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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피터 싱어)

by 굼벵이(조용욱) 2018.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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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기심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모자란다
일찍이 토크빌은 미국의 문화적 유산을 거론하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조상을 잊게 할뿐만 아니라 후손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하며

동시대인으로부터 고립시킨다라고 썼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별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선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선에 속할 뿐이라는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의식적으로 사유하는 정신을 대표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관습에 기반한 사회를 파멸시킬수밖에 없습니다
홉스는 모든 인간에게 한가지 기본 욕망이 있다는 가정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바로 죽을때 까지 계속 되는 힘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말입니다

이토록 자기만 생각하는 존재가 그토록 비참한 조건에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사회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성립하더라도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홉스는 더 큰 힘을 가할때만 사회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게 국가입니다
토크빌은 미국 국민의 자립심과 독립심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곳이 사람들을 언제나 자기자신에게만 매달리게하며

마침내는 인간을 완전히 고독한 존재로 가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자유시장 사회가 전통적 관계를 단절하고 모든 유대관계를 화폐관계로 전락시키고

이기심의 고삐를 풀어 통제 불가능한 램프의 요정을 불러냈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옳았습니다

프의 요정이 만들어낸 사회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사회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개인의 집합체에 불과합니다

주권자가 힘을 잃으면 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사람들은 홉스가 상상한것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할 것입니다
루소는 우리가 이같은 자연 상태에서 쫓겨난 것은 사유재산 제도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필요한것보다 더 많이 쌓을 수 있게 되면서 내가 가진것을 남이 가진것과 비교하고

내가 가진것으로 남을 이기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욕망의 확대가 불평등뿐만 아니라 증오와 사회갈등 노예제 범죄 전쟁 사기를 비롯하여

현대생활의 온갖 폐단을 낳았다고 생각 했습니다
1940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한 나라가 소비한 광물의 양은

문명의 시작부터 1940년까지 전세계가 소비한 양과 맞먹습니다

우리는 자산이 그만큼 빨리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리석게도 경제가 성장하는 줄 압니다

축사에서 소를 키울 때 소고기 자체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곡물의 양은 11%밖에 안됩니다

나머지는 에너지로 소비 되고 배설물로 배출되고 식용이 아닌 부위에 흡수됩니다
지난 30년간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소를 먹이기 위해 숲의25% 이상을 벌목했습니다

소가 방귀로 내뿜는 엄청난 양의 메탄은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대기중에 배출되는 메탄의 20% 가량은 전세계의 소들에게서 나옵니다

메탄은 태양열을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많이 간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업으로서 또는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거래는 자연스러운것이 아니며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때문에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거래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것이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역 과정이 아니라 화폐 자체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역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들어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자산 획득 가운데 고리 대금업이 가장 자연에 배치된다
중세 신학자 초밤의 토마스는 고리 대금 업자가 파는것은

자신에게 속한 재물이 아니라 신에게 속한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흔하고 수치스러운 직업인 매춘에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토머스는 고리대금을 매춘에 비유하는 것 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춘이 수치스러운 짓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창녀는 일해서 돈을 버니까 말입니다

더 황당한 비난도 있습니다

농부는 일요일에 소떼를 쉬게 하지만 고리 대금업자는

자신의 소떼인 돈에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칼뱅주의자들은 돈으로 돈을 버는것이 자연법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남성은 씨를 널리 뿌리고 자녀를 돌보지 않을 수록 후손을 많이 남길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죽음을 각오하는것과 같은 영웅적 희생에 초점을 맞춘것은

이것이 집단에 대한 헌신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샤이엔족이나 아라파호족같은 대평원 인디언이 전쟁을 벌일 때면

일부 전사들은 싸우다 죽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합니다

이렇게 맹세한 전사는 여자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이 자살 특공대는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리 많은 여자와 자도 괜찮습니다


우치(內)는 봉건 시대에 가장 먼저 충성을 바쳐야 하는 가정을 일컫는말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서 의미가 넓어졌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느 회사에서 일한다라는 말보다 어느 회사 사람이다라는 말을 더 즐겨씁니다

봉건 시대 폭넓은 혈연 집단을 일컫던 다이카조쿠(대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단 입사하면 사실상 평생 고용이 보장됩니다

그래서 노골적인 경쟁은 기업이나 기관 사이에서 벌어지지 그 속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집단 위주로 생각하는 교육을 미국 학생들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일본 교사들은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이야기 하고 수업하는 반면

미국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교사와 소통하거나 소통을 시도하는 횟수가 일본 학생의 9배에 달합니다
일본 기업의 관리자들은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하며 집단의 성과를 토대로 보상하지만

미국 관리자들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성과를 토대로 보상합니다

일본 성인은 서양 사람들과 달리 눈에 띄는 옷을 입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겸양이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사업을 비롯한 삶의 모든 분야에 꼭 필요한 사회적 능력입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 부를 과시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자신을 팀의 소중한 일원으로 느끼는데 도움이 됩니다

서양 사람들의 삶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이 '의미'입니다

일본의 일반 노동자와 최고 경영자의 임금격차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작으며 미국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온갖 신제품에 열광하지만

서양 사람들만큼 물질적 소유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으며

집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중시하는 성향이 훨씬 큽니다

일본의 평범한 가옥에는 개인 방이 없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만족은 집단에 헌신 할 때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며 극빈층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하찮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도 집단내에서 존중 받습니다

일본 직장인은 출근부를 안쓰고 초과근무 수당도 좀처럼 신청하지 않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듯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선택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선택했을 때보다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정의는 현실세계에서 팃포탯이 작동하도록 하는 개념적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쉰들러는 비범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영웅적 이타주의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쉰들러는 술꾼이었으며 놀음을 즐겼습니다
프랭크 램지는 우리가 깨달은 바 신학과 절대적 윤리는 실제 대상이 없다라고 썼습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가 시시포스 신화를 소재로 쓴 철학 평론은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것은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수동적으로 판단하는것이 아니라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첫째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시시포스가 산꼭대기에서 무너지지 않는 신전을 짓는것이 그런 목표입니다
둘째 객관적인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있는가를 판단하는것은 우리의 욕망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것이 무엇이든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의미는 주관입니다

내 욕망과 맞아 떨어지는 행동은 내게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의미가 없습니다

테일러는 내적 욕망과 의지만이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주관 주의적 관점에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우주 전체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우리는 우주전체가 아닌

자신의 삶에 나름의 의미를 자유롭게 부여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욕망은 어떤 경우에도 좀처럼 충족할 수 없다
엘피콘은 많은 운동 선수들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 뒤에 허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성공이 결국 공허한 소득일 뿐이라는 발견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승리는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이기고 또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독되어 있다

사업에서든 스포츠에서는 승리를 향한 갈망은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

'목표 없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력'의 현대판입니다
일등 인생을 추구하는것이 옳은가를 따질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남들의 달갑지 않은 도덕적 의견을 고려 대상에서 전부 제외하는 것이다

더 즐겁고 덜 고통스럽게 살려고 노력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중년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중년의 여정을 출발할 때 모든것을 가져갈수는 없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제도의 요구로부터 남들의 의견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외부의 평가와 인정에서 벗어나 내면의 승인을 추구해야 한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가치와 기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것이 좋다 
해야할 일이 없다면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일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정하는것은

윤리적 판단의 영역입니다


심리 치료사중에서 빅토르 프랭클만이 자아 바깥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미래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수감자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패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얻으려면 삶의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프랭클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합니다

내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삶이 위축되고 마는 사람은 많습니다
윤리를 첫째자리에 놓고

정치를 둘째 자리에 놓으면

누구에게 투표하는가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는가를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추론능력 덕분에 우리는 생존하고 식량을 구하고 자녀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론능력 즉 이성은 묘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성은 에스컬레이터 같습니다

일단 계단에 발 디디면 몇층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서 이성이 진화한것은 생존하고 번식하는데 이롭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관점을 취하면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치 있는 이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존재하는 곳 어디든 그 고통을 줄이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다른 모든 가치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