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강신주의 다 상담(사랑 몸 고독 편-강신주)

by 굼벵이(조용욱) 2019. 3. 15.
728x90

철학 즉 필로소피라는 학문이 앎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그것에 대해 아는 학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랑과 미움은 같은 감정이고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이타심은 보상심리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집안이 불행한 사람은 빨리 사랑에 빠져요.

우린 상대적인동물이고 차이의 존재라서 조금만 나으면 그쪽으로 가거든요.

집이 행복한건 좋은 조건이에요.

실패를 안 하죠.

엘리자베스테일러나 마릴린 먼로 같이 결혼을 많이 한 사람들은 너무 힘들게 지내서 결혼을 많이 한 거예요

일단 사랑이라는 느낌이 들면 그냥 던져요

최선을 다해요

그러다 나중에 사랑이 끝났을 땐 사랑이 아니었나봐 라고 말할 수 있으면 돼요

몸과 마음은 같이 갑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면 집에 처박혀 있지 말고 몸을 움직이고 써야 합니다.

그리고 몸에 문제가 있을 땐 몸에 연연하기 보단 정신적인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육체라는 수단이 소중한 이유는 몸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이 죽어버리면 다 끝나는 거에요.

백 권을 읽어야 자기에게 어울리는 책 한권을 구할 수 있어요.

우리의 모든 관념이 깨지는 장소 혹은 우리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되는 장소도 바로 몸이지요.

맛있을 것 같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야 정말로 몸이 원하는지 아는 거 아닌가요?

신은 배신을 못해요.

인간만 배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신이 우리를 질투한다고요.

까먹지 말아요.

우린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서 매력적인 거예요.

신의 사랑은 얼마나 덧없어요.

영원히 피어있고 안 죽는 그 존재가요.

우리가 근사한 이유는 언젠가는 지기 때문이에요

몸이라는 곳이 여러분들의 사랑이 일어나는 곳이에요.

세계와 관계하는 모든 장소가 몸 인거죠.

그러니 몸을 긍정하셔야 해요

사랑한다고 떠벌이지 말고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게 더 강한 거예요.

사랑한다는 건 만지고 싶다는 거예요.

피부를 맞대고 같이 자고 싶다는 거예요

딴방에서 잔다, 손잡기 싫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몸은 물질적이기도 하면서 비 물적이기도 하다는 걸 항상 명심하세요

행복은 드물고 아주 희귀해요.

용기 있는 사람만이,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거예요.

몰입할 것을 찾으면 고독을 피할 수 있다

아이들은 좋아하거나 꽂히는 게 있으면 거기에 목숨을 걸 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왜 이렇게 고독하지 묻지 알고 언제부터 세상에 대해 몰입하지 않았을까 라고 해요.

세상이 풍경으로 보일 때 우리는 고독해요.

고독이란건 자의식이 강한 상태입니다.

세계를 풍경으로 만드는 법은 누군가 떠들고 있을 때 그 사람 이를 보는 거예요.

말을 많이 듣지 않고 다른걸 보는 겁니다.

고독은 자폐증과 같은 겁니다

산다는 건 항문을 조이는 거예요.

몰입과 무아의 육체적인 경험은 드러나는 건 다 열리는 겁니다.

나를 떠나는 거죠.

고독이 무엇인 것 같아요.

변비의 느낌과 같아요

제대로 살아있으려면 항문이 풀려야 해요

완전히 열어놓는 거예요

완전한 개방, 그게 몰입이거든요

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경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경우에요

나를 사랑한다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입니다.

중요한건 꽃피우는 거예요.

어떤 꽃은 한 달 가고 어떤 꽃은 열흘 가는 것 뿐이에요.

몰입하면 가치가 생기지만 가치가 있다고 해서 몰입하는 건 아닙니다

사랑은 차이에 대한 긍정입니다.

만약 완전히 동일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차이에 대한 긍정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다시 말해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은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둘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식욕을 억누르는 것과 같이 소유욕을 억누르려하면 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강해집니다.

우리는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사이는 들뢰즈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차이겠고 바디우의 표현으로 보면 둘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