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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by 굼벵이(조용욱) 2019.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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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이 두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 시켰다 

 

사람들이 한 때만 이런 짐승같은 일을 자행 했다고 말하는것이 옳은 일일까?

​미국인들은 저 곳 그리고 미국이 개입되지 않은 곳에서 행해진 악을 사진으로 찍기를 더 좋아한다

미국은 그야말로 독특한 나라다

건국이래로 사악한 지도자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실제로 갈가리 찢긴 육체가 매혹적이라는것을 최초로 인정한 언급을 정신적 갈등을 그린 최초의 묘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론 제4권의 한 구절이 바로 그 것이다

플라톤은 이 구절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욕망이 이성을 압도하게 되는 경위, 그래서 자아가 자신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욕망에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경위를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설명 했는지 보여준다

 

​범상치 않고 통탄해 마지 못한 재앙의 광경만큼 사람들이 열심히 쫓는 광경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 그리고 무대에 올려진 악행의 매혹에 관해 쓴 어느 에세이에서 윌리엄 해즐릿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재 사건이나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다룬 기사를 늘 읽곤 하는가

그의 답변에 따르면 불행에 대한 사랑 잔학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바타이유는 이렇게 적어 놨다

'이 사진은 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홀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이미지,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 이미지는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

 

​사진이 어떤 영향을 가져 오는지 설명하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사고 방식은 대중매체 좀 더 명확히 말하면 이미지가 주목하는것을 대중들도 주목한다는 사고방식이다

cnn 효과라고 한다

두번째 사고 방식은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이미지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서 서서히 앗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으로 찍혀 보여진 바가 전혀 없는 사건보다는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건이 훨씬 더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사진에 찍힌 사건도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점점 덜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연민을 더 많이 자아내면 자아낼수록 그런 사진은 연민 차체를 점점 더 사그라지게 만든다

 

​프랑스인 보들레르가 1860년대 초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은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자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화해한다는것은 잊는다는 것이다

즉 화해 하려면 기억이 불완전하고 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미국 밖으로 나가 본 미국인들은 수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을 천박하고 상스럽고 교양 없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미국인들의 이런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려고 마치 옛날에 자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지에 가서 분통을 터뜨리는 식민주의자들처럼 행동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채 고국으로 돌아가 고급 문화를 실컷 즐기는 식민지 정복자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뿐이라고 말이죠

 

​예컨대 1831년 토크 빌이 지적했듯이 대중적 합의가 기이할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 하며 여론과 대중 매체가 기이할 만큼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마치 극우적으로 보인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국은 유럽인들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과격할 수도 심지어는 혁명적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조지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던 지난 2000년 당시 한 언론인이 부시에게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부시는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답변을 내놨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제3자인 유럽인들에게는 당장 웃음 꺼리가 되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답변 해야만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은 종교 사회입니다

소비자가 물건을 선택하는 식으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미국인들이 보여 주는 순응주의 독선 도덕주의의 바탕입니다

 

​본질적으로 문명과 야만이라는 대립은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지만 낡은것과 새것이라는 대립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이라고 이해하는 것 한 가운데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런 대립입니다

낡은것과 새 것은 이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정서와 감각의 영원한 양 극입니다

우리는 낡은 것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낡은 것 안에는 우리의 과거 우리의 지혜 우리의 기억 우리의 슬픔 우리의 현실 감각이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것에 대한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새것 안에는 우리의 활기 우리의 낙관 능력 앞뒤 가리지 않는 우리의 생물학적 열망 화해를 가능케하는 치유능력으로서의 망각 능력이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은 새것을 불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강하게 발달한 내면은 새것에 저항할 테죠

우리는 낡은 것이냐 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만 사실 둘 다 선택해야 합니다

낡은 것과 새것의 끊임 없는 타협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겠습니까?

 

​작가는 옳은 일을 하거나 지원해 주려 애쓰는 사람보다 훨씬 더 회의적이며 훨씬 더 스스로를 의심하는 존재입니다

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고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는 겁니다

그리고 뭔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 조차도 예술은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나갑니다

문학은 대화이자 응답입니다

문화가 발달하고 각 문화가 상호작용 함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것과 죽어 가는것을 향해 인간이 보여준 반응의 역사가 곧 문학이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문학 그것도 세계문학에 다가간다는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정부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 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자기 맘대로 아무런 일이나 할 수 있도록 직접 자신을 허가 한다는 뜻이다

즉 어딘가에 개입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며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면 참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가란 명백한 타자의 압력에 맞서 늘 새롭게 상상되고 재정의 되며 끊임없이 재확인 되기 마련인 공동체이다

 

​어떤 국가가 자국 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 하는데도 그 국가를 힘으로 응징하면 결코 안 된다고?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폭력의 주된 사례는 정부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자국 국경 내부에서 저질러 진다

내전을 통해서 그것도 낡은 인종적 증오심을 통해서 이런 살육을 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만 한가

어쨌든 반 유태 주의도 유럽의 낡은 전통이었다

사실 반 유태 주의는 발칸반도를 휩쓸고 있는 증오심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독일내에 유태인들을 모두 살육하도록 내버려 두는것도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전쟁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진실일까

미국 흑인들에게 물어봐라

남북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냐고

이 세상에는 근본적인 악이 있다

그래서 정당한 전쟁도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