴렛패커드는 자사 보상제도 개선 사례에서 차등보상 프로그램이 조직에 긍정적 효과보다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하면서 이런 증거를 무시하는 경영자 하나가 수 십 년간 지켜온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순식간에 망쳐버리기 쉬우므로 만일 이미 성과평가를 통한 차등보상을 운영 중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 제도를 뜯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경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평가를 통한 차등보상은 A급 우수성과자의 성과를 더 높이지 못한다. C급 저성과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절대다수인 B급 중간성과자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갖게 된다는 마태효과만 커진다. 결국 A급이든, B급이든, C급이든, 모두에게 보다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평가를 통해 차등보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평가의 객관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면 차라리 절대평가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지금껏 많은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들, 인사담당자들이 수 십 년간 노력했음에도 객관적 평가지표를 찾아야 한다는 외침은 그치질 않는다. 그 이유는 객관적 평가지표를 발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평가지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가자가 최대한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 하여 직원을 평가했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는 자신감 착각과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자신감 착각이 더 크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는 평가점수를 낮게 받은 직원들의 마음속에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불만만 자라나게 한다. [‘착각하는 CEO’(유정식) 인용]

 

   4) 인간은 마음이 만든 종합예술

사람은 본디 마음(의식)이 만들어 낸 종합 예술(Art)이다. 주로 직관이나 정서 등에 의존하는 ‘예술’은 객관이나 인식 등에 의존하는 ‘과학‘(Science)과 많이 다르다. 마음이란 자신 만의 경험과 학습 등이 만들어낸 경향성의 덩어리이다. 그래서 애당초 과학과는 거리가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도 예술 같은 인간을 과학으로만 다루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CEO들은 인사 컨설팅 회사들을 마치 마술사인양 생각한다. 그들은 인사관리를 위한 평가 도구를 주문하면서 집어넣고 돌리면 사람들의 점수와 등급이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나오는 완벽한 마술함을 기대한다. 나아가 직원들에게도 인사평가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수치화하라고 생떼를 쓴다. 때로는 평가를 엉터리로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회사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주관적 취향에 맞는 몇 가지 통계치를 조작해서 평가를 올바르게 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까지 하면서 평가의 과학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마술사의 마술이 진실(Real)일까?

마술사들은 상자 안에 예쁜 처녀를 집어넣고 허리를 잘랐다 붙였다 한다. 관중의 눈으로 보면 마술사가 벌이는 이 마술의 허구성을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마술임을 사전에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거짓이라는 전제하에 관람하므로 진실 같은 거짓을 본다고 생각할 뿐이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거짓을 발견한 사실이 없기에 거짓이 아닌 데에도 거짓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는 의식은 과연 진짜일까?

판단하는 의식 즉 생각지도는(Geography of thoughts) 일반적으로 개개인이 태어나 보고 듣고 느끼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경향성의 덩어리(Complex)라고 정의되어진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어떤 현상에 대하여 유사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향성들의 지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의식(마음)을 만들어냈다는 경험이나 학습 따위의 실체는 과연 진실일까? 나아가 내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모든 내용들이 모두 진짜(Real) 일까? 마술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 허구성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경험이나 학습, 현상 따위에 대하여 진실(Real)이라고 생각하듯 혹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태어나 자라면서 의식을 형성하기 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경험이나 배움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경험이나 배움은 아닐까? 어떤 사람은 코로 코끼리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은 다리로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배로 경험하고는 코끼리를 서로 다르게 정의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세계최초의 문서화된 경전인 베다경전을 비롯해 - 석가모니 - 칸트 - 니체 -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성현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사물의 실체(Reality)가 아니고 진화(Evolution)가 요구하는 대로 뇌가 재구성한 것을 볼 뿐이라는데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즉 물자체는 코끼리 전체이지만 각자 자신의 뇌에 그려진 대로 코, 다리, 몸통, 꼬리라는 현상을 각각 물자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란 마치 마술 상자와 같다고 정의하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있다. 필자는 그들의 그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의식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경향성의 덩어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복합체(Complex)인데 과연 그런 나의 의식으로 나와 똑같은 경향성의 덩어리인 다른 사람의 의식이나 역량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평가에 과학을 고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5) 미국 따라 하기

요즘 고위공무원 선발에 역량평가 제도를 이용한다. 필자는 역량평가제도도 미국에서 한 때 유행한 평가 기법을 여과 없이 도입한 잘못된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용되는 역량평가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중대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서류함 기법, 비즈니스 케이스, 역할연기, 집단토론,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측정하는 역량평가는 빠른 두뇌회전을 통해 임기응변력이 뛰어난 인물을 선발하는 데에는 최적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이들 평가방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꺼번에 많은 글을, 빠른 시간 내에, 읽고, 종합하고, 분석하여, 업무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복잡한 가상의 경영정책을 결정하거나, 본인의 성품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하게 연기하거나, 프레젠테이션하고, 집단토론 하는 능력을 평가자들이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전두엽이 발달한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감성보다 이성이 더욱 발달했고 따라서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실무자에게는 이런 임기응변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이 해야 하는 역할은 그 범주를 넘어선다. 관공서나 공기업 조직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이기적 이성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이타적 감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 또한 경영은 현장실무자와 달라 실무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조화와 통섭을 도모해야 하므로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뜻한 감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 가뜩이나 인간은 90%가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적어도 고위 공직자만이라도 이타적이고 협력적인 인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6) 나르시시스트들

사람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반드시 잘못된 결과를 낫는다. 채용이든 승진이든 잘못된 평가도구를 이용할 경우 부적합한 사람을 뽑거나 승진시킬 수밖에 없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고위직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아마도 나르시시스트들을 리더로 선발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성과 평가든 역량 평가든 그들의 잘 돌아가는 머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월욕망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서려 하는 경향이 있다. 또 화려한 그들의 쇼맨십을 리더로서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CEO들이 많다. 제일 시끄러운 매미, 제일 화려한 공작, 제일 아름다운 꽃, 제일 싸움 잘하는 사자를 선택하는 자연선택에 다름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경영에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현장 실무경험이 풍부한 경영 컨설턴트 유정식은 그 폐해를 그의 저서 ‘착각하는 CEO’에서 아래와 같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특징은 부정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관계가 있고 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잘난 척 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조직에서 실제로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그런 행위를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문제는 리더십과 실력을 과장하고 호소하는 특유의 능력에 힘입어 나르시시스트들이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데 있다. 그들은 창의적이지 않은 자기 아이디어를 창의적인 것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려 남들보다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려 한다.’

  사람에 대한 잘못된 평가가 나르시시스트를 낳고 나르시시스트가 궁극적으로는 조직을 와해시킨다. 잘못된 ‘과감한 의사결정’ 하나가 기업을 한방에 가게 한다.

 

   7) 잘못된 평가가 가져오는 것들

성과주의를 부르짖으며 무조건 평가를 해서 임금을 차등지급하라고 하니 많은 회사가 강제배분 방식을 채택하여 억지로 사람들을 상대평가 한다. 종합예술인 인간을 제멋대로 줄 세우고 S,A,B,C,D 5단계도 모자라 이를 다시 세분화 해 15단계까지 평가했던 굴지의 국내 대기업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개인 간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다. 개인단위 업무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벽을 넘어 아이디어의 퀀텀점프를 도모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놓고는 조직 내 개인 간 경쟁을 부추긴다면 협업은커녕 개인 간 갈등에 따른 부작용만 유발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조직에 필요한 이타적 감성이 풍부한 직원들은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밀려 자동적으로 조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내부경쟁을 강조하면 인력의 그레샴 법칙이 적용되어 이기적인 직원들만 들어차고 이타적 직원은 도태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기적 유전자로 인해 종족번식과 유전자 승계라는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숙주는 늙고 병들어 결국은 처참하게 용도폐기 되는 게 자연법칙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조직은 용도폐기 되어 스스로 붕괴한다. 

'내가 쓴 책들 > 경영의 본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경영의 키워드를 찾아서  (0) 2018.04.10
3. 경영의 본질  (0) 2018.04.10
1. 경영의 현주소  (0) 2018.04.10
본문요약  (0) 2018.04.10
경영의 본질  (0) 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