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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by 굼벵이(조용욱)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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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나는 복잡한 소설보다 동화 같은 소설이 좋다.

공감이나 메시지는 우러나야 하는 것이지 어렵고 현학적인 용어를 사용해가며 억지로 주입해선 안 된다.

숨기고 싶은 진실을 풀어낼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가 성장하며 성장통을 겪는다.

뒤돌아보면 나도 내가 정말 이토록 못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비열한 행동도 일삼았고 크고 작은 도둑질도 많이 했으며 교만하고 비인간적이었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나는 내가 남과 같거나 남만 못하다는 걸 깊이 깨닫고 행동했으니까.

그런데 그 소설은 나 뿐 아니라 작가도 주인공도 그 밖의 모든 독자들도 모두 똑같은 경험 속에 살고 있으며 그러기에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켜 그 책을 5년 연속 전미 최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자리매김하게 했던 것 아닌가 싶다.

'어린왕자'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나 '연어'나 비슷한 류의 글인데 내가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 방식이다.

인생 제 2 막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면서 동화처럼 살고 싶다.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앵무새 죽이기' 등 성장소설류를 좋아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그런 과정들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면 소설은 세상을 향한 자기고백이다.

주인공인 타자의 이름을 빌어 진실로 새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방법이다.

내가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앞으로 십년 후 독자가 있든 없던 상관없이 세상에 내 놓고 죽을 작정이다.

 

밑줄 그은 곳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죄밖에 없다

단 하나의 죄 말이다

그것은 도둑질이다

다른 죄들은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아 듣겠니?

네가 거짓말을 하면 너는 진실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만약 신이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들에 신경을 썼으면 싶다

 

​석류나무 잎이 드리운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지난 해 포경수술을 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의사는 똑같은 말을 하면서 조금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약기운이 떨어지자 불이 붙은 뜨거운 석탄을 누군가가 내 사타구니에 대고 누르는 것 같았다

 

​“괴물은 없어요.”

“물밖에 없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가 틀렸다

호수에는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이 하산의 발목을 잡고 진흙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그 괴물은 바로 나였다

내가 불면증에 걸린 건 그날 밤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썼고 말을 그리는 법을 익혔다

 

​식사를 하면서 나누던 대화는 스푼과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로 바뀌었다

 

은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비 뿐이었다

 

​공기도 문제였다 거의 고체에 가까웠다.

 

좋은 책들을 슬픈 이야기잖아요

 

​나는 그가 깨끗한 흰 셔츠로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는 걸 도와주다가 목깃 단추와 바바의 목 사이 빈공간이 2인치쯤 되는 걸 보았다

나는 바바가 세상을 떠나면 뒤에 남게 될 빈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결코 그가 이길 수 없는 곰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자기 식으로 졌다

 

​하지만 내가 소라야의 과거에 대해 개의치 않았던 주된 이유는 나한테도 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그녀를 쉽게 버릴 수 있었던 건 나에겐 그런 과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나는 모자라고 유치한 놈이었던 거다)

 

​파쉬툰 남자인 장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자기 딸과 남자 사이의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기차다 올라 타자

 

​라힘 칸은 전화를 끊기 전에 말했다 오거라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그 중 나사 하나가 풀려 있었다

나는 몸을 숙이고 나사를 조였다

내 인생도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었으면 싶었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괴로워 하다가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결국 가지 않는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될까봐 두려웠다

내가 미국 생활의 매력에 끌려 거대한 강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 지난 며칠 동안 깨달았던 것들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물살이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떠내려가게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 물살이 하산으로부터 나를 부르고 있는 과거로부터 그리고 속죄를 위한 마지막 기회로부터 나를 떠내려가게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남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까마귀 떼 같았다

 

​당신은 이곳에서도 관광객이었어요

당신이 그걸 몰랐을 뿐이죠

 

​나는 아이들이 시계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먹는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당시는 중요해 보였던 일들 때문에 수없이 대문을 들락거렸었다

 

​그는 너를 보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죄를 보았다

 

​그것을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네 아버지는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세우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돈을 주었다

그 모든 것이 속죄 하고자 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단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몇몇은 착해 지지 않고 나쁜 상태 그대로 있단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과 맞서야 하는 거란다

네가 그 사람한테 한 행동은 오래전에 내가 그에게 했어야 하는 행동이었다

너는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받을 만한 걸 줬다

그는 그것보다 더한 걸 받았어야 한다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랍의 침묵은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묵언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걸 말하려고 하는, 스스로가 원해서 하는 침묵이 아니었다.

그의 침묵은 어두운 곳에서 꽁꽁 숨어 몸을 오그리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산다기보다 그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