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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라면을 끓이며(김훈)

by 굼벵이(조용욱)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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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물에 말고 밥숟가락 위에 통통한 새우젓을 한 마리씩 얹어서 점심을 먹으면 뱃속이 편안해지고 질퍽거리던 마음이 보송보송해진다.

잘 익어서 사각거리는 오이지를 고추장에 찍어서 물에 만 밥을 먹거나 소금물에 담근 짠지를 가늘게 썰어서 찬물에 띄우고 거기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쳐서 먹으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나는 무짠지가 우러난 국물에 찬밥을 말아먹는다.

그 맛은 단순하고 선명해서 음식의 맛이라기보다는 모든 맛이 발생하기 이전의 새벽의 맛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시원적인 맛이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크고 뚱뚱한 김밥은 이 같은 정서적 사명을 수행하기 못한다.

뚱뚱한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 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때 나는 먹고 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지식은 순결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생선들의 펄떡거림에서 아침햇살이 튕겼다.

 

삶을 지속하려는 자만이 연장을 만든다.

 

물곰은 진화를 거부한 물고기처럼 보였다.

 

저 아득한 표정과 질감을 끓여서 국물로 마셨구나.

 

대게의 살에서는 바다의 냄새가 나지 않고 꽃의 향기가 난다.

 

물이 빠지면 붉은 석양의 조각들이 갯벌 위에 떨어져서 퍼덕거린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자가 바로 나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있다.

 

자연은 저 자신의 볼일로 가득 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냉정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적대적으로 느낀다

'무위'는 자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손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열대의 밀림은 가르쳐주었다.

 

공간 속으로 저무는 것들이 시간 속으로 저문다.

저무는 것들은 가볍다.

저무는 것들은 느슨한 헐거움으로 삶의 모든 궤적들을 지워버리고, 신생의 시간과 공간을 펼쳐놓는다

 

먼 산골까지 바다의 기별이 닿는다.

강이 바다를 받아들이는 물리현상을 과학자들은 감조感潮라고 하는데, 나는 이 단어에서 산맥과 바다가 붙고 엉키는 조국산하의 관능을 느낀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일이 몸에서 겉돌아서 일 따로 몸 따로가 될 때, 나는 불안하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시간 속에서는 덧없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모든 강고한 것들은 무너지지만 저녁노을이나 아침이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는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거룩하고 본질절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아, '생의 외경', 이 외경스러운 도덕은 밥벌이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낱알들이 입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 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바늘을 발라내고 먹이만을 삼킬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근면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물 빠진 갯벌은 '떠돌이 창녀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서정주 격포우중)와도 같이 젖어서 질퍽거린다

 

당신의 정맥은 팔뚝을 따라 올라가서, 점점 희미해서 가물거리는 선 한 줄이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사라진 정맥의 뒷 소식은 아득히 먼 나라의 풍문처럼 희미해서 닿을 수 없었다.

 

젖가슴에 관한 여러 감식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니까, 빗장뼈의 중심점과 양 젖꼭지 사이가 정삼각형을 이루는 구도를 으뜸으로 치고 있었다.

이것은 가슴을 앞에서 보았을 때의 얘기다

옆에서 보았을 때는 젖가슴 그루터기의 직경보다 앞으로 내민 높이가 더 높은, 말하자면 "방추형" 젖가슴이 만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밑으로 처진 젖가슴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다

또 젖꼭지의 색깔은 연분홍을 최상품으로 치며 두 젖꼭지는 서로 토라진 듯이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아름답다는 것이다.

 

노출이 대담한 젊은 여자가 그의 젊은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나라의 미래에 안도감을 느낀다.

여름 여자들의 그 손바닥 만 한 탱크톱과 핫팬츠 그리고 그 밖의 드러난 팔다리 사이에서 나는 흔히 아득함을 느낀다.

젊은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나라의 힘이고 겨레의 기쁨이다.

 

심사기준에 따르면 미녀의 하체는 두 다리를 모으고 섰을 때, 넓적다리 윗부분의 안쪽이 딱 붙어야 한다.

이 간단한 기준은 의미심장하다.

거기가 왜 딱 붙어야 하는가.

거기는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억조창생의 성적긴장이 집중되는 부위다.

이 긴장의 질감은 날카롭고 또 서늘해야한다.

끈끈하거나 질퍽거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거기가 딱 붙어야 한다

앞으로 봐서도 붙어야 하고 뒤로 봐서도 붙어야한다.

거기가 딱 붙지 않고 휑하니 벌어져서 바람이 드나든다면 판은 다 깨진다.

미녀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붙어야 하지만, 너무 꽉 들러붙어도 안 된다

살이 눌려서 군살이 찐빵처럼 옆으로 부풀어 오르면 후텁지근한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거기는 지난한 부위인 것이다.

양쪽 넓적다리 윗부분의 안쪽이 붙을 듯 떨어질 듯 닿으면서 드러내는 한 줄기 선 위에 삼엄하고도 선명한 긴장이 서려 있어야 한다.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도.

 

하이힐은 발뒤꿈치를 쳐들어 올림으로써 미녀의 엉덩이를 뒤쪽으로 빼주고 유방을 앞쪽으로 내밀어준다.

하이힐은 전방지향적이고 도발적인 유방의 구조역학적 토대다.

유방을 심사할 때 유방의 크기, 위치, 선 이렇게 세 가지의 관측 포인트로 분해된다.

그리고 그 분해된 미적 요소들이 다시 종합되면서 우수한 질감과 형태의 유방을 골라낸다

유방은 작은 것을 수치로 여기지만 크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큰 유방은 그 풍만한 중량감을 미적으로 수습해낼 만한 선을 갖추기가 어렵다.

이 선은 아래로 늘어지는 듯 하면서도 위쪽으로 쳐들어 올려지는 힘을 보여야 한다.

유방은 전방지항적인 동시에 상방지항적이라야 하고 또 적당히 늘어져 있어야 한다.

 

미녀의 어깨는 다소곳이 흘러내리면서 사랑스러워야 한다.

사랑받기를 갈구하고 있어야 한다.

미녀의 어깨는 20도 쯤 흘러내리는 각도를 으뜸으로 친다.

 

선율은 그렇게 해서 시간 위에 뜬다.

출렁거리면서 흘러간다.

선율이 흔들릴 때 세계는 흔들리고, 이 세계의 이 철벽같은 강고함에는 구멍이 뚫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은 살아 있다.

없었던 세계가 홀연 시간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타악기는 팔의 일부이고 관악기는 호흡의 일부이며 건반악기, 현악기가 다 몸의 일부이고 성악은 몸 그 자체이다

그래서 모든 악기는 인간의 몸과 친숙하게 사귈 수 있는 물리적 구조로 태어난다.

그래서 모든 음악은 인간의 몸의 소리인 것이다.

 

 

나는 자본론의 각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망치를 들고 못을 박을 때 못이 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

톱으로 나무를 자를 때 톱 지나간 자리가 가지런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나는 창피하다

​못 박기는 내 생명의 축제인 것이다

 

​개 한마리가 이세상의 길 위를 달릴 때 이 세상에는 놀라운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나 개의 몸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은 발바닥의 굳은살이라고 생각한다

그 굳은살은 말랑말랑 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다

그 굳은살은 개나 사람이 이 세상을 딛고 다닌 만큼 단단하거나 아직 덜 딛고 다닌 만큼 말랑말랑 하다

그래서 개 발바닥의 굳은살은 한편의 역사를 이루는데 이 역사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아날로그 세상의 슬픔과 기쁨은 등불처럼 환하다

 

​우리 동네 까치들은 죄다 우리 집 개털의 따스함과 포근함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개가 우리 마을 까치의 집짓기에 기여한 공로를 큰 자랑거리로 알고 이를 동네 반상회에서 보고 하려 했는데 아이들이 말려서 못했다

겨울 아침에 개를 데리고 산에 오르면 내 입에서도 허연 김이 나오고 그 개 콧구멍에서도 허연 김이 나온다

그때 나는 내가 곧 개임을 안다

어미의 자궁에서 태어나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란 중생들은 개나 말이나 사슴이나 사람이나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이 바탕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그때 멧돼지들은 개들을 향해 저돌성 공격을 감행 하는데 돌진하는 멧돼지에 받히면 개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이때 어미 개는 새끼들을 멀리 숨겨 놓고 구경만 시킨다

그러고 나서 멧돼지가 총에 맞아 쓰러진 다음에 어미 개는 새끼들을 불러서 쓰러진 멧돼지를 물어뜯는 훈련을 시킨다.

 

​개와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신의와 염치와 범절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개를 마구 대하면 개도 사람을 마구 대한다

 

​길은 산하의 가장 낮고 유순한 지점들만을 골라서 뻗어 나간다

길이 인간의 자취들 중에서 자연에 가장 가깝다

길은 자연의 가파른 위험을 피해 나간다

그것이 길의 원리이고 행함의 원리다

 

​반듯하고 조용히 말해라

조용히 말해야 남이 듣는다고 타이르셨다

어머니는 종결 어미가 불분명한 말을 싫어 하셨고 늘 대하는 이웃집 아낙네들에게도 말꼬리가 분명한 존댓말을 쓰셨다

어머니의 고향은 향토가 아니라 척도와 언어였던 모양이다

 

​서울의 남산타워는 인류가 대도시에 세운 모든 구조물 중에서 으뜸으로 추악하다

 

​위 쪽 물길이 수많은 댐으로 막혀서 한강은 이제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되었다

기절한 듯이 언제나 가만히 엎드려 있다

 

​무기와 농기구는 세계를 개조 하려는 인간이 도구다

 

​나무나 풀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고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 존재의 절정이다

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

꽃에는 그리움이 없다

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 하게 한다

나뭇잎은 한조각의 이파리로서 스스로 자족하기보다는 온 산을 뒤덮는 연두의 바다로서 흔들리고 반짝인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 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 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 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 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서 으뜸으로 에로틱하다

자두는 요물단지로 생겼다

자두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두의 향기는 육향에 가깝다

그 향기는 퍼지기보다는 찌른다

자두를 손으로 만져 보면 그 감촉은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

자두는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이 통째로 먹는다

나무에서 어떻게 이런 살덩이들이 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앞니를 자두의 살 속으로 깊이 찔러 넣을 때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은 자두의 살과 한 덩어리가 된다

자두가 빨아들였던 햇빛과 공기와 물과 또 그것들을 짜 맞추어 빛깔과 향기에 도달하는 자두의 비밀들이 목구멍을 넘어서 몸속으로 퍼진다.

 

​나는 자연사한 새들의 주검을 본적이 없다

 

​나비는 바람에 날개를 뜯기면서 애초에 바람이었던 것처럼 바람에 풍화하고 있었다

나는 나비들이 바람 속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죽어서 바람이 되어 들판 저쪽으로 불어 간다

 

11월에 사랑하는 사람들아

길에서 떨지 말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살을 부벼라

 

​인생이란 번개와 같고 밤바람과 같고 별빛과 같고 새벽과 같으니 나는 이제 무물로 돌아가련다

 

​연어들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을 준 몸을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이 끝없는 생명의 반복인 무명과 보시는 인연이고 그 인연은 세상의 찬란한 허상이다라고 고형렬은 썼다

 

​차라리 연어가 더 낫다

사람 부모 자식은 서로에게 오롯이 고통만 안길 뿐이다

자식의 탈선을 대책 없이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욱 아프다

부모가 간섭하나 안하나 어차피 마찬가지인데도 부모는 간섭하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김지하가 무동을 타고 아우성을 치며 광장을 휩쓰는 동안에도 그 여인네는 어둠 속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 여인네는 다만 바라보고만 있을 뿐 이었다

김 지하는 출감한 옥 문 앞에서 장모를 만나지 않았다

김지하가 떠나 버린 어둠 속에 그 여인네는 혼자 오래오래 서 있었다